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2조5000억원 규모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철회했다. 지난달 30일 증자 발표 이후 14일 만이다. 고려아연 사외이사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등 경영진이 빠진 독립적 회의에서 증자 철회를 결정했고, 이사회 의장인 최 회장도 이를 수용했다.
영풍·MBK파트너스와 지분싸움에서 밀렸던 최 회장이 꺼낸 회심의 증자 카드는 자본시장에 혼란을 준다는 역풍에 부딪혔고, 사외이사가 증자 철회를 결정하는 모양새로 마무리됐다.
13일 오전 8시30분 고려아연은 이사회를 열고 유상증자 철회를 승인했다. 이날 이사회가 폐회한 시간은 오전 8시56분. 증자 철회를 결정하는 데는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고려아연 이사회는 지난달 30일 이사회를 열고 2조5000억원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깜짝 발표했다. 청약 한도(3%)를 두는 방식으로 영풍·MBK 연합과의 지분 경쟁 역전을 노렸다. 하지만 자사주 공개매수 직후에 추진된 유상증자로 인한 시장 혼란, 금융권 빚으로 공개매수해 경영권을 방어한 뒤 주주 증자금으로 빚을 갚는 자금의 흐름 등에 역풍이 불었다.
금융당국의 조사가 시작되자 고려아연은 지난 8일 이사회를 열었다. 이날 이사회는 사외이사로만 구성된 별도의 회의를 통해 증자에 대해 다시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경영진을 견제하는 사외이사들로만 구성된 독립적인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사외이사의 결론은 증자 철회였다. 13일 이사회가 26분만에 이를 결정한 것도 사외이사의 독립 회의에서 이미 결론이 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주주의 우려와 시장 혼란에 대해 경청했고,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신뢰를 회복하는 가장 합리적이고 최선의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영풍 관계자는 "자본시장에 혼란을 끼치고 주주에게 피해를 입힌 후에야 뒤늦게 철회된 점에 대해 안타깝다"고 전했다.
경영권 분쟁의 향방은 주주총회에서 결정된다. 영풍·MBK 연합은 지난달 28일 고려아연에 임시 주총 소집을 요구했지만, 고려아연이 주총 소집 절차를 밟지 않으면서 법정 공방이 벌어졌다. 이달 27일 '임시 주총 소집허가' 심문기일 이후에 열릴 주총에서 명운을 건 표 대결이 벌어지게 된다. 현재 지분 구조는 영풍·MBK 연합 39%대, 최윤범 회장 일가와 우호세력 34%대로 추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