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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의 '사과문 같지 않은 사과문'

  • 2014.12.09(화) 17:46

조현아 부사장 잘못 지적 없어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의 월권행위에 대한 논란이 일파만파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맏딸인 조 부사장은 지난 5일(현지시간) 뉴욕에서 기내 1등석 서비스를 지적하며 활주로로 향하던 비행기를 되돌려 사무장을 내리게 했다. 조 부사장은 잘잘못을 따지며 호통을 쳤고, 그 소리는 뒤편 이코노미석까지 들릴 정도였다고 한다.

 

조 부사장은 대한항공의 기내서비스 최고 책임자다. 하지만 승객들의 불쾌감이나 불안감은 안중에 없었던 모양이다. 비행기 안 250여명의 승객은 영문도 모른채 20여분간 기내에서 발이 묶였다. 기내서비스가 누구의 만족을 위한 것인지 새삼 되묻게 된다.

 

 

대한항공은 일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8일 밤 10시에 부랴부랴 입장을 내놨다.

 

"사무장을 내리게 한 것은 지나쳤지만, 임원인 조 부사장이 서비스를 지적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요지의 사과문이다. 그런데 문장을 따져보면 한줄한줄 요상하다.

 

첫 구절부터 그렇다. "비상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항공기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승무원을 하기(下機)시킨 점은 지나친 행동이었으며, 이로 인해 승객 분들께 불편을 끼쳐드려 사과 드립니다."

 

이 문장에는 주어가 빠져있다. 사건의 발단은 조 부사장이지만 '지나친 행동'을 했고, 이 때문에 '사과'하는 주체는 조 부사장이 아니라 회사다. 사건 일련의 과정에서 조 부사장은 뒤로 빼놓겠다는 의지(?)가 역력하게 보인다.

 

뒤에 붙여 대한항공은 "조 부사장이 사무장의 자질을 문제 삼았고, 기장이 하기 조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기 조치의 주체를 기장으로 못박으면서 절차상 문제가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를 통해 조 부사장에게 쏠린 '월권, 직권남용'의 비난 화살에 기장이라는 방패를 세웠다.

 

이렇게 따져보면 대한항공의 공식 입장에는 조 부사장의 과실은 없다. 대한항공은 오히려 "조현아 부사장은 기내 서비스와 기내식을 책임지고 있는 임원으로서 문제 제기 및 지적은 당연한 일"이라고 두둔한다.

 

사과문에서는 "대한항공 전 임원들은 항공기 탑승 시 기내 서비스와 안전에 대한 점검 의무가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만에 하나, 이번 일을 일으킨 임원이 오너 딸인 조 부사장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오너 일가가 아닌 다른 임원이었다면 승무원과 사무장에게 서비스를 따지면서 고함을 치거나 운항에 차질을 초래한 것에 대한 문책, 그리고 그 임원을 관리하지 못한 회사 측의 반성이 공식 입장에서 빠질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그러다보니 후폭풍만 커졌다. 대한항공 노동조합 게시판이나 인터넷에는 대한항공의 공식입장을 두고 비난과 조롱이 쏟아지고 있다. 내부에서는 '터질 게 터진 것'이라는 자조섞인 발언도 나온다.

 

대한항공은 공식 입장 말미에 "철저한 교육을 통해 서비스 질을 높이겠습니다. 대한항공은 이번 일을 계기로 승무원 교육을 더욱 강화해 대 고객 서비스 및 안전제고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썼다.

 

하지만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게시판에는 "이 일을 일으킨 본인만 각성하면 된다. 승무원 교육은 필요없다. 해당임원의 인격 수양 및 윤리의식만 고치면 된다"는 비아냥이 올랐다. 네티즌들은 유행가 가사에 빗대 "사과문인듯 사과문 아닌 사과문 같은 사과문"이라고 비꼬았다.

 

 

또 한 가지, 승무원 하기의 최종 결정자가 기장이었다고 해도 조 부사장은 책임을 피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기장으로 하여금 '비정상적인 하기 결정'을 하도록 한 것이 조 부사장이기 때문이다.

 

항공운항법 23조 1항의 7호에는 '기장 등 업무를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방해하는 행위 등을 금지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조 부사장은 승객으로 탑승했지만 기내서비스 최고책임자로서 가진 '위력'으로 기장을 움직였고, 운항에 차질을 초래했다. 항공당국이 이를 어떻게 판단할지 지켜볼 일이다.

 

서승환 국토부 장관은 이날 국회 국민안전특위 전체회의에서 "사실관계를 내일까지 다 파악할 것"이라며 "법이나 규정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으면 그에 따라 엄중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해외 출장에서 돌아온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고객 불편에 대해 거듭 사과하며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사태수습에 나섰다.

 

대한항공은 '우리의 날개'라는 수식어로 수십 년을 포장해 왔다. 하지만 조 부사장과 이를 감싸려는 대한항공의 모습은 '우리'와는 너무 동떨어져 보인다. 대한항공이 땅에 떨어진 신뢰와 브랜드 이미지를 다시 회복시키는 건 앞으로 하기에 달려있다.

 

■ 대한항공 공식입장 전문

 

1. 승객분들께 불편을 끼쳐드려 사과 드립니다.

○비상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항공기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승무원을 하기시킨 점은 지나친 행동이었으며, 이로 인해 승객 분들께 불편을 끼쳐드려 사과 드립니다.
○당시 항공기는 탑승교로부터 10미터도 이동하지 않은 상태로, 항공기 안전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2. 대한항공 임원들은 항공기 탑승 시 기내 서비스와 안전에 대한 점검의 의무가 있습니다.

○사무장을 하기시킨 이유는 최고 서비스와 안전을 추구해야 할 사무장이 1)담당 부사장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규정과 절차를 무시했다는 점  2)  매뉴얼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변명과 거짓으로 적당히 둘러댔다는 점을 들어 조 부사장이 사무장의 자질을 문제 삼았고, 기장이 하기 조치한 것입니다.

○대한항공 전 임원들은 항공기 탑승 시 기내 서비스와 안전에 대한 점검 의무가 있습니다. 조현아 부사장은 기내 서비스와 기내식을 책임지고 있는 임원으로서 문제 제기 및 지적은 당연한 일입니다.

 

3. 철저한 교육을 통해 서비스 질을 높이겠습니다.

○대한항공은 이번 일을 계기로 승무원 교육을 더욱 강화해 대 고객 서비스 및 안전제고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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