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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진늪 빠진 석유화학, 허리띠 졸라맨다

  • 2022.12.01(목) 16:22

겹악재로 실적부진…내년전망도 흐림
공장가동률 조정하고 설비 증설 늦춰

수요 부진과 원료 가격 상승으로 불황이 길어지면서 석유화학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정유업체들까지 석유화학 사업에 진출해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이다. 석유화학 업체들은 공장 가동률을 낮추고 설비 증설 기간을 늘리는 등 '보릿고개'를 버티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남는 게 없는 장사

올 3분기 주요 석유화학 업체 4곳(LG화학·롯데케미칼·금호석유화학·한화솔루션)의 영업이익 합계는 193억원으로 전년 동기 2조2674억원 대비 99.1% 하락했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올해 석유화학 업체들이 부진에 빠진 원인은 나프타(Naphtha·납사)에서 찾을 수 있다. 석유화학업체들은 나프타를 열분해(NCC)한 후 에틸렌과 프로필렌, 벤젠 등 기초유분을 생산한다. 이를 이용해 합성수지와 합성고무, 합성섬유 등의 석유화학 제품을 제조한다. 나프타가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이유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나프타를 이용한 석유화학 사업은 호황기를 누렸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나프타는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치솟자 나프타 가격도 오른 것이다. 최근엔 환율까지 오르면서 나프타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석유화학 업체들은 부담이 더 커졌다.

여기에 더해 경기 침체로 플라스틱, 합성고무 등 석유화학 제품 수요가 줄면서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의 가격 마저도 하락하고 있다.

실제 석유화학 업황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과 원료인 나프타의 가격 차이)'는 올 3분기 평균 184달러로 전년 동기(335달러) 대비 46% 하락했다. 업계에서는 300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삼는데, 이를 크게 밑돌면서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내년도 어둡다

내년까지는 불황이 계속될 전망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2023년 일반산업 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석유화학산업은 수요둔화, 공급과잉, 원가상승 등 삼중고에 직면했다"며 "전방산업 수요 감소가 내년까지 이어지면서 주요 기업의 실적 개선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유업체들이 석유화학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점도 실적 개선의 걸림돌이다. 최근 친환경차 보급이 확대되는 등 친환경 정책의 확산으로 정유사업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자 원유를 활용한 석유화학 사업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지난 17일 에쓰오일(S-Oil)은 '샤힌 프로젝트'를 통해 70억달러(약 9조2580억원)를 투자하고 2026년부터 연간 최대 320만t(톤)의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할 예정이다. GS칼텍스도 11일부터 2조7000원을 투자한 올레핀(MFC) 생산 시설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이 시설을 통해 연간 에틸렌 75만t, 프로필렌 41만t 등 다양한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한다는 방침이다.

원유를 직접 정제하는 정유업체는 나프타를 자체 조달해 석유화학 원료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정제 설비가 없어 나프타를 외부에서 공급받는 석유화학 업체들보다 가격경쟁력에서 앞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버티기' 돌입

정유사들의 진출과 수요 부진이 이어지면서 업황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자 석유화학 업체들은 공장 가동률을 낮추고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 3분기 주요 석유화학업체 네 곳의 공장가동률은 한화솔루션을 제외하고 대부분 하락했다. 팔수록 손해보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차라리 공장을 덜 가동하겠다는 것이다. 한화솔루션은 소금물 기반의 가성소다의 비중이 높아 공장가동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가성소다는 배터리 양극재 불순물 제거 등 여러 산업에서 세척제와 중화제로 쓰이며 수요가 비교적 견조한 덕분이다.

가동률 조정을 넘어 잠시 생산을 멈추는 곳도 있다. 석유화학 업체들은 4년마다 공장 가동을 멈추고, 필수 장비를 점검하는 정기 보수 기간을 갖는다. 업황이 어려운 올해는 예년보다 정기보수 기간을 늘리고 공장을 더 오래 멈춘다. 

LG화학 전남 여수 NCC(나프타 분해 설비)는 정기 보수 기간을 60일로 늘려 지난 9월부터 12월 초까지 진행한다.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의 합작사인 여천NCC 역시 60일의 보수 기간을 갖고 공장을 멈춘 상황이다. 보통 정기 보수를 40일가량 진행해왔던 점을 고려하면 1.5배 이상 길어진 셈이다.

이 밖에도 예정됐던 투자 및 설비 증설 기간도 늦추고 있다. 불황이 지속되자 투자를 계획보다 천천히 진행하면서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LG화학은 국내와 중국, 말레이시아 공장의 NB라텍스 설비를 증설을 위해 투자하고 있었지만, 최근 수요가 급감하자 투자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금호석유화학도 설비 증설 시점을 늦추고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방침이다. 당초 2560억원을 투자해 울산 석유화학단지의 NB라텍스 생산능력을 2023년 95만t까지 끌어올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불황이 계속되자 완공 시점을 기존 2023년 12월 31일에서 4개월가량 늦췄다.

석화업계 관계자는 "사업 환경이 예상보다 좋지 않으면서 올해 3분기 공장가동률을 작년보다 낮췄다"며 "업황이 회복세로 돌아설 때까지는 당분간 공장가동률을 낮추고 설비를 섣불리 증설하지 않는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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