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동조합이 다음 달 총파업을 예고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전반에 긴장감이 확산되고 있다. 단순 생산 차질을 넘어 '신뢰 붕괴'와 고객 이탈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면서 산업계 전반에 비상등이 켜진 모습이다.
파업의 진짜 대가는?
삼성전자 노조는 오는 5월 21일부터 6월 7일까지 18일간 총파업을 예고했다. 지난 23일 평택캠퍼스 인근에서 4만여 명이 참여한 대규모 집회 이후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삼성전자에 반도체 공급 차질 가능성을 문의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D램·낸드플래시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비롯해 스마트폰·자동차 등 전 산업에 쓰이는 핵심 부품이다. 파업으로 생산 라인이 멈출 경우 산업 전반에 연쇄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평가다. 실제 노조는 집회 당일 파운드리 생산이 58.1%, 메모리 생산이 18.4% 감소했다고 주장하며 파업 시 최대 30조원 규모의 피해 가능성을 제시했다.
증권가 역시 생산 차질을 현실적 리스크로 보고 있다. 18일간 파업이 이어질 경우 설비 재정비와 수율 회복에 2~3주가 추가로 필요하고 글로벌 공급 차질 규모는 D램 3~4%, 낸드 2~3% 수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미 급등한 메모리 가격이 추가로 상승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직접 손실 규모도 상당하다. 학계에서는 공장 가동 중단 시 하루 손실이 1조원에 달하고, 장기화할 경우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이 최대 10조원 감소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수치로 드러나지 않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안민정책포럼 세미나에서 "삼성전자 노조 파업의 핵심 리스크는 단순 손실이 아니라 신뢰와 공급망 훼손"이라며 "고객 불안과 거래선 이탈, 공급망 재편 압력 등이 더 치명적일 수 있다"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글로벌 고객사들은 공급 안정성을 최우선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다. 리스크가 확대될 경우 TSMC 등 대체 공급선 검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산업 특성상 한 번 공급망이 이동하면 다시 되돌리기 어려워 장기적인 시장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부 기업은 공급망 회복력까지 ESG 평가에 포함, 그 결과를 물량 배분에 직접 반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생산 차질은 곧 시장 지위 약화로 직결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파업의 여파는 산업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와 연결된 1700여 개 소재·부품·장비 협력사와 지역 경제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평택캠퍼스의 경우 생산라인 하나에 수만 명의 고용이 연계돼 있어 가동 중단 시 연쇄 충격이 불가피하다.
'투명성' 빠진 성과급…삼성 갈등 키웠나
노조의 압박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삼성전자 초기업노조는 총파업 첫날인 오는 5월 2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재용 회장 자택 앞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했다. 협상이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총수의 직접 소통을 요구, 해당 자리에서 총파업 계획을 공식 발표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같은 날 주주단체까지 가세하며 갈등은 다층 구조로 번지고 있다. 노조 활동에 반대해온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는 같은 장소에서 맞불 집회를 예고했다. 노조 집회에 앞서 오전 시간대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했으며 노조 요구가 주주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갈등의 핵심은 성과급 체계다. 노조는 △성과급 산정 기준의 투명화 △계열사 간 차별 해소 △성과급 상한 폐지 등을 주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제도화를 내세우며 개인별 성과급을 연봉의 50%로 제한한 현행 상한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 삼성은 영업이익에서 자본비용을 제외한 경제적 부가가치(EVA)를 기준으로 성과급을 산출하고 있다. 이 구조는 투자 비용이 커질수록 성과급이 줄어들 수 있어 실적과 체감 보상 간 괴리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해당 지표가 임직원에게 공개되지 않아 '불투명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노조 요구가 받아들여질 경우 성과급 규모는 올해 기준 최대 45조원에 이를 수 있다. 반면 사측은 사업부 간 실적 편차와 중장기 투자 여력 훼손을 이유로 난색을 보이고 있다. DS부문 특별 포상안 등 대안을 제시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한 상태다. 노조는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며 강경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을 '비효율적 균형'으로 설명한다. 송 교수는 성과급 산정 기준의 불투명성과 정보 비대칭이 갈등의 근본 원인이라고 짚었다. 이어 "노사는 파업이 모두에게 손해라는 점을 알면서도 서로의 정보를 숨기거나 과장하는 과정에서 비합리적 균형에 빠진다"며 이른바 '힉스 패러독스'로 현 상황을 진단했다.
해법으로는 보상 체계의 객관화와 투명성 확보가 제시된다. △성과보상 기준 공개를 비롯해 ROIC(투하자본이익률)·TSR(총주주수익률)·EVA(경제적 부가가치) 등 정량 지표 기반 보상체계 정비 △이익 구간별 차등배분 △상·하한 및 환수(클로백) 메커니즘 도입 △외부 검증·중재 장치 마련 △파업 이전 조정 절차(쿨링오프) 제도화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반도체 산업은 초대형 투자와 사이클 변동성이 큰 만큼 성과급 논의도 중장기 경쟁력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영업이익의 15% 수준은 연간 연구개발(R&D) 투자에 맞먹는 규모여서 현금 보상이 고착화될 경우 투자 여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성과급 상한제 폐지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김 교수는 "이례적인 호황에 대비한 상한제는 일종의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며 "단기 실적에 맞춰 상한까지 없앨 경우 향후 사이클 하락기에 대응 여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신 주식보상(RSU)이나 장기 성과연동 인센티브를 확대해 보상 구조를 유연하게 설계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제시했다.
아울러 성과지표와 관련해선 제도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EVA 등 지표는 자본비용까지 반영하는 유용한 기준이지만 산출 구조가 복잡해 구성원들이 체감하기 어려운 '깜깜이 지표'로 인식될 소지가 있다"며 "영업이익 등 보다 직관적인 지표를 병행하거나 일정 비율 중 유리한 기준을 선택하는 방식 등 가시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산출 로직은 투명하게 공개하되 세부 원가나 전략 등 민감한 정보는 보호하는 선에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며 "노사 공동 산정기구나 외부 검증 절차를 도입해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합리적인 해법"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