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내 마지막 사면을 단행하지 않을 것이란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경제인 사면을 기대했던 재계가 아쉬워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새정부 출범 후 8월15일 '광복절 특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으나 엇갈린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 국민여론 고려 사면권 행사 안할 듯
3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퇴임 직전 '부처님오신날'(5월8일)을 앞두고 임기 내 마지막 사면권 행사 여부를 숙고했으나, 행사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주재하는 마지막 국무회의가 이날 개최된 가운데 전날(2일)까지 법무부 사면심사준비위원회가 열려야 했으나 이와 관련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사면을 단행하지 않은 것은 국민 여론을 고려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사면이 사법 정의를 보완할 수 있을지, 사법 정의에 부딪칠지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국민들의 몫"이라며 "국민의 지지나 공감대가 판단 기준"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사면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국민여론을 살피겠다는 의미였다.
실제 여론 조사 결과 경제인인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사면 찬성 여론은 높은 편이었으나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경수 전 경남지사,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경우 반대 여론이 찬성보다 더 높았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는 TBS 의뢰로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12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9~30일 이 같은 내용의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부회장 특정인에 대한 사면이 어렵다는 판단에 문 대통령이 아예 사면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정치권에선 새 정부 출범 이후 8월15일 '광복절 특사'를 통해 이 부회장이 사면되지 않겠느냐란 추측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친기업 행보를 확대하고 있어 경제 활력을 위해 경제인 사면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에서다.
반면 일각에선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특별 사면을 단행할 지 미지수"라며 "사실상 문 대통령 퇴임 직전이 이 부회장 특별사면의 마지막 기회였다"고 관측했다.
경제계 "차기 정부 나서야"
이 부회장의 사면이 사실상 불발되자 경제계에선 아쉽다는 반응이다. 김현수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정책실장은 "사회통합이 절실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형기를 다 채웠거나 이미 마친 기업인들의 사면복권을 청원했으나 반영되지 않은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위기 극복과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차기 정부가 들어서면 경제인 사면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당사자인 삼성전자도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삼성전자를 둘러싼 대내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리더십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으나 이 부회장이 현재 가석방 신분으로 정상적인 경영 참여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7년 국정농단 사건으로 징역 2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지난해 8월 가석방으로 풀려난 바 있다. 그러나 취업이 제한되고 형기 종료일인 오는 7월까지 해외 현장 경영이 어려워 경영 일선에 나서는 것이 쉽지 않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작년 12월 중동 출장을 수행하고 난 이후 올해에는 해외 출장을 수행하지 못했다.
아울러 이 부회장은 매주 목요일에 합병 관련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 대한 재판을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 중이다. 지난 3월부터는 3주에 한번 금요일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심리도 병행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법무부의 보호관찰과 취업제한에 걸려 있어 2019년 10월 사내이사직에서 물러난 이후 등기임원을 다시 맡을 수 없는 상태다.
삼성전자 최대 실적에도 '시계제로'
삼성전자는 올 1분기 주력인 반도체와 가전 사업의 선전 등에 힘입어 사상 최대 매출을 달성했으나 거시경제 불확실성과 물류 이슈 등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그야말로 '시계제로' 상태에 놓여있다.
핵심 사업인 반도체 부문만 해도 당장은 호실적이 이어지고 있으나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 여건상 실적 개선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미지수다.
삼성전자는 오는 2030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세계 1위를 목표로 대규모 투자를 통한 점유율 확대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 1위인 대만의 TSMC와의 점유율 격차는 30%대에서 줄지 않고 있다. 미세공정 파운드리 수율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어 반도체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제계에선 TSMC가 대만 정부의 전폭적인 반도체 산업 지원에 힘입어 성장한 데 반해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의 취업 제한 등으로 '사법 족쇄'에 갇히면서 투자가 위축됐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한상공회의소를 비롯한 경제5단체는 이 부회장이 적극적인 경영 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사면복권을 청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