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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낳으면)오빠가 잃는 건 뭔데?"

  • 2019.11.28(목) 14:19

<김보라의 UP데이터>-데이터로 보는 82년생 김지영②
가정일과 상관없이 여성도 계속 일해야 한다는 응답 61.4%
여성취업 장애요인 1위는 '육아'…육아휴직 사용비율 21.4%
경력단절여성 169만9000명 중 38%가 육아로 직장 그만 둬

출산 예정일이 가까워 오면서 김지영 씨는 출산휴가만 낼지, 육아휴직을 할지, 퇴사할지 고민이 많아졌다. (중략) 결국 부부 중 한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결론났고, 그 한 사람은 당연히 김지영 씨였다. 정대현 씨의 직장이 더 안정적이고 수입이 많기도 하고, 그런 모든 이유를 떠나 남편이 일하고 아내가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소설 <82년생 김지영> 속 김지영은 지극히 평범한 인물입니다. 김지영은 세 살 많은 남편 정대현, 딸 정지원과 서울 변두리의 한 대단지 아파트 24평형에 전세로 거주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IT계열 중견기업에 다니고, 김지영은 작은 홍보대행사에 다니다 출산과 동시에 퇴사를 했죠.

소설 속 김지영은 다시 복직을 꿈꾸지만 홍보회사 직원으로 일하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기는 어려웠습니다. 결국 김지영은 길거리를 지나가다 눈에 띈 아이스크림 가게 아르바이트생 모집공고에 관심을 보입니다. 퇴근 후 돌아온 남편 정대현에게 아르바이트 하는 걸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남편은 김지영에게 되묻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야?"

영화 '82년생 김지영' 속 주인공 김지영(배우 정유미 분)의 모습 [자료=네이버 영화]

육아를 하는 엄마들이 모인 인터넷 한 대형카페에는 김지영과 같은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육아휴직 후 복직? 퇴사?", "임신 때문에 회사 그만두신 분들 후회 안 하시나요?", "육아로 퇴사하고 경력단절된 뒤 재취업하신 분 있나요?" 등 아이를 키우기 위해 육아휴직을 하거나 직장을 그만 둔 엄마들의 고민 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여성도 사회활동을 해야 한다"

통계청이 25일 공개한 '2019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조사 응답자 약 3만7000명 중 86.4%가 여성이 직업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부분이 여성들의 사회생활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죠.

또 여성취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의 61.4%가 가정일과는 관계없이 계속 커리어를 쌓는 것이 좋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처럼 여성의 사회활동에 대한 인식은 점점 나아지고 있는 추세인데요. 10년 전인 2009년 '여성이 직업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응답한 비율은 83.8%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성의 사회생활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2019년보다 다소 낮은 수치죠.

이후 2년마다 시행하는 통계청 사회조사결과에 따라 여성이 직업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응답한 비율은 조금씩 증가했습니다. 다만 올해는 직전 조사결과인 2017년보다 0.8%포인트 감소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가정일에 상관없이 직업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응답한 비율입니다. 2009년에는 53.5%였던 응답률이 증가해 10년 뒤인 2019년에는 61.4%로 7.9%포인트 증가했습니다.

반대로 사회생활보다는 가정일에 전념하는 것이 좋다고 응답한 비율은 지속 감소했습니다. 2009년에는 9.3%였던 응답률이 꾸준히 감소해 2019년에는 5.8%까지 낮아졌습니다. 여성은 가정 일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겁니다.

#"일하고 싶지만...육아는 누가해?"

여성의 사회활동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현실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는데요.

2019년 사회조사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50.6%)은 여성취업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육아부담을 꼽았습니다. 사회적 편견(17.7%)이나 불평등한 근로여건(12.7%) 등도 취업의 장애요인으로 꼽혔지만 육아부담만큼의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았습니다.

현실은 여전히 육아를 여성의 몫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지배적입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에서 딸 정지원의 육아를 위해 남편 정대현이 아닌 김지영이 직장을 그만두는 것을 '일반적인 선택'으로 보는 것 역시 마찬가지 맥락이죠.

여성의 육아부담을 덜고 커리어를 지속적으로 쌓을 수 있도록 마련한 것이 바로 육아휴직제도입니다. 만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가진 노동자는 자녀 양육을 위해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육아휴직제도를 이용하는 사람은 10명 중 2명에 불과합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복지전문지 '보건복지포럼' 2월호에 실린 '일·가정 양립 실태와 정책 함의' 보고서에 따르면 첫째 자녀 임신 직전 취업 중이던 여성이 첫째 자녀 출산전후 육아휴직을 사용한 비율은 21.4%입니다. 반면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응답한 비율은 78.6%였습니다.

둘째 자녀 출산전후 육아휴직 사용 경험은 첫째 자녀보다 다소 높았는데요. 육아휴직을 사용했다고 응답한 비율이 35.7%, 사용하지 않았다고 응답한 비율이 64.3%였습니다. 첫째자녀보다는 사용한 비율이 높았지만 여전히 육아휴직 사용경험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경력단절 원인 1위는 '육아'

결국 육아라는 당면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들은 두 가지 선택지에 놓이게 됩니다. 어떻게 해서든 주위 도움을 받아 커리어를 유지하거나, 아니면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입니다. 후자를 선택한 여성들은 엄마, 전업주부라는 꼬리표와 함께 '경력단절여성'으로 불리게 됩니다.

경력단절여성은 15~54세의 기혼여성 중 현재 비취업상태이며 결혼, 임신 및 출산, 육아, 자녀교육, 가족돌봄 등의 사유로 직장을 그만 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26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경력단절여성 현황)'에 따르면 15~54세 사이의 기혼여성 884만4000명 중 비취업상태인 여성은 336만6000명으로 이중 결혼, 임신 및 출산, 육아 등을 이유로 경력단절이 된 여성은 169만9000명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69만9000명의 경력단절여성 중 38.2%인 64만9000명이 육아를 경력단절의 사유로 꼽았습니다. 다음으로 ▲결혼 52만2000명(30.7%) ▲임신·출산 38만4000명(22.6%) ▲가족돌봄 7만 5000명(4.4%) ▲자녀교육 6만9000명(4.1%) 순입니다.

눈에 띄는 점은 경력단절의 사유 중 하나인 육아의 응답비율이 증가했다는 점인데요. 지난해와 비교해 결혼과 임신·출산을 이유로 경력단절이 됐다고 응답한 비율은 각각 63만4000명, 44만5000명이었지만 올해는 52만2000명, 38만4000명으로 줄었습니다. 반면 육아는 지난해 61만9000명에서 64만9000명으로 3만명 늘었습니다.

"(아이를 낳으면)그래서 오빠가 잃는 건 뭔데?"

소설 82년생 김지영 속 김지영은 아이를 낳자고 보채는 남편 정대현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하지만 정대현은 이에 선뜻 대답하지 못합니다.

여전히 통계는 경력단절남성이 아닌 경력단절여성만을 조사하고 있고 여성의 커리어 유지를 돕겠다며 나온 육아휴직 정책은 5명중 1명이 사용하는 실정입니다. '안 그러려고 했는데 억울하고 손해 보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는 소설 속 김지영의 속마음을 특정 개인의 감정으로 치부하기엔 오늘날의 각종 통계가 너무 많은 현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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