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6년만에 국내 최고 신용등급 'AAA'의 지위를 잃을 위기에 놓였다. 지난한 불황에 내수 회복세가 늦어지고 있는 데다 주요 수출국인 중국 시장의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는 점 등이 반영된 결과다.
한국신용평가(한신평)은 지난 25일 수시평가를 통해 현대자동차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AAA(부정적)에서 AA+(안정적)로, 한 단계 강등했다. 작년 11월 등급전망을 AAA(부정적)을 조정하며 향후 등급 강등 가능성을 시사한 지 1년 만이다.
다만 현대차의 유효신용등급은 아직 AAA0(부정적)이다. 국내 신용평가사 3곳(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평가·NICE신용평가) 중 두 곳의 등급이 일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은 한국기업평가와 NICE신용평가도 작년 말 현대차의 등급전망을 '부정적'으로 조정한 만큼 등급 하향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현대차는 지난 2013년, AAA등급에 오른지 6년 만에 '국내 최고의 신용등급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게 된다.
한신평은 현대차의 신용등급 하향 배경으로 ▲구조적 측면의 수익창출력 약화와 회복 지연 ▲글로벌 시장수요 부진 등 비우호적 영업환경과 중국 실적 악화 ▲산업 패러다임 변화 관련 불확실성 등을 꼽았다.
김호섭 한신평 수석 연구원은 "글로벌 경기 악화로 주력 차종인 세단의 수요가 감소하고 있고,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대응이 지연되면서 내수 회복세가 더디다"며 "여기에 중국내 점유율이 오랫동안 개선되지 못하는 점, 산업 패러다임 변화로 실적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 점 등이 더해지면서 등급 하방 압력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2012년까지만 해도 해외 판매 호조에 힘입어 연간 영업이익이 무려 7조원에 달했다. 그러나 이후 계속되는 판매 둔화와 비용 증가 영향으로 수익성이 고꾸라지면서 작년말 1조6000억원 수준까지 급락했다. 올들어 잇단 신차 출시와 수요가 높은 SUV 비중 확대가 이뤄지며서 지난 상반기, 수익성 개선세가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3분기 세타2 GDI 엔진 관련 품질비용 인식으로 수익성이 재차 저하됐다.
신차 확대 등 수익성 회복 가능
중국시장 손실, 점진적 축소 전망
한신평은 현대차의 신차 확대와 원가절감 정책 등 수익성 개선 전략이 지속될 경우 수익성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전동화·고급화에 따른 원재료비 상승과 품질·환경규제 비용부담, 미래기술 연구개발비 증가 등을 감안하면 과거 수준의 수익성을 회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핵심 수출국인 중국시장의 부진도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법인은 현대차 글로벌 시장의 30%가량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판매 감소에 따른 가동률 하락으로 2017년 이후 중국법인의 재무지표가 줄곧 저하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8년부턴 배당금 유입이 중단됐고, 손실 규모도 확대되는 추세다.
김 연구원은 "중국 시장은 공급 과잉 및 수요 부진, 최근 판매량 추이 등을 감안할 때 단기간내 실적 반등이 쉽지 않다"며 "다만 올해 중국 자동차 시장의 수요 위축에 따른 수익성 저하가 워낙 컸기 때문에 향후 2~3년간 점진적인 손실규모 축소는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신평은 또 현대차가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대비해 적극적인 투자를 지속하고 있는 점을 부담 요인으로 꼽았다. 현대차는 최근 자율주행 관련 앱티브와 합작회사 설립 및 지분투자를 결정하는 등 미래기술 대응력 제고를 위한 투자 행보를 지속하는 중이다.
이에 김 연구원은 "최근 이뤄진 앱티브(APTIV)의 자율주행 합작법인 설립에 대해 총 1조9000억원을 투자하며 미래기술 대응력 제고에 나섰지만, 내년부터는 차입규모 증가(순 현금 규모 축소)와 총차입금/상각전 영업이익(EBITDA) 지표가 점진적으로 저하되는 추세가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신평은 현대차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만큼 등급 트리거(Trigger)를 새롭게 제시했다.
등급 상향 조건으로는 ▲신차효과와 주요 시장 판매량 회복, 수익성 개선 전략에 힘입어 차량 부문과 북경현대(지분율반영)합산 '조정 EBITDA/매출액'이 10% 초과 ▲총차입금/조정EBITDA 지표가 1배 미만으로 유지 등을 내걸었다.
반대로 하향 조건으로는 ▲글로벌 수요 부진과 경쟁심화 등으로 차량부문, 북경현대(지분율반영) 합산 '조정EBITDA/매출액' 7% 이하 ▲차량부문 '총차입금/조정EBITDA' 지표가 2배 이상으로 지속되는 경우를 제시했다.
김 연구원은 "향후 글로벌 주요 시장의 판매량과 대당 공헌이익, 수익성 추이, 중국법인의 영업실적 및 재무구조 변화 등을 모니터링 할 것"이라며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대응과 지배구조 재편 방향 등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신평은 이날 기아자동차의 신용등급도 AA+(부정적)에서 AA(안정적)을 한단계 강등했다. 한신평은 기아차의 등급 강등 배경 역시 ▲구조적 측면의 수익창출력 약화와 회복 지연 ▲글로벌 시장수요 부진 등 비우호적 영업환경과 중국 부진 장기화 ▲산업 패러다임 변화 관련 불확실성 등으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