'AAA등급'은 신용평가사들이 부여하는 최고의 신용등급이다. 주로 공공 기관이나 금융사에 부여되는 데 일반 기업들도 종종 AAA등급을 받곤 한다. 국가 혹은 금융 기관 수준의 아주 높은 신용도를 보유하고 있을 때 가능하다. 그래서 이들을 흔히 '초우량 기업'이라고 부른다.
다만 AAA등급 기업은 보기 드물다. 심지어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미국의 경우 경제 호황기인 1990년대까지만 해도 무려 90여개에 달했지만, 지금은 존슨앤존슨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단 두 곳만이 AAA등급 기업으로 남아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등 여러 대형 경제 위기 이슈들이 미국 재계를 잇따라 덮친 결과다.
미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국내 사정도 비슷한다. 불과 5년 전까지 AAA등급 기업은 현대차, 포스코, SKT, KT등 총 4곳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SKT와 KT만 AAA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포스코와 현대차는 AAA등급을 반납했다.
◇포스코·현대차 AAA등급 '반납'
포스코는 지난 2014년 AAA등급에서 내려왔다.1994년 첫 AAA등급을 부여 받은 지 20년 만이었다.
당시 국내 3사 신용평가사들은 포스코의 등급 강등 이유로▲업황 부진에 따른 수익성 악화▲잇단 투자 및 공장 증설에 따른 재무적 부담 확대 등을 꼽았다.
포스코는 당시 계속되는 투자 정책으로, 2011년 평균 6조원에 달했던 현금 창출력이 5조원까지 내려앉은 상황이었다. 수익성은 약화된 가운데 원재료 확보 관련 지분투자, 공장 증설, 해외 일관제철투자 등을 위해 외부 차입을 늘리면서 부채비율도 점차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무디스와 피치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이 먼저 포스코의 등급을 내리면서 경고등을 켰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지표가 좀체 개선되지 않자, 국내 신용평가사들까지 포스코의 등급을 한 단계(AA+·안정적) 하향 조정하는 데 동참했다. 국내에서 AAA등급 기업이 강등 조치된 것은 1985년 신용평가제도 도입 후 처음있는 일이었다.
당시 시장은 적잖은 충격에 빠졌다. 포스코가 국내 기업사에 가지는 의미가 일개 기업이라기 보단 한국 경제의 상징이자, 산업화의 핵심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포스코의 등급 강등은 계열사는 물론 자동차 등 철강 수요 산업계 전반의 도미노 강등 가능성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우려를 샀다.
업계의 시각은 자연스레 현대차로 향했다. 포스코 등급 강등으로 입증된 철강 산업 둔화는 현대차에게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떄문이다.
앞서 현대차는 2012년 NICE신용평가로부터 처음 AAA등급을 받았다. 탄탄한 내수에 미국 등 해외 실적까지 받쳐준 결과였다. 이듬해인 2013년 한국신용평가까지 현대차의 등급을 올리면서 현대차의 유효 신용등급은 AAA로 확정됐다. 공기업 모태의 기업이 아닌 순수 민간 기업이 AAA등급에 오른 건 현대차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현대차는 등급 상향과 동시에 다시 하향 압박에 시달렸다. 공교롭게도 AAA등급을 부여 받은 2013년을 기점으로 자동차 업계의 불황이 시작되면서 현대차의 수익성도 내리막을 탔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차량부문 세전 영업이익(EBITDA)만 해도 2014년 8조원에 달했지만, 그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 작년에는 4조4550억원까지 급감했다. 반면 신차 개발, 연구개발(R&D)투자 등 자본적 지출(Capex)을 지속적으로 늘린 탓에 같은 기간 EBITDA/Capex 지표는 2.0배에서 1.0배로 낮아졌다.
이에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현대차의 등급을 잇따라 하향 조정했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현대차의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하향 조정했고, 무디스도 현대차 등급(Baa1)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 등급 강등 의사를 내비쳤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지난해 11월, 현대차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조정하면서 등급 강등을 경고했다. 그러나 올해 역시 현대차의 내수 및 해외 부진은 지속됐고, 투자를 위한 지출마저 늘어나자 결국 지난 11월 현대차의 신용등급을 한단계 낮췄다. 이로써 현대차는 2013년 이후 7년만에 AAA등급에서 내려오게 됐다.
◇KT·SKT 등 2강 체제?…추가 이탈 가능성↑
포스코와 현대차의 등급 강등으로 이제 남은 AAA등급 기업은 KT와 SKT, 단 둘 뿐이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는 2001년 AAA등급을 받았지만, 회사의 무차입 기조상 국내에서 회사채를 발행하지 않아 현재 유효신용등급이 없다.
다만 포스코의 신용등급(AA+)전망이 지난해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조정되면서 AAA등급으로의 복귀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여전히 철강 업황이 부진하고, 포스코 내부적으로 철강 사업 고도화 등 수조원의 대규모 투자가 예고돼 있어 단기간 내 등급 상향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시각이 우세하다.
이에 따라 당분간 AAA등급은 KT와 SKT 등 2개사로 유지될 전망이다. 다만 이들 역시 신용등급을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통신업계 또한 최근 5세대(5G) 이통통신 상용화를 위한 설비 투자를 늘리면서 차입금 증가세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2015년말 7조5238억원이던 SKT의 총차입금은 올해 9월말 10조9509억원까지 불어났다. 같은 AAA급인 KT가 차입금 관리를 통해 지출 확대에도 불구, 부채비율 낮추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KT의 총 차입금은 지난 9월 6조8334억원으로, 2015년 8조 1195억원에서 1조원 넘게 감소했다.
이같은 점을 이유로 해외 신용평가사인 무디스(A3)와 S&P(A-), 피치(A-)는 SKT의 신용등급에 '부정적' 전망을 달아놓고 있다.
업계는 해외 신용평가사들의 등급 강등 조치가 현실화 될 경우 국내 신용평가사들 또한 SKT의 현재 등급을 계속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일단 3사 신용평가사들의 SKT 등급 하향 조건은 이렇다. ▲한국기업평가는 EBITDA 마진 25% 이하, 순차입금/EBITDA 2배 초과 이상▲한국신용평가는 연결기준 EBITDA/서비스 수익 25.0%미만 지속, 순차입금/EBITDA 지표 2배 상회▲NICE신용평가는 EBITDA 통신 수익 20% 하회, EBITDA/금융비용 10배 하회 등을 내걸고 있다.
이 가운데 순차입금/EBITDA 비율은 차입금 상환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EBITDA마진, 부채비율 등과 함께 기업의 신용등급을 결정 짓는 중요 요소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AAA등급은 포스코의 상향과 SKT의 하향 여부가 주요 이슈"라며 "포스코의 경우 업황 부진과 실적 악화 등을 고려할 때 당분간 상향 가능성은 크지 않고, SKT는 5G 도입 이후에 따른 수익 창출력, 망 고도화 등 투자부담이 재무구조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등급 유지 여부가 가려질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