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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지다]숫자로 되돌아 본 기업가 이건희

  • 2020.10.29(목) 08:25

[워치전망대-CEO&어닝]
1966년 견습사원 시작해 1987년 회장 취임
27년 동안 삼성전자 주가 50배, 시총 500배

고(故) 이건희 회장은 27년 간 삼성전자를 이끌며 국내 최대 기업을 넘어 글로벌 기업까지 올려놨다. 반도체와 스마트폰을 기업의 든든한 수익원으로 키우면서 바이오 등 신사업에도 투자를 감행하는 등 끊임없는 '기업가적 도전'이 그의 일생이었다.

◇ 25세 견습사원, 46세 회장 취임

이 회장은 1966년, 25세의 나이로 삼성 계열사였던 동양방송에 견습사원으로 입사했다. 본격적인 경영 수업을 시작한 것은 1979년 삼성그룹 부회장에 오르면서다. 8년 뒤 이병철 선대 회장 사후인 1987년, 46세 때 회장으로 취임했다. 삼성전자 등기이사로 선임된 것은 회장직에 오른 지 11년 만인 1998년, 그의 나이 56세였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더딘 것이었다. 이 부회장은 23세에 삼성전자 총무그룹에 부장으로 입사했고. 이후 삼성전자에서 상무보(2001), 전무(2007), 부사장(2010), 사장(2010)을 거쳐 2013년 부회장직에 올랐다. 2016년에는 삼성전자 입사 25년 만에 등기이사로 선임됐는 이는 이 회장보다 7년 빠른 것이다.

◇ 4000억 가전업체, 200조 글로벌 공룡으로

이건희 회장이 1987년 11월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했을 당시 삼성전자는 시가총액 4000억원 규모의 회사였다. 당시 삼성전자 보통주 주가는 2만7000원대였다. 시총 규모로 한국통신, 포항제철보다는 한참 뒤였고, 가전 사업에서도 금성전자(현 LG전자)보다 뒤처졌다. 1987년 연간 매출은 2조3813억원, 영업이익은 1127억원이었다.

삼성전자를 지금의 위치까지 올려놓은 원동력은 반도체였다. 이 회장은 실리콘 밸리 유학 후 돌아와 1974년부터 반도체 사업에 눈독을 들였다. 당시 고 이병철 회장에게 한국반도체 인수를 제안했지만 거절 당하자 이를 사재로 인수했다. 그리고는 취임 직후인 1988년 그 후신인 삼성반도체통신을 삼성전자에 합병시켰다.

삼성전자는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 개발에 성공해 반도체 시장에서 떠오르는 강자가 됐다. 또 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라는 말로 잘 알려진 신경영 선언까지 더해져 주가는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삼성전자 주가는 1995년 10만원을 넘었고, 시총은 6조원을 넘겼다.

휴대전화도 한몫했다. 초창기 삼성전자의 휴대전화는 품질이 떨어진다는 핀잔을 들었다. 이에 이 회장은 1995년 구미사업장에 불량 휴대전화 15만대를 모아 불에 태우는 '화형식'을 진행하는 등 품질 개선을 강조했다. 결국 삼성전자는 그해 국내 점유율 1위를 쟁취했다.

삼성전자 주가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여파로 3만원대까지 주저앉기도 했다. 그러나 반도체와 휴대전화 사업이 실적을 쌍끌이한 덕에 1999년 국내 상장주식 중 시총 1위에 올랐다. 2004년에는 주가 50만원을, 넘겼다.

2010년 스마트폰 '갤럭시'의 등장은 삼성전자 주가가 또 한 번 솟구치는 계기가 됐다. 특별검사 수사로 경영에서 한 때 물러났던 이 회장의 복귀와 동시에 '갤럭시S'가 출시됐다. 삼성전자 주가는 2011년 1월 사상 처음으로 100만원을 넘겼고 2012년에는 150만원을 돌파했다.

2014년 5월 이 회장이 병환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당시 삼성전자 주가는 133만5000원, 시총은 196조6446억원이었다. 회장직 취임 당시와 비교하면 약 50배 상승한 셈이다. 증자·액면분할을 거친 시총은 약 500배가 치솟았다.

◇ 영업이익 1127억, 27년 후 25조로

1987년 삼성전자의 연간 매출은 2조3813억원, 영업이익은 1127억원이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서 조회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삼성전자 사업보고서는 1998년인데, 그해 삼성전자의 매출은 20조6820억원, 영업이익은 2조3220억원이었다. 11년 동안 매출 10배, 영업이익 20배의 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더욱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다시 10년 뒤인 2008년에는 국내 단일 기업 중 처음으로 100조원의 매출을 돌파했다. 2008년 연결재무제표 기준 삼성전자의 매출은 121조2943억원이었다. 이를 배로 늘리는 데는 단 4년 걸렸다. 2012년 매출 200조원을 돌파한 것이다.

이 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난 2014년 삼성전자의 매출은 206조2060억원, 영업이익은 25조251억원이었다. 1987년과 비교하면 매출은 86.6배, 영업이익은 222.1배 증가했다.

그룹 자산은 80배 가량 늘었다. 이 회장의 취임 첫 해인 1987년 자산은 10조원 수준에서 지난해 803조원으로 793조원 증가했다. 계열사 숫자도 37곳에서 59곳으로 22곳 늘었다.

◇ '숫자로 보여준' 여성인력 질적 변화

이 회장은 평소 우리 사회와 기업이 여성이 지닌 잠재력을 활용한다면 훨씬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기존의 남녀차별 관행을 걷어내는 일에 집중하도록 했다.

삼성은 1992년 4월 여성전문직제를 도입하고 비서전문직 50명을 공개채용해 여성인력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9월에도 100명의 우수 여성인력을 소프트웨어직군에서 공채했다. 1995년 3월부터는 사무직 여사원에게 적용했던 근무복 제도를 폐지했다.

특히 기혼 여성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직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배려할 것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서울과 전국 주요 사업장에 어린이집을 설치했다.

이런 배경 속에 삼성전자의 여직원은 1998년 1만명대에서 2019년 현재 2만7000명대로 2.7배 증가했다. 1998년 3.69년에 머물렀던 평균 근속 연수도 10.9년으로 늘었다. 여성 직원의 평균 급여액도 1700만원선에서 8300만원까지 가파르게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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