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자본시장 선진화'를 국정과제로 선정한 가운데 다양한 소액주주 보호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대주주의 매매 계획을 미리 시장에 알리는 사전 공시제도와 기업이 주식양수도 방식으로 인수합병(M&A)을 진행할 때 소액주주의 지분을 인수하도록 하는 주식매수청구권 제도 등이 대표적이다.
이와 관련해 당국과 경영계가 입장 차이를 드러내고 있어 향후 추이에 관심이 쏠린다. 내부자 거래의 사전 공시제도에 대해 당국과 학계는 카카오페이 사태의 재현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반면 경영계에선 시장 교란을 일으킬 수 있어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며 각을 세우고 있다.
마찬가지로 매수청구권 제도에 대해서도 당국과 학계는 소액주주의 투자 회수 기회 마련 등을 기대하는 한편 기업들은 인수 자금 부담을 높여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경영진 먹튀 막아라" 내부자 거래 사전 공시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는 109건의 불공정거래 혐의사건을 금융위원회에 통보했다. 이중 미공개 정보이용이 77건(70.6%)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고 시세조종이 13건(11.9%), 부정거래가 10건(9.2%)으로 뒤를 이었다.
대주주 매각으로 주식이 급락하며 이른바 '먹튀' 논란이 빚어진 카카오페이 사태 역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내부자 거래 의혹을 받고 있는 사례다.
카카오페이는 지난해 12월 당시 상장 한 달 만에 류영준 당시 대표를 비롯한 경영진 8명이 스톡옵션을 통해 취득한 자사주 900억원어치를 팔아 치워 도덕적 해이 문제가 불거졌다. 스톡옵션으로 받은 주식은 보호예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허점을 파고든 것이다. 최근 2대 주주인 알리페이의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까지 이어지면서 주가는 공모가 이하로 떨어졌고 이는 고스란히 소액주주들의 손실로 이어졌다.
국내에서는 대주주의 지분 거래 사실을 사후 공시를 통해서만 알리고 있어 해외와 비교해 내부자 거래를 규제하는 수단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안으로 미국의 사전 공시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금융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주식시장 투자자보호 강화' 정책 세미나에서도 사전 공시제도 도입 논의가 이뤄졌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유성 연세대 교수는 "내부자 증권거래가 시장가격 형성 기능에 매우 중요한 정보임을 인지하고 있으므로 사전 공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도 패널토론에서 "카카오페이의 경우에도 임원진의 매각 후 오버행(대규모 매각 물량 출회) 이슈에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결국 시장에서 불신이 생겨 2대 주주 매도까지 이어지는 '데스 스파이럴'(Death spiral·죽음의 소용돌이)이 발생했다"며 "시장 신뢰성 확보 차원에서 사전 신고 제도가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힘을 보탰다.
당국 역시 도입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이번 행사에서 축사를 맡은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회사 내부자의 주식 매도 시 처분 계획에 대해선 사전에 공시하도록 해 내부자 거래와 관련한 정보의 투명성을 제고하겠다"고 밝혔다.
당국과 학계가 공통적인 의견을 피력한 만큼 법제화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앞서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주요 주주가 발행주식 총수 1% 이상의 주식을 장내매도할 경우 금융위와 한국거래소에 대량 매도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다만 기업들은 사전 공시제도의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시장에 주가 고점 신호를 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재계 관계자는 "매각을 미리 공시하면 주주들은 '회사에 문제가 생겼구나'로 판단하고 물량을 집어던지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며 "오히려 소액주주들에게 손해가 발생할 수 있어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시원 법무법인 세종 전문위원은 "대주주의 계획 수립과 실제 매각까지 기간이 너무 길면 내부자 거래의 시장가격 형성 기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반면 기간이 너무 짧으면 이를 남용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식양수도 M&A시 매수청구권 부여
주식양수도 방식 M&A 진행 시 소액주주에게 매수청구권을 부여하는 제도도 금융위가 추진 중인 정책 가운데 하나다. 김소영 부위원장은 정책 세미나에서 "주식 양수도에 의한 경영권 변경 시 피인수기업 소액주주에 대한 보호장치를 마련하겠다"며 "영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해외에서는 의무공개매수 제도를 통해 소액주주에게도 매각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식양수도는 인수인과 피인수인이 계약을 통해 주식을 주고 받는 것으로 국내 기업 M&A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방법이다. 2017~2021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된 경영권 거래 1293건 가운데 82.8%에 해당하는 1070건이 주식양수도 방식으로 진행됐다. 현행 제도상 지배주주만 인수인에 지분을 처분하고 거래 당사자가 아닌 일반 주주는 지분을 매각할 기회가 없다.
학계에서는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주식매수청구권 부여가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정준혁 서울대 교수는 "매수청구권 제도가 도입될 경우 엑시트가 목적인 기업사냥꾼이라면 주식 100%를 매입해야 하므로 인수 부담이 커져 거래를 포기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며 "또 인수인이 모든 주주들에게 인수 후 경영계획을 공개해야 하므로 거래가 투명해진다는 장점이 있다"고 언급했다.
한때 우리나라는 의무공개매수 제도를 운용했으나 외환위기 당시 기업 구조조정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폐지됐다. 현재는 영업양수도나 합병 방식으로 M&A를 할 때만 반대 주주들을 대상으로 주식매수청구권이 부여된다.
그러나 기업들은 주식양수도 방식 M&A 진행 시 소액주주에게 매수청구권을 부여하면 M&A 시장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상장사협의회 관계자는 "제도의 취지는 이해가 가지만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경영권 인수에 투입되는 자금이 늘어나 구조조정 진행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경영계 관계자는 "결국 매수청구권도 비용 중 하나이기 때문에 M&A 거래에서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국에서도 의견 간극을 감지하고 있어 조율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김광일 금융위 공정시장과장은 "의무 공개매수나 매수청구권을 부여하는 방안이 사실상 M&A 인수 자금을 높여 거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도 있어 소액주주 보호와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예정"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