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작년말 국민연금 종합운영 계획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국민연금은 사회적 담론이 됐습니다. 2007년 이후 10년여 만에 치열한 논쟁이 재연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 개혁은 국민들의 안정적 노후소득보장과 직결돼 있는 만큼 충실한 대화와 합의를 거쳐 해법을 찾아야할 전사회적인 과제입니다. 비즈니스워치는 국민연금 개혁 방안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미래지향적 논의 진행을 위해 전문가 기고를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후속 논의를 위한 제언이나 반론도 환영합니다. [편집자]
국민연금제도가 국내에 도입된 이후 제도에 대한 역할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수많은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논의의 많은 부문이 국민연금 기금의 본질적 역할에 대한 사항보다는 지속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었다는 아쉬움이 있다.
공적연금의 존재이유나 성립조건의 진지한 고민 보다는 연금기금이 고갈되면 지급이 중지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개혁의 주요 동인이 된 까닭이라 생각된다.
국민연금제도 도입된 1988년 이후 한 세대도 지나지 않은 1998년, 2007년 두 차례 연금 개혁이 이루어졌다. 물론 개혁의 주된 목적은 연금기금의 조기고갈 방지였다.
연금개혁의 주된 이유였던 국민연금기금 소진 우려로 연금개혁은 재정의 안정성, 다시 말해 기금고갈의 방지를 위한 보험료율 인상이나 급여의 삭감이 우선 목표가 되었다. 즉 연금 개혁은 연금 재정의 안정화를 위한 것이라는 인식으로 가입자들에게 각인되었다.
이러다보니 공적연금 개혁은 기금의 소진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의 변경을 제기하는 것이 공적연금 개혁의 목적이라 여기는 분위기도 만연하다. 과장하자면 기금을 존치시키기 위해 제도를 변경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입자들에게 심어준 것이다.
그렇지만 한발 뒤에서 생각해보자. 도대체 기금이 왜 존재하는가. 국민연금 제도는 왜 존재하는가. 단순히 기금을 존속시켜 소진 시점을 뒤로 당기는 것이 제도의 목적인가.
국민연금의 존재 이유는 국민연금법 제1조에 명시되어 있다. "국민의 노령, 장애 또는 사망에 대하여 연금급여를 실시함으로써 국민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함"이다.
국민연금기금의 존재 이유 역시 동일하다. 이 기금은 사회보험성 기금으로서 장래의 지출에 대비하여 자금을 적립하고 원본을 증식할 목적으로 설치된 것이다. 동법 제101조에 기금은 "국민연금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원활하게 확보하고, 이법에 따른 급여에 충당하기 위한 책임 준비금"에 불과하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물론 재정을 등한시 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서 수지균형은 필요하다. 단지 수지 균형을 위해 제도의 본래 목적인 국민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을 훼손하여야 한다면 과연 이 제도는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지를 근원에서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과거 두 차례 개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재 노인들의 빈곤은 여전하고, 미래 노인들의 소득 역시 충분하지 못하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재정의 수지 균형은 국가의 재정을 배제하고 국민연금 제도 하나만을 놓고 생각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노후생활도 중요하지만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 뿐 아니라 양육부담도 있는 현재의 납부자의 생활 역시 제도를 운영함에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문이다. 높은 수준의 연금지급을 위해 현재 혹은 미래의 가입자 희생을 강요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것이 기금을 소진시켜서는 안 된다던가, 재정 안정을 현재에 강조하여 급여율이나 보험료율을 조정하여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국가적으로 논의하여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에 발표된 정부의 연금개혁안의 의의가 있다. 연금의 본래 목적인 노후 소득 보장을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면서 재정에 대한 문제도 함께 고민하기로 한 것이다.
즉 기존의 연금 개혁의 문제로 제기된 재정 안정화를 전제로 하되, 제도의 존재 목적인 노후 소득 보장에 대한 사항을 추가한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이 둘은 모두 등한시 할 수 없는 중요한 사항이다.
지금까지는 기금의 존속 문제에 집중되어 연금 개혁을 보았다면, 현역(미래) 납부자의 생활수준과 노후생활수준 간에는 적절한 균형을 찾기 위한 연금 개혁을 논의하자는 것이다.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등의 사회보험은 단순한 금융상품이 아니다. 민간 기업에서와 같은 손익과 균형을 사업의 목적으로 할 수 없는 국가의 기본 책무다. 연금재정을 논함에 있어서 그 재정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보다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