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기기에 관심이 많은 사용자라면 일련의 삼성전자 '갤럭시기어' 판매량 소식들을 접하고 고개를 갸우뚱했을 법 하다. 우선 외신을 중심으로 나온 판매량과 삼성이 정식으로 발표한 수치 사이의 격차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게다가 삼성측 발표 내용은 제품에 쏟아진 부정적 평가를 감안할 때 의외(?)로 선전한 결과라는 점에서 더욱 의아함을 갖게 했다. 그만큼 출시 전 증폭된 관심 만큼이나 갤럭시기어를 둘러싸고 말들이 많다.
갤럭시기어는 삼성전자가 웨어러블(입는) 컴퓨터 시장에 야심차게 진출한 일종의 블루투스 헤드셋 같은 액세서리다. 최대 경쟁사 애플보다 새로운 시장을 한발 앞서 개척한다는 점에서 삼성은 '혁신'이라는 수식어를 많이 붙이고 있다. 관련 업계에선 액세서리치고 다소 비싼 가격(국내 출고가 39만6000원)과 투박한 디자인, 직관적으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점 등 부정적 평가가 많다.
업계의 관심은 세계최대 스마트폰 제조사 삼성전자의 후광을 업은 갤럭시기어가 과연 얼마나 많이 팔렸는가였다. 삼성전자는 아직 판매 초기이고 비교할만한 경쟁 제품이 없다는 이유로 구체적인 수치를 밝히지 않아 왔다. 관련 업계에선 기능과 디자인이 기대 이하라는 반응이 많아 판매량이 적을 것으로 예상해왔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전날(19일) 오전 외신을 중심으로 판매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해외 정보기술(IT) 매체 애플인사이더 등은 지난 9월말 출시된 갤럭시기어의 세계 누적 판매량이 5만대이고 하루 판매량은 평균 800~900대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애플인사이더 등은 '비즈니스코리아'라는 국내에서 발행하는 온라인 영자 신문을 인용해 이 같이 보도했는데 이를 다시 국내 언론들이 받아 확산시켰다.
'누적 판매량 5만대'는 삼성전자가 판매 확대를 위해 들인 노력을 감안하면 실망스러운 수치다. 삼성전자 경영진은 제품을 실제로 접해본 소비자들 사이에서 "예상 외로 좋다"는 호평이 많았다며 강한 자부심을 드러내왔다. 갤럭시기어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이 많아 이를 깨기 위한 체험 마케팅에 공을 들여왔다. 외신에선 삼성전자가 4분기(10~12월)에 전체 마케팅 비용으로 약 5조원을 투입할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갤럭시기어는 고작 5만대 밖에 안팔린 것이라 삼성전자로서는 체면을 구길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후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삼성전자는 이날 갤럭시기어의 세계시장 판매량(공급 기준)이 80만대를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다음날인 20일에는 신종균 삼성전자 IM(정보기술·모바일)담당 사장이 사장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이를 재확인시켜줬다. 이는 기존 5만대보다 무려 16배 많은 것이다. 삼성전자 발표대로라면 갤럭시기어는 현재까지 시장에 나온 시계형 스마트기기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성공한 제품이 된다.
원래 삼성전자측은 갤럭시기어 판매량이 100만대를 달성할 즈음에 이를 정식으로 발표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100만대 고지'는 그리 멀지 않은 시점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고작 5만대에 불과하다'는 보도가 확산되자 갑작스럽게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측은 5만대 판매량은 사실이 아니며 외신이 인용 보도한 수치도 출처가 불분명하다고 보고 있다.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해 예정에도 없던 판매량 집계 발표를 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공식 발표는 오히려 논란으로 이어졌다. 갤럭시기어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많은 상황에서 80만대나 팔릴 수 있냐는 것이다. 앞서 뉴욕타임스(NYT)의 유명 정보기술(IT)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포그는 지난달 갤럭시기어 리뷰 기사를 통해 "아무도 안살 것이고 아무도 사서는 안될 제품"이라고 혹평을 퍼붓기도 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의아하다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80만대 수치는 삼성전자가 공급 기준으로 집계한 것이라 실제 소비자 손에 들어간 제품 수는 이보다 훨씬 적을 것이란 의견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영국의 한 이동통신사는 갤럭시기어를 '갤럭시노트3'에 끼워 팔았으며, 미국 가전 유통매장인 베스트바이에서는 갤럭시기어 반품율이 3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