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나 얼마 전에 이사했어. 신축아파트는 아니지만 나름 살만하고, 무엇보다 아파트 앞에 멋진 공원이 곧 들어설 예정인게 맘에 들었어. 공원이 완공되면 뷰도 더 좋아질 거고 아파트값도 올라갈 거라 생각했어. 그런데 말이야. 갑자기 공원이 완성될 즈음에 아파트와 공원 사이에 커다란 울타리가 쳐진 거야.
그냥 현관문 나서서 몇 발짝만 가면 공원에 갈 수 있었는데, 울타리 때문에 멀리 돌아서 갈 수밖에 없게 된 거야. 공원이 없는 아파트에 비하면 여전히 뷰가 나쁘진 않아. 그런데 우리 집과 공원 사이에 도보로 갈 수 있는 거리가 멀어졌어. 아파트값이 생각만큼 오를지 모르겠어. 오히려 공원 건너편에는 공원까지 도보로 곧장 갈 수 있는 새 아파트가 들어설 거 같다고 해. 그럼 새 아파트만 좋은 일 아냐. 나 좀 많이 속상해.
LG화학이 지난 17일 배터리사업부를 물적분할한다고 발표한 이후 개미투자자들이 투자심리가 들끓고 있어요. 심지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물적분할을 막아달라는 청원이 올라왔어요. 그래서 최근 주식시장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인 LG화학 분할공시 의미를 [공시줍줍]의 시각으로 되짚어 봤어요.
먼저 LG화학 물적분할 공시 내용을 다시 볼게요.
☞관련공시: LG화학 9월 17일 주요사항보고서(회사분할 결정)
지난 17일 이사회를 열고 전지사업부분을 100% 자회사로 떼어내는 물적분할 결정
LG화학에는 크게 ①석유화학 ②첨단소재 ③생명과학 ④전지사업이 있음
이중 ①~③번은 LG화학에 그대로 남겨두고
④전지사업(배터리사업부)은 LG에너지솔루션(가칭)이란 회사를 새로 만들어서 떼어내는 것.
앞으로 일정은 10월30일 임시주주총회, 12월 1일 분할기일
주식시장에서 이슈가 되는 것은 바로 분할 방식이 인적분할이 아닌 물적분할이란 점 때문.
# 물적분할 vs 인적분할 무엇임?
기업분할= 기업이 여러 개의 사업 중 한 개 이상의 사업을 떼어내서 새로운 회사를 만드는 것.
물적분할(物的分割)= 회사의 재산만 분할하는 것. 분할 후 새로 만드는 회사(LG에너지솔루션)의 주식을 기존회사(LG화학)가 모두 가지게 됨.
인적분할(人的分割)= 회사의 재산을 분할하면서 주주들의 주식도 함께 쪼개는 것. 분할 후 새로 만드는 회사(LG에너지솔루션)의 주식을 기존회사(LG화학)의 지분율 그대로 나누게 됨.
LG화학은 현재 ㈜LG(30.09%, 특수관계인 포함), 국민연금(10.51%), 소액주주(54.33%) 등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데요. 아래 그림 [기업분할 방식 차이에 따른 LG화학 주주구성 변화] 참고해 주세요.
인적분할 방식으로 회사를 만들면 기존 주주들은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 지분을 나눠서 가져요. 예를 들어 LG화학 주식 10주를 가진 주주라면 분할 후에는 LG화학 7주, LG에너지솔루션 3주를 갖는 것.(분할비율 7대3 가정. 실제 LG화학 물적분할시 순자산 비율이 대략 이 정도 수준이에요)
반면 이번처럼 물적분할 방식으로 새 회사를 떼어내면 기존 주주들은 변함없이 LG화학 주식만 가지고, LG화학이 LG에너지솔루션 지분 100%를 보유해요.(기존주주들은 LG화학을 통해 LG에너지솔루션을 간접 보유)
# LG화학은 왜 물적분할 택했음?
배터리사업은 앞으로도 그린뉴딜, 전기차 등 짱짱한 단어들과 함께 어울리며 성장할 산업. 그러나 LG화학 혼자만 하는 독점산업이 아니어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앞으로도 많은 투자금을 쏟아부어야 해요. 그렇다고 무작정 돈을 빌려서 마련할 순 없고 외부투자를 받아야 하죠. (누가 돈을 공짜로 빌려줌?) 투자를 받는 대가로 주식을 줘야겠죠.
