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가을 전 세계를 달궜던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 햇수로 3년이 지났지만 우리 기억엔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석달 남짓 이어졌던 작은 혁명은 뚜렷한 결실을 보지 못했다. 여전히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어깨에는 부의 양극화와 소득 불평등이라는 고민이 무겁게 누르고 있다.
잠시 잊혀졌던 월가 시위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 것은 '비틀즈 신드롬'을 연상케 한다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 열풍이다. 아직 국내에서는 번역본이 출간되지 않았지만 피케티의 책은 한국에서도 꽤나 익숙한 화두가 됐다.
'21세기 자본론'은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비견된다. 19세기 자본론이 공산주의 혁명을 촉발했다면 말랑말랑한 소설과 에세이를 제치고 아마존닷컴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21세기 자본론은 또다른 `혁명`을 몰고 올 기세다.
21세기 자본론의 개념은 단순하다. 과거 `자본수익률이 결국 줄어들며 자본주의가 멸망할 것`이라는 자본론을 뒤집는다. 하지만 소득불균형을 야기하는 상황은 마르크스의 주장보다 더 심각하다. 소위 돈이 돈을 버는 자본수익률이 노동이 버는 경제 성장률을 항상 앞서면서 결코 부의 평등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소득자나 자산가에게 높은 세금을 매겨야 한다고 피케티는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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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만 보면 월가 시위가 그랬듯 소득 불균형에 대한 비판과 고민이란 점에서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된 월가 시위가 큰 영향을 미쳤듯이 실증적이고 체계적인 자료가 뒷받침된 피케티의 주장 또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제껏 보지 못했던 방대한 자료의 양이 첫 감동을 줬다면 이를 둘러싼 거대담론이 다시 불붙고 있는 것이 두번째 감동이다. 자본주의를 대변하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반박은 물론 그레고리 맨큐 등 내로라하는 경제학자들도 `독`을 품고 피케티를 향해 달려들면서 반론에 반론이 거듭되고 있다.
이런 논쟁은 소득 불균형에 대한 고민이 짙게 깔린 한국 사회에도 의미가 크다. 한국 경제 역시 성장과 분배 사이에서 머리를 싸매고 있다. 새로운 경제팀의 수장을 맡은 최경환 경제 부총리는 성장 친화를 강조하며 내수와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 무게를 실었다.
금리인하 기대도 다시 살아나고 있다. 내수부양을 위해서는 적절한 분배가 중요하고 소득불균형 해소 역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 배당을 늘리도록 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두 요소가 상충하고 있다. 배당 이슈도 예외가 아니다. 그간 배당에 인색한 한국 기업이었지만 삼성그룹 등 재계 2,3세들이 거대한 부를 상속받기 위해 배당을 늘릴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배당은 `부의 상속`과 `분배` 사이에 놓이게 됐다.
사실 피케티가 한국 경제에 좀더 깊숙하게 침투한 것은 지난 주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이다. 이 총재는 피케티 열풍과 관련해 한은 내부적으로 연구를 제안했고, 한은은 즉각 연구에 돌입했다. 한은은 21세기 자본론을 토대로 한국의 자산수익률과 소득증가율을 비교분석할 계획이다.
그동안 국내에서도 소득불균형 심각성이나 부유세와 기업 유보현금세 도입 등이 거론돼 온 만큼 실증적인 결과가 궁금하다. 어느 쪽으로 결론이 도출되든 정책당국이 한낱 연구보고서로 치부할수 없는 무게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월가 시위가 절반의 실패로 끝난 이유는 이미 막강해진 부의 권력을 넘지 못한 것도 있지만 과도하게 극단주의로 치닫는 양상을 보인 것도 반감을 줬다. 명확한 근거나 체계적인 방향 없이 우후죽순 유행처럼 번지다 사그라든 셈이다. 국내에서는 월가 시위가 아예 확산되지도 못했다.
피케티가 실증한 부의 세습화는 그 진위를 떠나 이에 대한 고민의 질을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키고 무게중심을 잡아줬다. 국내 상황을 본다면 극단적으로 치닫기보다 월가시위처럼 흘러가는 유행이 되지 않는 게 중요해 보인다. 정책적 고민을 넘어 명확한 답에도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