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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정책 十年大計]③포퓰리즘이 낳은 '누더기 稅制'

  • 2013.06.10(월) 11:33

임기응변식 세제개편에 중장기 방향성 놓쳐
정권마다 부동산세제 냉·온탕 반복

세법은 변화 무쌍한 경제 상황을 끊임없이 반영해야 한다. 일부 대기업과 자산가들은 법률상의 허점을 교묘하게 파고드는 공격적 조세회피(ATP, Aggressive Tax Planning)를 자행하기도 한다. 세법의 그물망이 낡거나 느슨하면 조세 정의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부가 매년 여름 세제개편안을 발표해 세법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이유다. 정부는 정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세제를 활용한다. 국회의원들도 수시로 세법 개정안을 내놓고 정기국회에서 통과 여부를 결정한다. 정부안과 의원입법안들은 대부분 연말 국회에서 한꺼번에 모아 처리된다.

 

법이 바뀔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키워드가 '누더기' 논란이다. 보편적인 조세 원칙이나 일관된 정책 방향을 제시하기보다는 즉흥적인 아이디어와 임기응변의 결과물이 상당수여서 국민들의 혼란만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에선 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의식한 법안이 쏟아졌고, 정부의 부동산 세제는 방향성을 잃고 표류하기 일쑤였다.

 

◇ 특례+예외=누더기

 

조세 제도는 국고조달 외에도 경제와 사회 정책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하기 때문에 특례나 예외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다만 각계 요구를 받아들여 무작정 봐주고 퍼주다보면 형평성이 무너지고, 세법은 누더기가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각종 세제의 예외조항만 모아 특별 관리하는 조세특례제한법을 두고, 일몰기한을 정해 놓는다.

 

세법 개정 시즌이 되면 국회와 정부에는 다양한 단체와 이해관계자들이 찾아오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세금의 특례와 예외 조항을 만들어달라거나, 기존 세제 혜택을 계속 유지해달라는 요구가 상당수를 차지한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이다.

 

경기 조절용 조세특례 제도였던 '임시투자 세액공제'는 누더기 세법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기업의 설비투자 금액 중 일부를 세금에서 빼주는 이 제도는 30년간 연장을 거듭해왔다. 일몰기한이 도래해도 재계는 당연히 연장되는 것으로 알고 있을 만큼 상시화되는 문제가 있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임시투자 세액공제를 폐지하고, 일자리를 늘려야만 세금을 깎아주는 고용창출투자 세액공제로 개편했다. 법 통과 과정에서 여야의 흥정이 이어지면서 공제율은 계속 바뀌었고, 결국 기존 제도보다 훨씬 복잡하면서도 효과는 예전만 못한 방식으로 탈바꿈했다.

 

지난 5월 새 정부는 대기업에 한해 공제율을 1%p씩 낮추는 세법 개정안을 다시 내놨다. 미래의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을 더 걷어야 하는데, 국민 여론을 의식해 이른바 '부자 증세'로 가닥을 잡았다. 반면 조세특례제한법 조문은 더욱 어지럽게 흐트러졌다.

 

국회에서도 누더기 세제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새누리당 안종범 의원은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누더기 세제를 갖고 있다"며 "매년 200개의 세금 관련 시행령이 일몰되거나 바뀌는데, 이러면 미래를 내다보고 세금제도를 끌고 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 방향 잃은 부동산 세제

 

지난 10년간 가장 많이 바뀐 세금 제도라면 단연 부동산 세제를 꼽을 수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급격하게 변했다. 참여정부는 부동산 과열을 진정시키기 위해 단기보유 부동산 양도소득세에 대해 높은 세금을 부과하고,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하는 등 부동산 관련 세금을 강도 높게 설계했다.

 

이명박 정부는 양도세 중과제도와 종부세를 완화하는 등 높아졌던 부동산 세부담을 원점으로 돌렸다. 참여정부 당시 최고조에 올랐던 양도세 부담은 최근 부동산 침체와 맞물리면서 점점 완화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헌법만큼 바꾸기 힘든 부동산정책을 만들겠다"던 다짐은 단숨에 물거품이 됐다. 종부세는 2004년 법이 통과된 후 9차례 개정됐다. 1년에 한번씩 법이 바뀐 셈이다. 2005년 첫 시행 당시 간단명료했던 법문은 2013년 누더기가 됐다. 과세 기준과 세율, 납부 방식도 도입 초기에 비해 모두 바뀌었다.



2005년 첫 시행될 당시 주택은 개인별로 합산해 국세청 기준시가 9억원을 넘을 경우 종부세를 내도록 했고, 특례 규정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1년 만에 2006년부터 개인별 합산에서 세대별 합산 방식으로 탈바꿈했고, 과세기준금액은 6억원 이하로 더욱 넓어졌다. 종부세 대상자가 스스로 신고·납부를 해야했던 규정도 2007년부터 관할 세무서장이 부과·징수하도록 개정됐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11월 헌재의 위헌 판결로 인해 세대별 합산은 개인별 합산으로 유턴했다. 1주택자와 장기보유자, 고령자에 대한 공제 규정도 신설됐다. 애초부터 법률적 미비점에 대한 검토가 부족한 탓에 국민들의 혼란만 가중시켰다.

 

◇ 十年大計 Point☞ '포퓰리즘 극복'

 

정부가 세입기반 확충을 위해 1990년부터 추진한 미술품 양도차익 과세는 마침내 올해부터 시행됐다. 미술 업계의 극렬한 조세저항으로 과세를 20년 넘게 미룰 수밖에 없었다. 기존에 없던 세금을 새로 부과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법이 본래 정책의 목표를 외면하고 단편적으로 대중의 인기에만 영합하는 포퓰리즘에 갇히면 그 피해는 세금을 내는 국민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반면 중장기 비전을 갖고 임하는 세제 개편은 결국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위정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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