인적분할을 하면 LG화학이 아닌 ㈜LG가 LG에너지솔루션 지분율 30.09%를 갖는데, 이 상황에서 LG에너지솔루션이 투자금을 마련을 위해 주주배정 유상증자(주식을 새로 찍어내서 주주들에게 돈 받고 파는 것)를 하면, 최대주주인 ㈜LG가 돈을 많이 써야 해요.
만약 ㈜LG가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거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하면 지분율이 자칫 30%에서 20%대로 떨어질 수 있는데, 지주회사인 ㈜LG는 상장회사 지분율 20% 이상을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하기에 증자를 외면할 수 없어요.(심지어 상장회사 지분율을 30% 이상으로 높이는 법 개정도 추진 중)
그렇다고 무작정 ㈜LG가 지분율 방어를 위해 돈을 계속 쓰다 보면 정작 자신들의 주주들에게 줄 배당금이 부족해져요. ㈜LG에는 구광모 회장을 비롯해 28명의 총수일가가 주주로 포진해있는데, 이런 주주구성을 갖춘 지주회사들은 전통적으로 배당정책이 중요해요.
따라서 ㈜LG 입장에선 인적분할로 LG에너지솔루션을 직접 지배하면 이후 상황에 여러모로 대처하기 어려워진다는 점.
반면 물적분할을 하면 ㈜LG →(30.09%)→ LG화학 →(100%)→ LG에너지솔루션 식으로 지분구조가 이뤄지는데요.
㈜LG는 LG에너지솔루션과 한 다리 건너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직접 돈을 쓸 필요가 없어요. 또한 LG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 지분 100%를 가진 상황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투자금을 모을 수 있어요. 가령 LG화학 자신들이 돈이 필요하면 지분 100% 중 일부를 팔면 되고(구주매출), LG에너지솔루션이 돈이 필요하면 새로운 주식을 발행해서 팔면 되겠죠(신주모집)
결국 LG화학(이라 쓰고 ㈜LG)이 인적분할 대신 물적분할을 선택한 이유는
1)LG에너지솔루션은 앞으로도 배터리사업 경쟁력 유지를 위해 투자자금이 많이 필요함
2)인적분할하면 ㈜LG의 자금 부담이 커지거나 지분율이 떨어질 우려(이러지도 저러지도)
3)LG화학 자금 확보(구주매출), LG에너지솔루션 자금 확보(신주모집) 모두에 유리한 구조
㈜LG나 LG화학 입장에서 물적분할은 모든 고민을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카드. 특히 요즘 SK바이오팜, 카카오게임즈 사례에서 봤듯이 기업공개시장이 불을 뿜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적 배터리회사를 상장한다면 그 인기는?
사실 체질 개선이나 사업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기업분할을 고민하는 회사들은 대부분 물적분할을 선택해요. 인적분할은 지주회사로 바꾸려는 기업들이 눈여겨보는 방법. LG화학의 기업분할 목적은 지주회사 전환이 아닌 사업 경쟁력 확보 차원이니깐 다른 회사들과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 LG화학 주주들은 왜 반발하는 것임?
하지만 LG화학 주주들은 자신들이 배터리회사(LG에너지솔루션) 지분을 직접 가지는 인적분할 대신 간접적으로 소유하는 물적분할 방식을 '선택당한 것'이 불만이에요.
최근 LG화학의 주가 상승은 뭐니 뭐니 해도 배터리사업 성장성에 대한 기대감이 많이 반영됐다는 점 부인할 수 없죠. 이런 상황에서 LG에너지솔루션 지분은 단 1주도 받지 못하고 LG화학 주식만 가지고 있으란 얘기는 일종의 LG화학 주주들과 배터리사업 사이에 울타리 하나를 쳐 놓은 것. 주주들과 배터리사업 사이의 거리가 이전보다 좀 (많이) 멀어지게 되는 것.
