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래로 막을 일이 생기기 전에 호미로 막자'는 태세다.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한 산업계 전반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예방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직원이 감염돼 건강에 문제가 생기거나, 인원이 밀집한 사업장 안에서 감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관건이다.
기업들은 이를 위해 재택근무, 탄력근무를 적용하는 한편 외부인 출입 제한, 건물 방역 등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감염으로 회사 업무가 마비되거나, 특정 종교단체처럼 사회적 감염 확대의 통로가 되는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 한다는 게 기업들의 공통적인 인식"이라고 말했다.
◇ "출근 필요없다"..재택·탄력근무 확산
LG그룹은 25일 임산부 직원과 육아를 위해 재택근무가 필요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기간을 특정하지 않고 필요한 기간 자유롭게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사업장으로 출근하는 직원들도 혼잡 시간 대중교통 이용을 최소화하도록 '플렉시블 출퇴근제'를 적극 권장한다고 밝혔다. 이는 하루 8시간 근무를 하되 출퇴근을 당기거나 늦출 수 있는 제도다.
아울러 점심 때 구내식당에 인원이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전 사업장의 사내식당 운영시간을 연장 운영하고 있다. 대표 계열사 LG전자의 경우 전 사업장에서 외부 방문객의 출입을 금지하고 임직원들의 사업장간 출장도 차단하고 있다. 또 재택근무가 늘어날 가능성에 대비해 외부에서 클라우드에 원활히 접속되도록 관련 장비와 네트워크 점검도 강화했다.
삼성그룹은 하루 앞선 지난 24일부터 28일까지 닷새간 전 계열사 임산부 직원을 자택대기 조치했다. 코로나 사태 속 모성보호 차원에서 유급휴가(공가)를 부여한 것이다. 재택근무 형식은 아니지만 이 기간 외부 감염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상자의 외출은 자제시키고 있다.
SK그룹도 이날부터 SK㈜와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 E&S, SK네트웍스, SK실트론 등 6개 주요계열사가 1~2주간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대상은 업무 필수인원을 제외한 전 구성원이다. 해당 기간 업무에 차질이 없는 선에서 최소 인원만 순환 출근하는 방식으로 시행된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임산부 직원에게 다음 달 8일까지 2주간 특별휴가를 부여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울산공장에 이어 서울 양재동 본사도 외부인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직원들이 본사에 출입할 때 체온 체크와 함께 사원증 검사를 병행한다. 내부 회의도 연기하거나 화상으로 대체하는 식으로 개별 임직원 접촉도 최소화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현대오일뱅크도 근무 시간 유연화, 임산부 직원 재택근무 등 대응제도를 운영하는 등 대부분 집단이 비상체제를 가동 중이다.
이에 앞선 지난 24일 대한상공회의소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18만개 회원 기업에 재택근무 시행을 권고했다. 대한상의는 또 출퇴근 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해 임직원이 시차를 두고 출근하는 방안, 회의를 원격으로 진행하는 방안 등도 회원사들에게 권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도 같은 날 대책회의에서 비슷한 내용을 발표했다.
◇ '셧다운' 사례 점점 늘어
기업들이 이처럼 경계태세를 강화하는 것은 실제로 직원 감염을 통해 방역망이 뚫리면서 업무에 차질을 빚는 사례가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동차 업계가 코로나로 인한 혼선이 심한 편이다. 생산라인이 재차 멈춰서고 신차 출시도 지연되는 사례마저 나타나고 있다.
현대차는 이날(25일) 1톤트럭 '포터'를 생산하는 울산 4공장 일부 라인 가동을 중단했다. 포터 적재함 철판(데크)을 납품하는 1차 협력업체인 서진산업의 한 직원이 사망한 뒤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으면서다. 서진산업은 현재 사업장을 임시 폐쇄한 상황이다.
현대차 등 국내 완성차업체는 코로나 발생 초기 협력업체 중국 공장이 멈춰 '와이어링 하네스'라는 부품 조달이 끊기는 바람에 일제히 생산에 차질을 빚은 바 있다. 르노삼성차의 경우 내달 3~4일로 예정한 신차 'XM3' 출시행사를 무기한 연기하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이날 객실 승무원 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자 즉시 인천승무원브리핑실(IOC)을 폐쇄했다. 이와 함께 전면적인 방역을 실시하는 등 대응을 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항공업계는 최근 승객이 급감하면서 경영난이 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타항공의 경우 이달 급여가 40%만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업계에서는 지난 23일 코로나19 확진 직원이 나온 현대제철 포항공장이 해당 직원이 일하던 층과 사무동을 이날 현재까지 폐쇄한 상태다. 밀접 접촉자도 전원 재택 근무시켰다. 삼성전기의 경우 수원사업장 내 협력사 직원이 25일 확진 판정을 받자 해당 직원이 근무하던 건물을 폐쇄했다.
또 LS그룹은 서울 중심가에 가까운 용산구 LS타워 입주 계열사 직원이 최종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24일 오후부터 25일까지 건물 전체를 폐쇄했다. 해당층(16층)은 2주간, 주변층은 14∼21층은 내달 1일까지 폐쇄한다.
이밖에도 LG전자는 인천캠퍼스 연구동에 근무하는 한 직원 자녀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폐쇄했다. 삼성전자에서는 구미사업장 직원이 22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전 사업장을 일시 폐쇄했다. SK하이닉스는 이천사업장 연수교육생 가운데 감염 의심자가 발생해 접촉 임직원 800여명을 자가격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