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의 '두 얼굴'

"여러분은 우리 대한항공의 귀한 자산이고 얼굴이며 또한 자랑입니다. 이번과 같이 회사는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마음으로 여러분을 보호하고 안전한 근무환경 조성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작년 4월 이른바 '라면 상무' 사건 직후 조현아 대한항공 기내서비스 및 호텔사업 부문 총괄 부사장이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의 일부다. 조 부사장은 "현장에 있었던 승무원이 겪었을 당혹감과 수치심이 얼마나 컸을지 안타깝다"고도 했다.

 

조 부사장은 "승무원의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규 조항도 이번 기회를 통해 마련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항공기의 안전이나 운항을 저해하는 행위가 발생해도 규정과 절차에 따라 일관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우리의 노력은 정당하게 인정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

◇ '하기(下機)' 지시 월권 논란

 

그런 조 부사장이 '땅콩 부사장'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조양호 한진그룹의 맏딸인 조 부사장은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JFK공항에서 인천으로 가는 KE086 항공기(A380기종)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향하던 중 갑작스레 사무장(수석 스튜어드)을 내리게 한 일로 비난을 사고 있다.

 

승무원이 1등석에 견과류를 서비스하면서 매뉴얼대로 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조 부사장은 현재 대한항공의 기내서비스 총괄 최고 책임자다. 하지만 운항을 시작한 기내에서의 책임자는 기장이다. 국토교통부 한 관계자는 "회사에서 부사장이라도 기내에서는 승객"이라며 월권 행위를 지적했다.

 

국토부는 현재 조 부사장의 승무원 하기(下機) 지시와 관련해 "항공보안, 안전감독관 합동으로 사실 조사에 착수했다"며 "조사 결과를 토대로 법령 위반이 있을 경우 항공사 등에 관련 조치를 할 계획"이라고 밝혀 둔 상태다.

 

현행 항공법에는 '항공기의 비행 안전에 대해 책임을 지는 기장이 승무원을 지휘·감독한다'고 규정돼 있다. 대한항공 측은 "조 부사장의 요구에 기장이 동의해 해당 승무원이 비행기에서 내린 것"이라며 절차상 문제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 '소란행위' 기내 규정 위반 소지는

 

지난 2006년 당시 대한항공 기내식사업본부 부본부장(상무)이었던 조 부사장의 발언도 재조명 받고 있다. 그는 "요즘 인터넷 문화가 발달해 클레임(불만)이 제기되는 것을 막고자 승무원들이 할 말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승무원들이 좀더 당당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승객들에게 기내 규정을 정확히 알려줘 위반 행위를 하는 승객들에게는 정당하게 요구할 것은 하고 서비스하길 바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륙 준비중이던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이나 사무장을 나무라고 규정을 따졌던 조 부사장의 이번 행동도 승객으로서 규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당시 1등석 구역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갈 정도로 언성이 높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항공안전 및 보안에 관한 법률에는 '승객은 안전한 운항을 위해 폭언, 고성방가 등 소란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또 '폭행·협박 또는 위계로 기장 등의 정당한 직무집행을 방해해 항공기와 승객의 안전을 해친 사람은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규정도 있다.

 

대한항공을 비롯해 국내 항공업계는 작년 '라면 상무' 사건 이후 승무원에게 위협이나 폭력을 가하는 승객을 엄중 처벌한다는 지침을 세웠다. 국토교통부도 '항공기 안에서의 폭행, 협박, 성희롱 및 흡연행위 등은 '항공보안법'에 따라 최대 5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알리도록 하고 있다.

 

 

■ 조현아 부사장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1남 2녀 중 장녀. 1974년생으로 미국 코넬대 호텔경영학과를 나와 1999년 대한항공에 입사했다. 이후 7년만인 2006년 기내식사업본부 부본부장(상무보)을 맡으며 임원직에 올랐고 작년 3월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칼호텔네크워크 대표를 겸임하면서 줄곧 대한항공의 항공서비스와 호텔사업 관련 분야를 맡고 있다.

 

■'라면 상무' 사건
2013년 4월 인천에서 미국 로스엔젤레스로 향하던 대한항공 비행기 안에서 포스코 계열사 소속 임원(상무) W씨가 기내식 라면에 불만을 표하며 여승무원에게 행패를 부린 일. W씨는 "라면이 설익었다" "너무 짜다"는 등 반말을 섞어 수 차례 다시 끓여오기를 요구했고, 급기야 승무원들이 기내식을 준비하는 갤리로 들어가 들고 있던 잡지로 승무원의 얼굴을 때리기도 했다. 이 사건을 보고받은 기장은 LA공항 도착 전 이 사실을 미국 당국에 신고했으며 W씨는 출동한 미국연방수사국(FBI)에 연행됐다.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갑을(甲乙) 논란'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