물론 이론적으로는 물적분할과 인적분할 모두 기존 주주들의 주식가치에 변화를 주지 않아요. LG화학이 LG에너지솔루션 지분 전량을 가지기 때문에 물적분할 이후에도 기존 주주들이 LG화학 지분을 팔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자연스레 LG에너지솔루션의 성과까지 향유하게 되는 셈.
하지만 태권도 품세 잘 한다고 반드시 대련도 잘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이론은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 실전은 다를 수 있어요.
물적분할 후 ㈜LG→LG화학→LG에너지솔루션 식으로 지분구조가 재편되면서 LG화학은 일종의 중간지주회사가 되는데, 일반적으로 지주회사들은 자신들이 가진 순자산가치의 전부를 인정받지 못하고 대략 60% 정도의 기업가치만 인정받는다고 해요.
그나마 분할 후 당분간은 LG화학이 LG에너지솔루션 지분 100%를 다 가지고 있을 예정이어서 '이론적 가치'는 그래도 인정.
하지만 LG화학은 나중에 LG에너지솔루션을 상장시켜서 투자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해요. 이 과정에서 새로운 주주들이 들어오면 LG화학의 LG에너지솔루션 지분율은 100%를 유지하지 못하고, 70~80% 수준으로 내려가죠. 그럼 LG화학 주주들은 배터리사업이 아무리 잘 되더라도 이전처럼 100%를 향유할 수 없어요. 물론 장기적으로 아주 길게 보면요.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으로 확보한 투자금을 발판 삼아 배터리사업을 쑥쑥 성장시켜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이익을 낸다면? 지분율 하락을 만회하고 남을 수도 있겠지만요.
물적분할 후 LG화학 주주로 남기 싫으면, 주식을 팔아서 그 돈으로 나중에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할 때 배터리회사 주주가 되면 문제없지 않느냐? 물론 그 방법이 있지만 SK바이오팜처럼 상장 공모주 1주를 받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고, 상장 후에 '따상상'을 해버리면 이미 넘사벽 가격대가 될 수도 있어요. 회사 측의 장밋빛 설명에도 불구하고 LG화학 주주들 입장에선 이런 점들이 당장 너무나 아쉬운 것이에요.
# 그럼 물적분할은 탕탕탕! 확정된 것임?
기업분할은 이사회에서 결정해도 주주총회에서 승인을 꼭 받아야 해요. 그것도 매우 중요한 결정이라고 해서 '특별결의'를 해요.
LG화학은 10월30일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물적분할 안건을 표결에 부칠 예정인데, 특별결의 사안이어서 주주총회 참석 표의 3분의2 이상 찬성, 전체 주식 수의 3분의1 이상 찬성을 모두 얻어야 통과!
㈜LG가 30%를 보유하고 있지만 나머지 주주들이 대거 반대 표를 던진다면 안건 통과 여부를 낙관할 수는 없어요. LG화학은 물적분할을 결정한 지난 17일 이사회에서 전자투표제 도입도 함께 결정했어요.
☞관련공시: LG화학 9월 17일 기타경영사항(자율공시)
따라서 10월30일 임시주총에선 주주총회에 직접 참석하지 않고 모바일이나 PC로 대신 표결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소액주주(올해 6월말 기준 11만6954명)들이 어느 때보다 많이 참여할 것으로 보여요.
국민연금이 LG화학 지분 10.51%를 가진 2대주주라는 점이 관심이에요. 국민연금은 자신들이 투자한 기업의 주주총회에서 찬성 또는 반대 표를 던질 때 미리 정해놓은 기준(수탁자책임활동원칙)에 따라서 결정해요. 국민연금은 기업분할 안건에 대해선 사안별로 검토하며, 주주가치 훼손이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반대하게 되어 있어요.
국민연금이 이번 LG화학 물적분할과 관련, 당장은 아쉽더라도 장기적으로 주주가치 훼손이 없다고 판단하면 찬성. 그렇지 않고 인적분할 방식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반대 표를 던질 텐데요. 연금의 의결권 방향은 소액주주나 기관투자자들에게 중요한 참고사항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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