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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와 가격의 불균형

  • 2015.08.06(목) 14:51

가치와 가격은 불가분의 관계이지만, 가치와 가격이 동떨어져 형성되는 불균형 현상은 수시로 발생한다. 가치(value)와 가격(price)의 괴리가 커질수록 시장참여들의 위기와 기회도 확대된다. 가치와 가격이 균형을 이탈했다가 제자리로 환원되는 과정에서, 먼 시각을 가진 투자자에게는 초과이익의 기회가 된다. 반대로 부화뇌동하는 투자자에게는 초과손실의 위기가 닥친다. 

가격과 가치의 괴리 현상은 부동산시장 같은 실물시장에서도 종종 나타나지만 특히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에서 자주 벌어진다.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많은 투자자들을 멍들게 한 코스닥 시장의 가격과 가치의 크나큰 괴리 현상을 뒤돌아보고 반면교사로 삼자.

당시 경기부양을 위한 유동성완화와 함께 정부의 벤처산업육성 의지가 반복되어 표명되면서 코스닥시장 붐이 이어졌다. 주가는 내재가치와 동떨어져 그저 풍문에 따라 춤추기 시작하였다. 예컨대, 1999년 상장한 S기술은 PER가 무려 2000배까지 치솟았다. 주가(P)를 예상 순이익(E)으로 나눈 주가수익배수(P/E)가 2000배라는 사실은 당해 기업의 순이익을 2000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야만 비로소 주가와 같아진다는 신화 같은 이야기다. 연금술사들이나 마술사들이 아니면 연출하기 어려운 허상을 쫓아 사람들이 몰려든 결과였다.

생각건대,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버블 사례들도 당시 코스닥시장 거품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 1636년 11월 네덜란드에서는 튤립 뿌리의 가격이 3개월 사이에 25배나 상승하였다가, 1주일 사이에 최고 가격의 10% 이하로 하락하는 광풍이 일었다. 1719년 프랑스에서는 프랑스동인도 회사(Mississippi)의 주가가, 내재가치가 사실상 없었음에도 불국하고, 순식간에 1000 리브르에서 1만 리브르까지 수직 상승하였다. 설립자 존 로(John Law)가 루이 14세의 각별한 신임을 받은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금본위제도에서 태환성에 의문을 가진 일부 투자자들의 환금 요구가 시작되자, 1720년 초 주가는 최고가의 1/20인 500리브로까지 하락하였다.

가격과 가치의 괴리현상은 시장이 있는 곳이면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반복하여 나타나기 마련이다. 기업이나 산업에 대한 정보가 독점·왜곡·남용되는 불투명한 환경에서는 가치와 가격의 불균형현상이 확대되기 쉽다. 소위 작전세력들이 실적정보(hard information) 또는 예측정보(soft information)를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투자판단을 그르치려 한다. 투자자들이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헛소문을 따라 다니다 보면, 그저 번쩍거리기만 하는 황철석(바보금 ; fool's gold)을 진짜 황금으로 속아 사기 쉽다.

당시 코스닥 시장의 거품이 지나가자 여러 가지 풍문이 떠돌았다. 심지어 정부(?) 차원에서 코스닥시장 거품 팽창을 유도하였다는 의혹 또한 배제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거품이 팽창하는 과정에서는 물론 거품이 최고조에 이르러 파열되기 직전에도  “코스닥 시장이 저평가되었다”는 고위관료의 발언이 수차례 보도되었다. 웃어야할까, 울어야할까? 이성을 상실한 망언은 투자자들을 더욱 혼돈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 때, 유행하던 기업구조조정이라는 이름 아래 황당하게 퇴직 당한 사람들 상당수가, 퇴직위로금을 받아, 코스닥과, 바이코리아 주식투자에 나섰다. 심신이 지치고 불안했던 황퇴자(荒退者)들은 사막의 신기루처럼 피어나는 코스닥 시장 버블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치, 1849년, 과장된 골드러시 보도를 믿고, 노다지를 꿈꾸며 머나먼 서부로 떼 지어 포장마차를 몰았다가 절망에 빠진 금 채굴꾼들 즉 샌프란시스코 49ers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거품은 아련하게 피어나다가 쓰라리게 꺼지기 마련이다.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의 결과는 혹독하다. 천정을 모르고 끝없이 오르던 코스닥 상장주식들 대부분이 자유 낙하하다가, 휴지조각으로 변하였다. 멋모르고 뛰어든 투자자들에게 깊고 붉은 상처를 입혔다. 그 후유증으로 상당수 중산층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가치와 가격의 괴리와 수렴 현상을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 본 투자자들은 상당한 초과수익을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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