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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1년…경제]④ 재계를 '들었다 놨다'

  • 2013.12.24(화) 17:15

인수위, 취임 초 재계 초긴장
해외 간담회, 청와대 오찬 등으로 해빙

박근혜 대통령과 재계와의 지난 1년은 유명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인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를 연상시킨다. 당선 직후 인수위 2개월 동안 박 당선인은 "경제민주화, 대기업 개혁"을 외치며 대선 때의 기조를 유지했다. 재계는 초긴장 모드였다.

 

그러나 수 차례 해외 순방에 수행한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면서 분위기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대기업 회장들을 청와대로 불러 화기애애한 식사 자리를 마련했고, 며칠 전 전경련을 찾아서는 재계를 한껏 추켜 올리며 창조경제에 앞장서 달라는 당부도 했다. '들었다 놨다'를 반복한 게 아니라 재계를 '들었다 내려 놓은' 분위기다.

 

▲ 대선 1주일 후인 지난해 12월 26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여의도 전경련 빌딩을 방문, 그룹 오너와 최고경영자들이 모임을 가졌다. 당시 박 대통령 당선인은 "미래 성장동력과 일자리를 만드는 투자는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면서도 "대기업도 좀 변화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위사진) / 그로부터 약 1년후, 박 대통령이 지난 17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전경련 신축회관 준공식'에 참석, 테이프커팅을 하고 있다.(아래사진)



◇ 재계 긴장시킨 박 당선인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인이던 2007년 12월 28일, 대선 9일만에 재계 대표 모임인 전경련 소속 대기업 회장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이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면서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공언했다. 이로부터 6일 뒤 이 당선인은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중소기업인들과 처음으로 만났다.

5년 뒤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대선에서 승리한 박근혜 당선인은 달랐다. 대선 일주일 뒤 2012년 12월 26일 하루 일정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먼저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소상공인단체연합회 임원단을 만났고 이어 중소기업중앙회 회장단과 티타임을 가졌다. 그 다음 일정이 전경련 회관으로 이동해 대기업 회장단을 만나는 것이었다. 순서 뿐 아니라 발언도 심상치 않았다. 중소기업중앙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박 당선인은 "대기업 수출에 의존하는 외끌이 경제를 벗어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같이 가고, 수출과 내수가 함께 가는 쌍끌이로 가겠다"고 강조했다.

반면 전경련에서는 대기업의 비정상적 관행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변화를 촉구했다. 박 당선인은 "대기업이 성장하기까지 많은 국민의 뒷받침과 희생이 있었고 국가 지원도 많았다"며 "따라서 대기업들의 경영목표가 단지 회사의 이윤 극대화에 머물러선 안되고 우리 공동체 전체와의 상생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그는 "경영을 위해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부터 시작할 게 아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영역이나 골목상권까지 파고드는 일도 자제해 달라"는 등 거침없는 발언이 이어졌다.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새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로 '경제부흥'을 제시하면서 "경제부흥을 이루기 위해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계는 대선의 최대 이슈였던 경제민주화의 '쓰나미'가 눈앞에 닥쳐오고 있다며 초긴장했다.

◇ 방미 간담회 이후 해빙 분위기

재계의 응답은 투자 및 고용확대였다. 지난 4월 국내 30대 그룹은 예년에 비해 한 달 이상 늦게 올해 신규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서슬 퍼런 청와대의 눈치에 30대 그룹들이 계획을 재조정하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어쨌든 30대그룹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간담회를 가진 뒤 올해 148조8000억원을 투자하고 2만8000명을 신규 채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전년 보다 각각 7.7%, 1.5% 늘어난 수치다.

청와대의 재계 '군기잡기'는 지난 5월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서부터 서서히 느슨해지기 시작됐다. 박 대통령은 방미 중 공식일정으로 허창수 전경련 회장 등 경제 5단체장과 삼성 이건희, 현대차 정몽구 회장 등 52명의 수행 경제인과 간담회를 가졌다. 취임 후 처음으로 대기업 회장들을 만난 자리였다.

 

박 대통령은 "해외서 보니 더 반갑다"며 말문을 연뒤 "최근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해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은 매우 바람직하다. 투자확대도 차질 없이 해달라"고 치하했다. 대기업 총수들은 일제히 창조경제, 투자와 고용확대 등을 언급하며 화답했다. 한달 뒤 중국 방문단에는 재계 인사 71명이 포함돼 대통령의 역대 해외 순방 중 최대 규모를 기록하기도 했다.

7월 들어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의 사실상 종료를 선언하며 재계와의 분위기를 더욱 훈훈하게 만들었다. "경제민주화 입법이 거의 끝에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이제는 투자하고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박 대통령이 "투자하는 분들은 업고 다녀야 한다"고 말한 며칠 뒤  현오석 부총리가 한 기업인을 실제로 업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 "재계가 창조경제 주역" 부각

청와대는 이후 8월 28일 대기업 총수 초청 청와대 오찬에서 본격적으로 '재계 안심시키기'에 나선다. 박 대통령은 이날 대기업 총수들에게 "경제민주화도 결국 경제활성화를 위한 것"이라며 "정부는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옥죄기나 과도한 규제로 변질되지 않고 본래 취지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상법개정안과 경제민주화를 걱정하지 말고 투자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힘써달라는 당부였다. 이건희 삼성 회장 등 총수들도 "당초 약속했던 투자와 고용계획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며 반갑게 답했다.

 

▲ 박 대통령이 8월28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기업 회장단 오찬간담회에 참석,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 오찬에는 이건희 삼성 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구본무 LG 회장, 조양호 한진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허창수 전경련 회장,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등이 참석했다. (사진=청와대)

 

'안심시키기'의 하이라이트는 지난 17일 전경련 사옥 신축 기념식 자리였다. 당선인 시절이던 지난해 12월 전경련 방문 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간담회 시간은 당초 계획한 50분에서 1시간 20분으로 늘었고, 박 대통령은 "전경련이 한강의 기적의 중추였다"는 재계에 대한 최대의 찬사를 선사했다.

 

경제민주화의 '경'자도 안나왔고, 오직 화두는 창조경제, 일자리 창출이었다. "창조경제를 위해서는 우리 경제가 기존 생산주도형에서 혁신주도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에 이어 주요 대기업 총수들이 각 그룹에서 추진하고 있는 창조경제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삼성은 향후 5만명의 소프트웨어 인력을 양성키로 했으며 롯데는 내년 상반기 중에 2000개, 두산은 400개의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일부 기업들은 내년 투자 계획을 박 대통령 앞에서 직접 밝히기도 했다. 삼성은 내년에도 50조원 이상 투자하겠다고 했고 SK그룹 역시 융합 분야 연구개발에 1조2000억원의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분위기를 더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1년 전 냉탕에서 온탕으로 들어온 재계는 내년에도 박 대통령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색채를 유지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쓸 전망이다.

대선의 핵심 화두였던 경제민주화가 박근혜 정부 출범후 경제활성화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재계는 고민을 덜게 됐지만 개별 그룹이나 오너 입장에서 볼 때 지난 1년간 풍파가 적지 않았다. 횡령·배임, 탈세 등의 혐의로 SK, 한화, CJ, 효성 등의 대기업 오너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거나 법정에 섰고 STX, 웅진, 동양의 경우 그룹이 해체되거나 분해되는 비운을 맞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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