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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밥 때문에 귀양 간 주자(朱子)

  • 2014.08.22(금) 08:31

 

여러분은 흰 쌀밥과 잡곡밥 중 어느 쪽을 더 좋아하시는지?


잡곡밥 중에도 현미는 소화가 잘 안 된다는 것과 먹기에 거칠다는 단점이 있지만 식이섬유가 풍부해 변비를 예방할 수 있고 또 리놀렌산이 많아 동맥경화와 당뇨병 예방에도 좋다는 장점이 있다. 요즘은 맛과 건강을 생각해 현미밥 먹는 사람이 많지만 옛날에는 달랐다. 현미밥은 누구나 싫어하는 밥이었고, 꽁보리밥 못지않은 가난의 상징이었다.

 

그러니 쌀이 귀했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악착같이 현미의 껍질을 벗겨서 정백미(精白米)를 만들어 하얀 쌀밥을 지어 먹었다. 사람들이 현미를 미워하고 흰 쌀밥을 선호한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다.

 

기원전 2세기 무렵, 한나라 때 백찬(白粲)이라는 형벌이 있었다. 고위 관리가 죄를 지으면 재산은 몰수하고 가족도 함께 처벌하는데 죄인 가족 중에서 아내와 딸은 잡아다 궁중이나 관에서 일을 하는 노비로 삼았다. 이들은 주로 제사에 쓸 현미를 빻아서 백미로 만드는 작업을 시켰는데 이 형벌이 백찬이다. 한서(漢書) 혜제기(惠帝記)에 나온다. 형법지(刑法志)에도 비슷한 형벌 내용이 수록돼 있으니 어린 남자 아이에게는 장작을 종묘에 공급하는 일을 맡기고 여자는 쌀을 빻아 백미로 만드는 일을 시켰다.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이 모두 흰 쌀밥을 찾을 때 공자, 맹자의 뒤를 잇는 유교의 성현 주자(朱子)는 언제나 현미밥으로 식사를 했다. 하지만 주자는 결국 현미밥 때문에 사망했다. 주자와 현미 사이에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주자로 널리 알려진 주희(朱熹)는 송나라 때의 대학자다. 이름이 사방에 퍼졌기에 배우기를 청하며 찾아오는 선비가 끊이지 않았다. 호굉(胡綋)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검소했던 주자는 찾아온 사람들에게 언제나 자신이 먹는 것과 같은 현미밥을 대접했다. 호굉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현미 밥상을 받은 호굉이 “이것은 인정이 아니다. 아무리 산중이라고 하더라도 어찌 한 마리 닭과 한 잔 술이 없을 것이냐”라며 불쾌한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는 이튿날 주자에게 작별인사도 하지 않고 떠났다.

 

훗날 감찰어사가 된 호굉이 주자를 괴롭혔다. 아마 현미밥상을 받고는 주자에게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세상을 혹세무민에 빠트리고 잘못된 학문을 가르친다며 열 가지 죄목을 만들어 주자를 모함했다. 주자의 목을 베어 그릇된 학문을 퍼뜨리는 자를 근절시켜야 한다며 구박했다.

 

주자가 말년에 박해를 당하자 평소 따르던 무리들도 혹시 주자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리지 않았으며 주자의 제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의관까지 변장하고 다녔다니 세상의 험악함이 이와 같다고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한탄을 하고 있다. 한 그릇 현미밥이 빌미가 돼서 호굉이라는 자에게 심하게 핍박을 받던 주자는 결국 귀양지에서 사망했다.

 

현미밥 한 그릇에 원한을 품고는 두고두고 복수를 했으니 당시 현미밥이 얼마나 형편없는 식사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현미밥이 800년이 지난 지금 최고의 건강식품으로 탈바꿈했다. 호굉이 되살아나 다시 현미 밥상을 받는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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