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율주행차 활성화의 관건은 '규제 완화'보다 '수요 창출'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 정부는 전 세계 3번째로 레벨4 자율주행 제도를 마련했지만 시장은 여전히 정체돼 있다. 미국과 중국이 자본과 정책 지원을 앞세워 주도권을 쥔 반면, 한국은 제도만 존재할 뿐 실제 상용화는 멈춰 있다는 평가다.
독주하는 美·中…수요 부족한 韓
21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열린 '2025 KAIDA(한국수입자동차협회) 창립 30주년 자동차 정책 세미나'에서 국내 자율주행 스타트업인 오토노머스에이투지의 유민상 상무는 "국내 자율주행차가 나오지 않는 건 자본과 수요의 문제"라고 짚었다.
그는 전기차 사례를 들며 "전기차가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매년 2조원 이상의 보조금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자율주행차도 정부 예산과 실증 수요를 결합할 정책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유 상무는 "제도적 기반은 충분하지만 투자 여력이 부족하다"며 현실적인 한계를 언급했다. 현재 레벨4 자율주행 분야를 선도하는 오토노머스에이투지는 국내 스타트업 중 최대 규모인 820억원(약 5700만 달러)을 투자받았지만, 이는 미국 기업의 시리즈A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는 "국내에서는 스타트업이 수천억원 단위의 자금을 유치하기 어렵다"며 "자체 예산으로 실증과 운영을 이어가기 힘든 구조"라고 강조했다.
특히 유 상무는 국내 실증 규모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작년 말 기준 국내 자율주행차는 총 471대로 이중 상시 운행 차량은 200대가 되지 않는다. 이에 비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3000여대, 중국 주요 도시는 수천 대의 자율주행차가 운행되고 있다. 유 상무는 "이 정도 규모가 돼야 양질의 데이터가 쌓인다"며 "예산과 수요가 부족한 국내 현실에서는 고도화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현재 레벨4 이상의 자율주행차 시장은 미국과 중국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시장조사기관 가이드하우스인사이트에 따르면 글로벌 레벨4 이상 자율주행차 시장 상위 10개 기업 중 7곳이 미국 기업, 2곳이 중국 기업이며 한국 기업은 한 곳도 포함되지 않았다. 오토노머스에이투지가 11위로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미국과 중국의 독주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된 결과다. 먼저 미국은 기업이 법으로 규정되지 않은 신사업 영역을 시작하기 쉬운 대표적인 국가다. 법에서 금지한 사항 외에는 모든 행위를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 체계를 운영하고 있어서다. 자율주행차 관련 가이드라인도 세부 규제가 아닌 선언적 원칙 위주로 구성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7~2018년 재임 당시 규제 완화로 테슬라의 성장을 이끈 만큼, 현재도 같은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은 정부 주도의 실증과 투자를 병행하고 있다. 베이징, 상하이, 우한 등 지정 도시에서는 자율주행 운행이 전면 허용된다. 우한은 코로나19 이후 경기 회복을 위해 자율주행차 전면 운행을 허용한 대표 사례다. 미국이 민간 자본 중심으로 수조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한다면 중국은 정부가 직접 조 단위 자금을 투입한다. 미국 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중국 정부의 '미래 모빌리티' 투자 규모는 239조원에 이른다.
"대중교통이 해법"…내년 시장 열린다
업계에서는 레벨4 자율주행차 상용화의 무대가 개인용 승용차가 아닌 대중교통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가격이 높고 기술이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판매보다, 정부와 운수사업자 중심의 제한된 운행이 현실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유 상무는 "자율주행차는 아직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지만 대중교통은 이미 높은 차량 단가와 운행 비용을 감내하고 있다"며 "저상 전기버스가 4~5억원, 수소버스가 6~7억원 수준임에도 보급이 확대된 것처럼 자율주행버스 역시 수용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 정부가 올해 3월 세계 세 번째로 법제화를 완료한 '레벨4 자율주행 성능인증제도'도 대중교통과 물류 위주다. 해당 제도는 인증을 받은 자율주행차를 정부나 운수사업자가 대중교통·물류용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령 운전자 증가와 인력난도 대중교통을 통한 자율주행 상용화를 앞당길 요인으로 꼽힌다.
유 상무는 "자율주행의 사회적 가치는 고령화 사회에서 새로운 교통 솔루션을 제시하는 데 있다"며 "서울시 최고령 택시기사가 91세일 정도로 고령화가 진행된 만큼, 자율주행차는 고령 운전자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늦출 게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운행과 보험 체계를 병행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올해 정부가 국정과제에 네거티브 규제 확대를 명시한 만큼 규제 완화 속도가 빨라질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엄성복 한국자동차모빌리티안전학회 수석연구위원은 "정부가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천명한 만큼 앞으로는 보다 적극적인 개혁이 가능할 것"이라며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운영 효율성 때문에 막히는 경우가 더 많다"고 제언했다. 이어 "기존 제도를 산업 친화적이거나 국민 안전 중심으로 해석하면 별도의 입법 없이도 상당 부분이 해소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