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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개혁, 첫 단추부터 잘못 뀄다

  • 2013.07.24(수) 15:36

박근혜 정부가 미래의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조세개혁의 밑그림이 공개됐다. 국책연구기관이 발표한 보고서는 내달 초 정부안으로 확정되면 본격적인 개편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과거에도 정권 초기마다 조세개혁 시도가 있었지만, 이해당사자들의 저항과 정치권의 비협조로 흐지부지 끝났다. 그만큼 정부가 조세개혁에 대해 중심을 잡고 확실한 논리로 무장하지 않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조세연구원이 23일 공청회에서 발표한 중장기 조세정책방향은 모순의 결정체였다. 정부가 줄곧 '증세는 없다'고 강조해왔지만,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등 국민들의 생활과 직결된 세금 부담을 높이는 방안이 나왔다.

 

소득세 부담을 늘려야 한다는 근거로 제시한 '국민 개세주의(皆稅主義)'도 불편하게 다가온다. 근로자 중 36%에 달하는 면세자를 과세 영역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인데, 국가 시책에 따라 성실하게 원천징수와 연말정산에 임해온 대다수의 근로자들은 졸지에 '세금을 잘 안내는 국민'이 됐다.

 

소득세 면세자나 재벌 총수나 일상 생활에서 소비할 때 똑같이 내는 부가가치세도 실질적 부담이 높아진다. 금융수수료나 학원비 등 부가세를 면제하는 항목을 과세로 전환하는 방안이 담겼다.

 

정부는 세율을 높이지 않기 때문에 직접적인 증세가 아니라고 항변할 수 있지만, 납세자 입장에서 볼 때 엄연히 증세가 맞다. 만약 현금서비스 받을 때 금융수수료를 1000원 내던 사람이 부가세(10%)를 100원 더 낸다면 세금 부담이 늘어난다. 소득세도 비과세 항목을 과세로 전환하면 근로자의 총 급여는 높게 산정되고, 내야 할 세금은 더 많아진다.

 

법인세와 상속·증여세는 세부담을 낮추는 방안이 제시됐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이들 세금을 적게 걷으면 오히려 경기를 활성화시켜 세수를 늘릴 수 있다는 기대감이 담겨 있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 방안도 침체된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한 카드로 나왔다.

 

이들 세금을 줄일 경우 혜택을 받는 대상은 대기업과 재산가, 다주택자들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끊임없이 논란을 일으켰던 '부자 감세'를 재현할 조짐이다. 근로자와 다수 국민이 '개새주의'에 따라 소득세와 부가세를 더 내야할 판국인데, 부자들이 내는 세금은 오히려 줄어든다.

 

해외로 눈을 돌려봐도 부자들의 세금 부담을 늘리는 분위기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영국 등 유럽 선진국들은 최근 재정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소득세 최고구간의 세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부자 증세' 정책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와 세금 제도가 유사한 일본도 2015년부터 소득세 최고세율을 5%포인트 높인다.

 

새 정부가 사상 초유의 세수부족 사태에도 불구, 직접적 증세를 하지 않겠다는 이유는 서민과 중산층의 조세 저항을 겨냥한 것이었다. 반대로 감세를 하면 부자들의 배만 불린다는 여론도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에는 거꾸로 서민 증세와 부자 감세를 담았고, 국제적인 트렌드와도 맞지 않는다. 조세개혁에는 국민적 합의와 정부의 굳건한 의지가 필수적인데, 조세연구원이 제시한 두루뭉술한 예시로는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새 정부의 조세정책이 첫 단추부터 구멍을 잘못 찾고 헤매는 모습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법안이 만들어져도 국회 논의과정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내달 초 발표될 세제개편안에서는 정부가 중장기 조세정책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논리를 보완하고, 이해당사자의 저항과 압력에도 흔들림없이 추진한다는 의지를 확실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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