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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파두부의 도전과 기회

  • 2015.03.06(금) 08:31

▲ 삽화: 김용민 기자/kym5380@

한국인도 좋아하는 마파두부의 본 고장은 중국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쓰촨성 청뚜(成都)의 한 곰보 아줌마가 만들어 팔았던 음식에서 비롯됐다. 이런 마파두부가 어떻게 중국을 넘어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로 퍼지게 됐을까?
 
새옹지마(塞翁之馬), 세상 일이 변화무쌍해 좋고 나쁨을 단정할 수가 없는데 마파두부도 그런 음식이다. 지금은 그저 맛있게 먹을 뿐이지만 널리 퍼지게 된 과정은 시련과 극복의 연속이었다.

마파두부 스토리를 반복하자면 마파두부는 원래 요리이름이 아니라 곰보 아줌마가 만들어 팔았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마파라는 말 자체가 마(麻)는 중국어로 마마, 즉 곰보라는 뜻이고 파(婆)는 부인, 할머니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곰보 아줌마가 만들어 파는 두부라는 의미다.

마파두부는 만들어진 역사부터 기구하다. 청나라 말, 곰보 아줌마의 남편이 기름을 운반하다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생계가 막연해진 부인이 시누이와 함께 남편 동료를 상대로 두부에 고추, 후추, 양고기와 고추기름을 넣어 요리해 판 것이 시초다. 남편 동료들이 맛 좋다고 입소문을 퍼트리자 청뚜를 넘어 쓰촨성 전체에 소문이 났다. 과부가 된 곰보 아줌마가 자립의 기반을 마련했으니 첫 번째 시련의 극복이다.

쓰촨성 명물요리였던 마파두부가 중국 전체로 퍼진 것은 1930년대 후반, 중일 전쟁이 계기가 됐다. 일본의 중국침략으로 베이징, 난징 등 대도시가 차례로 함락되자 중국 국민당 정부는 1938년 수도를 난징에서 충칭으로 옮겼다. 그러자 고위 관료와 부자를 비롯해 피난민들이 충칭으로 몰려들었는데 와 보니 그곳에 마파두부라는 맛있는 음식이 있었다. 전쟁을 피해 사람들이 옮겨 다니게 되자 값싸고 맛있는 마파두부도  쓰촨성을 벗어나 중국 전체로 퍼지게 됐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이 마파두부가 퍼지는데 한 몫을 했다.

중국 전역에 소문난 마파두부가 중국을 넘어 세계로 퍼져나간 것도 또 다른 시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중국은 국민당과 공산당이 치열한 국공내전을 벌이다 1949년 대륙이 공산화됐다. 그러자 고급관리와 자본가, 지주들이 타이완, 홍콩을 비롯해 해외로 빠져나갔는데 이들을 따라간 요리사들이 현지에 중국 음식점을 열면서 마파두부가 세계적으로 퍼졌다.

하지만 마파두부의 진짜 시련은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에 시작됐다. 중국 공산당은 무상몰수, 무상분배 원칙에 따라 모든 것을 국유화했다. 분배라고 하지만 이용권만 인정한 것이다.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고 국가가 모든 것을 소유하는 계획경제가 시작됐다.

청뚜의 마파두부 본점도 당연히 국유화됐다. 하지만 워낙 유명했기에 없애지 않고 유지는 했지만, 공산화된 중국에서 국영기업은 손익에 별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으니 그저 이름만 이어갔을 뿐이다. 그나마도 1966년 문화혁명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이름마저 사라졌다.

홍위병이 구시대의 잔재라며 옛날 것을 모조리 파괴할 때 마파두부 역시 이름을 문승(文勝)두부로 바꿨다. 문화혁명 승리를 기원하는 두부라는 뜻이다. 정치의 광풍이 음식 이름에까지 불었다. 마파두부가 다시 되살아난 것은 개혁개방 이후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도입되면서부터다. 두부요리 하나도 위기를 기회로 만들며 도전을 반복하면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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