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지난 1988년에 도입된 이래 완전노령연금이 지급되기도 전인 1998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개혁됐고 이 개혁은 두 번 모두 재정안정화를 목표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재정안정을 목표로 한 두 번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재정안정이 달성되었는지는 회의적이다. 왜 그런가. 혹자는 재정안정개혁이 불완전한 것이 원인이라 생각하겠지만 그보다는 재정안정을 목표로 한 것 자체가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 정확한 진단이다.
우리나라에서 재정안정개혁은 주로 보험료 인상(또는 급여삭감)과 기금운용수익률 제고를 통한 기금적립규모의 증대와 그로 인한 기금소진시점의 연장을 내용으로 해왔다. 그리고 이런 기금적립규모의 증대를 추구하는 연금개혁의 이면에는 기금이 소진되면 연금을 못 받는다는 '연금미수령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고, 이는 다시 내가 낸 돈을 돌려받지 못 한다는 울분을 바탕으로 국민연금 불신으로 이어져왔다. 하지만 언론 등에 의해 부풀려진 이런 불신과 불안감은 사실 많은 오류에 기초한 것이다.
#국민연금 급여산식을 둘러싼 오해
첫째 국민연금은 내가 낸 돈을 나중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는 것이 아니다. 국민연금급여산식 C(A+B)(1+0.05N)에서 C는 소득대체율을 결정하는 상수(2019년 현재 1.335), A는 전체가입자의 평균소득, B는 가입자 개인의 생애평균소득, N은 20년 초과가입개월수로 가입자가 얼마를 냈는가는 산식에 있지도 않다.
그래서 내가 보험료로 얼마를 냈으니 얼마를 받겠지라고 생각하고 연금급여를 계산하면 실제 받을 급여와 대부분 다르다. 현재 국민연금급여를 받는 노인들도 그들이 젊은 시절 낸 보험료 원금에 이자를 붙여 받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젊은 사람들이 매달 납부한 보험료 수입에서 급여를 받고 있다(금액은 위 산식에 따라 계산된다).
흔히 국민연금의 재정방식을 적립방식으로 분류하지만 이것이 내 돈을 쌓았다가 찾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제도 시행 초기에 연금수급자보다 가입자가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기금이 쌓인다는 의미에서 적립방식이라는 것이고 실제 급여지급방식은 부과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제도 시행 초기에 쌓이는 기금도 책임준비금의 성격이 더 강하다. 따라서 내가 낸 보험료 원금에 이자 붙여 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적으로 오해이다.
마찬가지로 연금기금을 잘 운용해서 수익을 많이 낸다고 해서 내가 낸 보험료 원금에 이자가 많이 붙는 것이 아니다. 물론 수익률이 높아지면 기금의 규모는 커질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받을 연금액이 많아지지는 않는다. 국민연금급여산식에는 기금운용수익이 늘어난다 해서 그것으로 급여를 높여주는 요소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사회복지제도의 한 종류인 국민연금은 기금수익이 높아진다고 연금급여를 높이지는 않지만 물가가 오르면 그에 따라 연금급여를 높이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기금운용수익률의 증대와 연금급여수준은 상관이 없다.
# 국가가 존재하는 한 연금지급은 계속
둘째 기금운용수익이 증가해도 나의 연금급여가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하겠지만 그래도 기금이 소진되면 국가가 연금을 지급치 못하는 것은 사실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기금을 소진시키는 것은 미래세대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기금규모를 증가시켜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도 오해가 깃들어 있다.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은 퇴직제도를 근거로 한 것이다. 고대 로마에도 연금제도가 있었지만 오늘날처럼 공적연금이 보편화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 퇴직제도가 보편화했기 때문이다. 퇴직제도는 고령노동자를 퇴출시키고 생산성을 높이려는 자본의 경쟁이 격화하면서 생겨난 제도이며 퇴직으로 생계수단을 잃은 고령노동자들에게 공적연금을 보장함으로써 2차 대전 이후 보편화할 수 있었다.
퇴직제도의 일차적인 수혜자는 자본이며 따라서 공적연금을 위한 일차적 재정부담자도 자본이다. 물론 퇴직제도가 자본에게 주는 혜택이 자본 간에 동일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것 자체가 구조조정을 초래할 것이고 그를 통해 퇴직이 주는 혜택의 사회화가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관건은 퇴직제도를 위한 자금을 자본으로부터 어떻게 집합적으로 징수할 것인가이다. 이 자금의 집합적 징수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국가가 자본을 대표한 총자본으로서 수행해야만 하는 일이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의 집합적 징수를 하지 못한다는 말은 퇴직제도를 운영하지 못한다는 말이 되고 이는 노동시장의 자본주의적 운영을 불가능하게 할 것이므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연금지급이 안 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존립이 불가능해지는 정도의 문제이다.
국가가 존재하는 한 연금지급은 계속된다는 말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미래세대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기금을 적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잘못된 전제에 기초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주장은 자본으로부터의 퇴직자금의 집합적 징수의 문제를 세대의 문제로 부당하게 치환한 오류에 기초한 주장이다.
# 노동·경제구조 맞춘 징수방안 마련해야
셋째 현실적으로도 기금규모를 지나치게 증대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도 우리는 국민경제규모에 비한 연금기금의 상대적 규모가 세계 2위에 이를 정도로 크다. 이를 더 증대시키면 추후 연금급여 지급시 급격한 유동화로 기금의 자산가치가 급락할 수 있다.
연금기금은 현금으로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채권이나 주식, 부동산 등의 형태로 보유하고 있는데 대략 2030년대에 가면 연금지급을 위해 이들을 모두 현금화해야 하고 이 때 연금기금이 보유한 채권, 주식, 부동산 등이 제 가치를 실현하지 못하고 헐값에 매각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기금을 쌓아두는 것과 그것이 자산가치를 유지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넷째 기금규모의 증대는 현실적으로도 어렵다. 기금규모 증대를 위해 보험료를 인상하자는 주장은 2030년대에 있을 연금기금의 급격한 현금화를 뒤로 미루려는 것인데 이는 얼마간은 가능할지 몰라도 오래가지 못하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 정도로 보험료를 올리려면 제4차 재정추계에서 일부 논자들이 말하듯 당장 16% 이상으로 올려야 하는데 현재와 같은 양극화 상황에서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일각에서는 부과방식으로의 전환을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취지는 이해하나 부과방식으로의 전환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필요는 없다. 부과방식이라고 해서 기금을 한 푼도 없이 운영한다는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재정목표를 설정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2040년대나 2050년대에 엄청난 규모의 기금적립을 해야만 가능한 것이라고 전제할 이유도 없다. 퇴직제도가 인위적으로 도입된 제도로서 사회적 합의에 근거한 것이고 따라서 노인을 65세라는 일률적인 연령을 기준으로 정하게 된 것도 인위적인(사회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노인연령에 관한 사회적 합의는 상황이 변화하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기금적립을 고집하는 것보다 노동시장과 경제구조의 변화에 맞추어 노후보장을 위한 자금의 집합적 징수 방안을 새롭게 마련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노후자금의 집합적 징수를 세대논리로 대체하는 것은 미래사회에 대처함에 있어서 바람직하지도 효과적이지도 않다.(남찬섭 동아대학교 교수·사회복지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