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이 되는 것도 어렵지만, 트로피를 지키는 건 더 힘들다. 지난해 중소형 증권사의 절대 강자 교보증권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6월 24일)라는 녹록치 않은 시장 환경에서도 명성을 굳혀가고 있다. 현재로서는 ‘디펜딩 챔피언’ 교보증권에게 불의의 일격을 가할 곳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올해를 4개월여 앞둔 현 시점에서 이렇게 단언해도 좋을 것 같다. “교보 지존”.
늘 이기는 팀만 이긴다면, ‘이변’이란 이 매력 넘치는 단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진부한 표현은 승부의 세계가 늘 예측불가능성에 기반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사람들은 늘 이변과 의외성에 더 많은 표를 던지고, 열광한다. 유진투자증권을 비롯해 SK증권, 동부증권 등이 올 2분기 의외성을 보여준 증권사들의 면면이다.
19일 국내 증권사 중 자기자본 3000억원(2015년 말 연결 기준) 이상 1조원 미만의 중소형사들의 올해 2분기 경영 실적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분석 대상 14개사의 올 2분기 순이익(연결 기준)은 675억원으로 올 1분기(528억원)에 비해 27.8%(147억원) 확대됐다.
자기자본 1조원 이상 11개 대형사(3월결산 신영증권 제외)의 순이익이 4777억원으로 7.6% 증가한 것에 비춰보면, 중소형사들이 대형사보다 선전했음을 엿볼 수 있다. 1년 전(前)과 견주어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만 보면 중소형사의 2분기 순익은 1년 전(2010억원)의 3분의 1 토막이지만 ‘한화투자증권 변수’를 빼놓고 보면 양상이 달라진다. 한화투자증권을 제외한 13개사의 2분기 순익은 141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840억원)에 비해 23.2%(427억원) 줄어드는 데 머무른다. 작년 2분기(9135억원) 보다 47.7% 떨어진 대형사보다 낮다.
지난해 주가연계증권(ELS) 발행을 급격하게 늘려온 한화투자증권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ELS의 부메랑을 맞고 흔들거리고 있다. ELS 기초 자산으로 가장 많이 쓰는 항셍중국기업지수(HSCEI·이하 H지수)의 급락으로 헷지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123억원 순익 적자로 돌아섰다. 올 들어서도 여지없이 ELS 관련 운용손실이 이어지고 있다. 1분기 659억원에 이어 2분기에도 738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14개사 중 유일한 적자다.
‘ELS 쇼크’로 인해 재무건전성이 급속도로 악화된 한화투자증권은 다음달 26일(납입일) 2000억원의 액면 미달 유상증자를 추진 중이다. 다만 앞으로는 이 같은 실적 부진은 되풀이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승주 한화투자증권 대표는 지난 17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ELS 손실은 이제 대부분 털어냈고 6월에는 ELS 운용 손익이 9개월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며 “7월부터 한화투자증권은 기존과 전혀 다른 증권사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2015년 전체 순익 789억원으로 1999년 이후 16년만에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웠던 교보증권이 올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중소형사 순익 순위표 최상단에 위치했다. 순익 258억원으로 1분기 보다 43억원을 더 벌어들였고, 작년 2분기에 비해서도 19억원이 더 많다. 무엇보다 다른 증권사에 비해 경쟁력을 보이고 있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구조화금융(SF) 등 부동산금융 쪽에서 변함없이 재미를 봤다.
교보증권의 독주 체제 속에 상위권의 격차가 굉장히 촘촘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100억~140억원대에서 2~7위가 매겨졌다. 이런 가운데 유진투자증권이 142억원을 기록하며 5위에서 2위로 치고 올라가는 ‘깜짝쇼’를 연출했다. 채권과 투자금융(IB) 부문에서 선전했다는 게 유진투자증권의 설명이다.
여기에 SK증권의 가세로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강점인 상품 운용 및 리테일 부문이 살아나며 135억원의 순이익을 기록, 무려 129%의 성장률로 4위에 랭크했다. 지난해에만 해도 11위에 머물렀던 바로 그 SK증권이다. 올 1분기에도 8위에 그쳤다. 그랬던 SK증권이 상반기에만 194억원의 순익을 내며 작년 전체 순익(230억원)의 84%를 해치웠다.
반면 1분기 2위였던 HMC투자증권은 약간 멈칫했다. 1분기보다 15%가량 감소한 140억원으로 3위로 내려왔다. 다만 순위상으로 2위와의 우열을 따지기에는 무리가 있고, 유진투자증권이 ‘아주 조금 더 잘했다’는 의미일 뿐 고작 ‘2억원’이란 수치가 말해주듯이 HMC투자증권은 한 끗이 아쉬웠을 뿐이다.
올듯어 약진하는 듯 했던 KB투자증권의 경우에도 뒷걸음질쳤다. 1분기 160억원에 달했던 순익이 126억원으로 21% 줄어든 것. HMC투자증권(-15%), 부국증권(-18%)와 더불어 순익이 떨어진 3개사 가운데 감소폭이 가장 컸다. 이로 인해 작년 6위에서 올 1분기 3위까지 올라갔던 순위는 5위로 내려왔다.
하위권에서는 동부증권의 행보가 심상찮다. 지난해 98억원 순손실을 기록하며 한화투자증권과 더불어 적자사였던 동부증권이 올 1분기 30억원에 이어 2분기에는 갑절 넘게 불어난 65억원의 흑자를 기록한 것. 작년 같은 기간 39억원 적자에 비해서도 흑자 전환이다. 점차 안정권에 접어든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