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기업 인수‧합병(M&A)제도 손질에 나선다. 합병 시 투자자 보호를 위해 공시를 강화하고 합병가액 산정을 위한 외부평가제도를 개선할 방침이다. 당국은 이를 통해 해외 제도와 국내 합병제도의 균형을 맞추겠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는 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간담회를 열고 투자자 보호를 위한 M&A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간담회를 주재한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M&A는 기업의 지배구조와 지분가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이라며 "M&A과정에서 일반주주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합병의 이유와 진행 과정에 대한 정보를 시장에 적시에,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면서 지배주주에 치우친 합병을 진행하는 경우에도 일반주주가 알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김 부위원장은 "일반주주가 소외받는 문제도 있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합병가액 산정방법을 자본시장법에서 세세하게 규율하면서 기업의 진정한 가치를 반영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M&A 시장에 대한 목소리를 반영해 △합병 공시강화 △합병가액 산정 시 외부평가제도 개선 △비계열사간 합병가액 산정방법에 대한 규제 완화 등 크게 세 가지 방향의 개선안을 내놨다.
합병 진행과정 투명하게 공개
기업 합병 시 현재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주요사항보고서, 증권신고서를 통해 공시하고 있다. 다만 기업내 이사회가 합병을 진행하게 된 배경설명은 간략히 적고 있어 주주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금융위는 합병 진행배경을 충분히 공시할 수 있도록 공시항목을 구체화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등 해외사례를 참고해 △추진배경 △합병상대방 선정 이유 △합병 진행시점 결정 이유 △그 밖에 합병을 결정한 의사결정 사유를 반드시 공시하도록 의무화할 방침이다.
특히 합병을 결정하는 1차집단인 이사회 논의내용도 공시를 통해 공개해야 한다. 현재 합병 관련 이사회 논의내용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이사회에서 지배주주에 유리한 결정을 하더라도 일반주주가 문제 제기하기 어렵다.
따라서 금융위는 합병 목적, 합병가액 및 거래조건 적정성, 합병에 반대하는 사유 등을 논의한 이사회 논의 내용을 담은 이사회 의견서 작성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이사회 의견서는 주주들이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공시를 통해 공개할 계획이다.
합병가액 산정위한 외부평가제도 개선
기업 합병은 두 기업 간 가치산정이 가장 중요한 변수다. 우리나라는 대체로 흡수합병, 즉 A회사가 B회사를 흡수하는 형태의 합병을 주로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어느 한쪽의 가치를 부풀리면 다른 한 쪽의 손실은 불가피하다.
존속회사에 유리한 합병 비율을 설정하면 흡수되는 회사 주주들에게 발행하는 신주수량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존속회사 최대주주의 지배력에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합병가액을 정확히 계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는 회계법인 등 외부평가기관이 합병가액의 적정성을 평가하고 있다. 다만 외부평가기관의 평가방식에 대한 규율이 미비해 이해상충(최대주주 등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는 등) 문제나 소극적 의견제시 등으로 합병가액을 정확히 평가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금융위는 모든 외부평가 과정에서 합병 가액 산정‧평가를 동시에 수행하는 것을 금지하고, 적정성 의견을 내실하하는 등 외부평가기관의 구체적인 행위규율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어 외부평가기관에 품질관리규정 마련을 의무화하고 특정 합병가액을 권고하거나 산정방법을 제시하는 등 합병가액 산정과정에 관여한 기관은 외부평가기관으로 선정하는 것을 금지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계열사 간 합병 시에는 특수성을 고려해 외부평가기관 선임 시 지배주주로부터 독립성을 갖춘 감사위원회의 동의를 받도록 의무화할 방침이다.
합병가액 산정 규제는 완화
금융위는 공시와 외부평가제도 개선 등 합병제도 전반을 강화하는 한편 합병가액 산정 규제는 완화한다.
현재 합병가액 산정방식은 자본시장법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규율하고 있다. 상장법인은 최근 1개월‧1주일‧최근일 종가의 산술평균 가격을 기준주가로 해 기산일 및 할인‧할증 등을 더해 계산하는 방식이다.
비상장법인은 본질가치를 원칙으로 자산‧수익가치를 1:1.5로 가중평균해 계산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서로 계열사가 아닌 기업들끼리 합병하는 경우에도 자본시장법의 합병가액 산식을 적용받으면서 기업 간 자율적 교섭에 따른 합병추진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금융위는 비계열사 간 합병, 즉 상장사와 상장사가 합병하든 상장사와 비상장사가 합병하든 코넥스 상장사와 코넥스 상장사가 서로 합병하든 비계열사 간 합병이면 자본시장법상 합병가액 산식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기업들이 서로 협의해 합병가액을 산정할 수 있도록 바뀌는 것이다.
다만 특정 주체에 유리하게 합병가액을 산정할 우려가 있는 만큼 합병가액 공정성 확보를 위해 비계열사간 합병 시에는 제3자 외부평가를 의무화한다.
또 계열사 간 합병은 대주주 위주의 의사결정으로 일반주주 피해 가능성이 있는 만큼 현행 자본시장법 상 합병가액 산식을 그대로 적용한다.
금융위는 2월 중순부터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대한 입법예고를 진행해 규제개혁위원회 심사 및 증권선물위원회, 금융위원회 의결을 거쳐 올해 3분기 내에 개정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김소영 부위원장은 "이번 M&A제도개선을 통해 기업의 자율적인 사업재편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우리 합병제도가 미국‧유럽‧일본과 같은 선진제도로 발전할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