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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개정안 논란]2-③ KT&G, 아이칸의 제물될 뻔

  • 2013.08.06(화) 11:36

현재 담뱃값은 20개비 한 갑에 2500원. 만약 2006년 '월가의 상어'로 불리는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이 KT&G를 삼켰다면 지금 담배 한갑은 적어도 두세 배 비싼 5000원 이상, 1만원 가까이 할 지도 모른다.

 

국내 담배, 인삼 시장의 절대강자인 KT&G는 올해 매출 3조 9000억원대, 영업이익은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알짜 중의 알짜 기업, 아이칸이 군침을 흘린만한 매력적인 먹잇감이었다.

 

경영권을 놓고 KT&G와 아이칸측이 벌인 전쟁에서 상법과 증권거래법 등 2006년 당시 현행법은 매우 큰 변수로 작용했다. 상법 해석을 둘러싼 판결에서 KT&G가 아이칸에 져 경영권을 빼앗겼다면 애연가들은 매우 난감했을 것이다. 이처럼 상법은 우리 서민들의 호주머니 사정에도 민감한 영향을 미친다.

 

◇ 아이칸의 첫 한국 진출…'대박' 

 

'월가의 상어' '기업 포식자' 'M&A업계의 람보' 등 칼 아이칸(사진)의 별명은 그가 누군지를 잘 보여준다. 최근에 그가 나섰던 초대형 빅딜은 2011년 한때 세계 최고의 휴대전화 회사였던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구글에 판 것. 이외에도 미국 최대의 자동차 회사 GE를 비롯해 다국적 대형식품회사 나비스코, 야후 등 그의 '제물'은 수없이 많다.

 

그런 그가 2006년 한국의 초유량기업 KT&G에 관심을 갖고 2조원의 실탄을 준비했다. 1936년 뉴욕에서 태어난 아이칸이 일흔이 되던 해였다. 그는 스스로에게 70세 생일파티, '고희연'을 한국에서 열고 그 선물로 KT&G를 생각했을 지 모른다.

 

아이칸은 2006년 2월 합작사인 스틸파트너스와 함께 KT&G 지분 6.6% 보유했다고 공시했다. 동시에 KT&G 경영권을 시장 매수 방식으로 확보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실제 경영권을 인수하겠다는 생각 보다는 주가를 올릴 심산이었다.

 

아이칸측은 KT&G의 자회사인 인삼공사 매각과 부동산 처분 등을 요구했고, 주주총회에서 표대결을 통해 사외이사 1명을 확보해 이사회에 진출했다. 경영진과 적대적 관계에 있는 외국인 주주가 이사회 일원인 사외이사로 선출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에 맞서 KT&G는 자사주 소각을 포함해 무려 2조8000억원 규모를 주주들에게 돌려주겠다고 발표하는 등 경영권 방어에 안간힘을 썼다. 아이칸의 경영권 공격과 KT&G의 대응으로 주가는 4만원대에서 6만원대로 뛰어올랐다.

 

그러자 곧바로 아이칸은 주주 가치 제고, 경영 참여는 커녕 주식을 팔아치웠다. 불과 10개월 만에 1500억 원을 챙기고 떠나는 '먹튀의 전형'을 보여줬다.
 

◇ "한국 상법을 모른다" vs. "집중투표제로 감사위원 뽑아야"


KT&G와 아이칸, 둘 사이에는 상법이 이슈였다.

 

"회사(KT&G)는 우리의 요구를 경솔하게 거부했다. 우리에겐 이미 2조원의 자기자본이 준비돼 있다"(칼 아이칸)

"어떠한 제안도 받아들일 수 없다. 한국 상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KT&G)

 

상법 등을 둘러싼 공방의 핵심은 감사위원회의 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를 뽑는 방식이었다.


KT&G측에서는 일반 사외이사는 '집중투표방식'으로, 감사위원회의 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는 '단순다수결 방식'으로 선출하는 의안을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했다.

 

칼 아이칸측은 자기측 사외이사를 더 이사회에 진출시키기 위해, 일반적인 사외이사 이외에도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까지 모두 집중투표방식으로 선출하자고 주장했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이 상법 개정안의 내용, 바로 그것이다.

 

아이칸측은 주주총회의 결의를 사전에 금지시키는 가처분신청을 대전지방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결과는? 법원은 일반사외이사 선출방식과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출방식에 대하여 KT&G에 선택의 자유가 있다면서 KT&G의 손을 들었다. 당시 상법 조항을 그대로 준용한 결과였다. 결국 주주총회에서 아이칸은 자신이 지지하는 일반 사외이사 1명을 집중투표방식으로 이사회에 진출시키는데 그쳤다. 이후 아이칸의 먹튀 행보는 위에 적은 것과 같다. 

 

아이칸-KT&G 분쟁에서 보듯 현재 도입 여부를 자율에 맡기고 있는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면 외국 투기자본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사람에게 표를 몰아주고 단기간에 이익을 챙긴 뒤 한국을 떠날 수 있다. 기업들은 특히 아이칸의 경우를 예로 들며 감사위원 이사 선임 시 의결권 제한 규제와 집중투표제가 동시에 일어난다면 경영권 위협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는 말, 상법 개정 문제에 대입해 보자. 500만 국내 소액 투자자들이 재주를 부리고, 제2의 소버린, 아이칸이 왕서방이 돼 막대한 돈을 챙기는 상황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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