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경기에서 전반전에 5골 넣었다고 이길 거라고 확신해서는 안 된다. 후반전에 10골을 먹을 수도 있는데 전반전만 보고 샴페인을 터트릴 것인가."
오건호 내가 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국민연금을 축구경기에 빗댔다. 전반전 승리에 들뜨지 말자는 얘기다.
지금은 보험료 낼 사람이 많아 수익금만으로 연금 지급이 가능하지만, 앞으로 보험료 낼 사람은 적고 받을 사람은 많아지는 상황에서 미래세대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비유한 말이다.
오건호 위원장은 "후반에 10골 먹을 게 확실한 상태라면 그것에 대비해 지금부터 10골을 넣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향후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돌아올 기금고갈을 막을 수 있는 정책을 하루빨리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한 해법은 미래 노후소득보장제도를 국민연금에만 의존하지 말고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을 강화해 다층적 노후소득보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 위원장은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 조정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국민연금만으로 노후소득보장을 준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을 끌어들여 다층적 노후소득보장체계를 설계해야 제대로 된 노후를 준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이 지난 4일 서울역 카페에서 비즈니스워치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지난 4일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을 만나 국민연금 개혁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4차 재정계산 결과가 나왔다. 당장 내일 일도 알 수 없는데 70년 뒤 미래 전망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많다
▲ 정확히 2057년에 기금이 소진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더 빨라질 수도 늦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제도를 고치지 않으면 미래 세대 부담이 가중될 거라는 점은 확실하다. 적어도 연금의 기본 구조를 진단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보험료 낼 사람은 적고 받을 사람은 많아지는 데 기금이 부족해지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재정계산에 대해 신뢰를 하지 못하는 건 이를 재정학이 아닌 미래학으로 이해하고 봐서 그렇다. 재정계산은 해방직후에 살던 사람들이 오늘날 스마트폰을 쓸 것이라는 걸 예측하는 미래학이 아니라는 뜻이다.
- 기금고갈이라는 프레임이 국민연금에 대한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다른 복지제도와 국민연금은 다르다. 예를 들어 아동수당은 그 혜택을 받는 세대들이 그만큼 세금을 내는 구조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지금 돈을 내고 나중에 받는 구조다. 한 가입자가 보험료를 40년간 납부하고 30년간 받은 뒤 최종결산을 한다. 물론 지금이야 보험료를 내기만 해도 흑자(내는 것보다 더 받는 국민연금 구조)이니 불만이 없지만 나중에 가입자보다 수급자가 많아지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당장 기금이 많다고 국민연금이 안정적이라고 보면 안 된다.
- 국민연금이 공무원·군인연금처럼 적자상태는 아니지 않은가. 적어도 몇 십년간의 재정은 확보된 상태인데
▲ 기금이 넉넉한 상태인 전반전만 보기 때문에 그런 왜곡된 의견이 나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전반전인 지금 5골을 넣어서 경기를 이길 거 같지만 후반전에는 10골을 먹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를 이해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10골을 넣어서 경기를 만회할 생각을 해야 한다. 지금 3골 넣었다고 샴페인 터트릴 때가 아니다.
- 재정계산 결과 소득대체율을 현행 수준(45%)으로 유지하고 보험료율을 11%로 즉각 올리거나(가안), 소득대체율을 40%로 낮추되 보험료율을 13.5%까지 단계적으로 올리고 수급개시연령을 67세로 늦추는 방안(나안)이 제시됐다. 어떻게 평가하나
▲ 이번에 설정한 재정목표(적립배율 1배)에 맞추려면 '나안'이 맞고 보험료율 인상이 부담스러운 국민들에겐 '가안'이 호응도가 높을 수 있다. 문제는 '가안'은 2%포인트 즉각 인상한 이후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지금은 조금 올리고 나중에 연금액을 많이 받는 방안이어서 더 솔깃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장의 국민 호응에만 맞춘 포퓰리즘 성격이 강하다.
- 장기적인 방향에서 국민연금은 어떤 안을 선택해야 한다고 보는가
▲ 개인적으로는 '나안'이 재정목표에 충실하다고 본다. 다만 현실성이 약하다. 일단 보험료율을 13.5%까지 인상하고 수급개시연령을 늦추는 것 모두 국민들이 싫어하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미래세대 부담을 고려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보험료율을 올려야 한다.
- 보험료를 더 내는데 받을 돈(소득대체율)은 40%로 낮아지고 연금수령 나이도 67세로 늘어나는 것을 국민들이 받아들일까
▲ 수급개시연령을 늦추지 않으면 결국 소득대체율을 낮춰야 재정안정을 꾀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보험료는 덜 내고 나중에 연금은 많이 받으려는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은 현 세대의 도덕적 해이다. 당장은 가계가 힘들고 노후준비도 어려우니 더 이득이 되는 쪽을 선택하고 싶겠지만 결국 재정 부담이 현재의 미성년자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에게 돌아간다는 걸 알아야 한다.
- 소득대체율을 더 낮춰서라도 제도개혁을 해야 한다는 뜻인가
▲ 국민연금 재정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다면 소득대체율을 30%까지 낮추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이럴 경우 국민연금 보장성 문제가 나올 수 있다. 지금도 소득대체율이 낮다고 하는데 더 낮추면 받는 금액이 낮아지니 이걸 연금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그래서 필요한 게 다층적 노후소득보장체계다.
- 다층적 노후소득보장체계란 뭘 말하나
▲ 한 마디로 국민연금만으로 노후소득보장이 안 되니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을 통해 전체 연금보장액을 높이자는 것이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퇴직연금 삼중(三重)체계로 노후소득을 보장할 수 있도록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 기초연금은 노인빈곤을 줄이기 위한 사회정책제도이지만, 추후 노인인구가 늘어나면 정부의 재정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는데
▲ 노인인구가 늘어나기 때문에 재정부담은 당연하다. 갈수록 복지나 노후부담에 대한 정부부담이 증가하는 구조는 인류사적 흐름이다. 현재는 연금지출액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3%에 불과하지만 향후 전체 연금지출액은 16%까지 갈 수도 있다. 다만 나중에는 노인연령의 기준이 67세로 높아질 수 있고, 노인 일자리가 확대돼 노후소득을 확보할 수도 있다.
- 퇴직연금이 연금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은데
▲ 퇴직연금은 이제 10년이 조금 넘었다. 연금 역사가 짧으니 연금으로서의 제역할을 하기 힘들다. 연금으로 활용할 만큼의 금액을 쌓기에는 역사가 너무 짧지 않은가. 제도 도입 20~30년이 되면 어느 정도 금액이 쌓이고 그때쯤 되면 연금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또 세제 인센티브 등 다양한 정책을 활용해 절반에 불과한 퇴직연금 가입자를 늘리는 방안도 필요하다.
-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구조상 조기은퇴가 많은 게 현실이다
▲ 조기은퇴를 막고 큰 돈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소득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을 확대해야 한다. 이는 연금제도만 개혁해서는 안 되고 정부의 정책이 함께 가야 한다.
- 위원장이 그리는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어떤 모습인가
▲ 퇴직연금은 현재 일시금으로 많이 받는다. 가입자를 더 확대하고 가입기간도 늘려 실질적인 연금 형태로 바꿔야한다. 또 증세를 통해 기초연금 재원을 확보하고 국민연금은 미래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으로 설계해서 국민의 노후소득보장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소득 하위계층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통해 노후를 준비하고, 중상위계층은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을 통해 노후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러한 다층적 노후소득보장체계 없이 국민연금에만 의존하는 노후소득보장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노후소득보장체계의 삼총사를 구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