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는 재건축과의 전쟁에서 참패했다. 돈이 되는 재건축 아파트에 시중자금이 구름처럼 몰렸고, 이를 지렛대 삼아 재건축 가격은 널뛰듯 치솟았다. 저금리로 풀린 돈은 기업의 투자자금으로 선순환 되지 않고 투기자금으로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을 떠돌았다.
2000년 말 2억5000만원(34평형 기준) 수준이었던 대치동 은마아파트(4424가구)는 1년 만에 4억 원을 넘어섰다. 2002년 5월엔 5억 원을 깨더니 2003년 10.29대책 직전에는 8억 원을 호가했다. 참여정부는 날뛰는 재건축 값을 잡기 위해 2003년과 2005년 무더기 규제를 쏟아낸다.
잇따른 규제에 잠시 주춤하던 집값은 2005년 하반기부터 다시 뜀박질을 시작해 2006년 초 10억 원을 찍고 그해 말에는 13억 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은마는 금융위기 후 8억 원대까지 밀렸다가 최근 다시 10억 원 선을 회복했다. (1979년 완공된 은마아파트는 위치, 단지 규모, 가격대 등 모든 면에서 강남 재건축을 대표한다.)
참여정부는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 투기와의 전쟁을 벌였지만 유동성 장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당시 쏟아진 재건축 대책은 ①시장과열을 막기 위한 규제 ②시세 차익을 줄이기 위한 규제 ③사고파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제 등 전방위적이었다.
시장과열을 막기 위해 ▲안전진단 강화 ▲허용연한 강화 ▲후분양제 등이 동원됐고, 시세 차익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소형평형 의무건축비율 ▲개발이익환수제 ▲초과이익환수제 등이 도입됐다. 여기에 사유재산권 침해 논란을 빚은 조합원 명의변경 금지 방안도 밀어붙인다.
재건축 규제는 재건축의 상품가치를 떨어뜨려 수요를 차단하려는 게 주목적이었다. 과일에 일부러 흠집을 내 제값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전근대적 수법을 사용한 셈이다. 이 같은 규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시장 과열기가 끝난 후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금융위기 직후 재건축 추진이 아예 끊긴 것이다. 재건축의 대체재로 리모델링이 떠오른 것은 재건축의 몰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게 끝날 것 같았던 재건축이 화려하게 컴백했다. 최경환 경제팀이 금융위기 후 7년 동안 골방 노인네 신세였던 재건축 카드를 다시 꺼냈다. 얼음덩어리가 된 부동산 경기를 띄우려면 재건축 같은 인화성 강한 상품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부는 9.1대책을 통해 재건축 가능연한을 40년에서 30년으로 줄였다. 이로써 80년대 말 지어진 강남, 목동, 상계동 등지의 아파트는 당장 재건축 대열에 낄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주차장이 좁고 배관이 낡은 집은 골조에 문제가 없어도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대책에 힘입어 수혜단지를 중심으로 매물이 소진되면서 가격이 오르고 있다. 시공사 선정을 서두르는 단지도 여러 곳 생겼다.
재건축발 경기 부양을 기대하는 집주인들, 투자자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바람대로 화려한 '재건축의 시대'가 다시 도래할까. 지금으로선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다. 이미 오를대로 오른 데다 장기 전망도 불투명해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 재건축이 'A급 태풍'이었다면 지금은 '온대성 저기압' 정도로 파괴력이 줄었다. 전성기가 지난 이만기가 민속씨름판을 되살릴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재건축 규제책
*안전진단 강화(2003년 4월, 2006년 3월) : 재건축 추진의 1차 관문 강화
*허용연한 강화(2003년 12월) : 재건축 추진을 늦추기 위한 방안(81년 이전 단지 20년, 82~91년 단지 22~38년, 92년 이후 단지 40년)
*후분양제(2004년 5월) : 고분양가 책정으로 아파트 가격이 오르는 걸 막기 위해 공정 80%후 일반분양하도록 한 제도
*소형평형 의무건축비율(2003년 9월) : 85㎡ 이하 가구 수를 전체의 60% 이상 짓도록 한 조치
*개발이익환수제(2004년 7월) : 늘어나는 용적률의 25%를 임대아파트로 짓도록 해 개발이익을 환수하는 제도
*초과이익환수제(2006년 3월) : 조합원당 평균 3000만원 이상 개발 이익을 얻으면 정부가 이익의 최고 50%를 부담금으로 환수하는 제도
*조합원 명의변경 금지(2003년 9월) : 투기과열지구에서는 조합설립인가 이후에는 아파트를 사도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