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비어었던 산하 SH공사 사장에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를 지난달 31일 내정했다. 전임 이종수 사장이 임기 8개월을 남기고 중도 사퇴한 지 2개월만이다.
변 내정자는 이 전 사장 중도사퇴 직후부터 박원순 시장 측으로부터 SH공사 사장 제안을 받았지만 고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뜻을 돌려 사장 공모에 응한 것은 최근이다.
서울시 측은 내정 소식과 함께 "내부 간부진에 이어 투자출연기관장에 대한 진용을 모두 췄다"며 "민선6기 핵심과제 추진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 주거복지 전문가..朴시장과 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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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생인 변 내정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 도시계획학 석사와 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도시·주택분야 전문가다. 현재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1996년 공사 연구개발실 선임연구원을 역임하는 등 SH공사에서의 경험도 있다. 공사가 주거복지사업과 도시재생사업을 신성장 동력사업으로 육성하는데 적임자라는 게 서울시 설명이다. 박 시장이 2011년 취임한 이후 줄곧 자문단으로 활동하며 시 주택정책을 자문해 왔다.
박 시장은 지난달 재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도 "SH공사 사장으로 임대주택과 도시재생을 통해 서울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분을 모실 생각"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던 셈이다. 변 내정자는 임용 결격사유 여부 등 신원조사·조회를 거쳐 이달 중 사장으로 공식 임명될 예정이다.
◇ '김수현-변창흠' 주택정책 외곽라인 완성
변 내정자는 주택정책과 관련해서도 정부가 좀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저소득층의 주거복지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일관된 주장을 펴온 인물. 정부가 전월세난을 해결하기 위해 민간에 인센티브를 줘 임대주택을 늘리는 방식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보여왔다.
그는 최근 한 일간지 기고를 통해 임대료 인상률 상한제 강화, 전월세 전환율 하향 등을 중심으로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전면 개정해 세입자 주거비용을 떨어뜨려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2014년 10월26일 한국일보 [아침을 열며] 세입자 주거안정, 기초부터 새롭게 하자> 주거복지를 실현하려면 이익 구조 안에서 돌아가는 시장 중심 정책보다 정부의 적극 개입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런 철학은 박 시장이 속한 야당 주택정책의 논리적 기반이다. 세종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를 지내다 지난 8월 서울시의 '싱크 탱크'인 서울연구원 수장으로 취임한 김수현 원장 역시 같은 선상에 있다. 변 내정자가 취임하면 서울시 도시·주택정책의 '생산(서울연구소)'과 '실행(SH공사)'이 일관된 라인을 갖추게 된다.
▲ 2011년1월18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용산참사 2주기범국민추모위원회 주최로 열린 '용산2주기강제퇴거금지법 토론회 및 보고대회'에서 변창흠 세종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
◇ 최대 현안 '부채감축' 숙제는?
다만 변 내정자가 맡을 SH공사 사장직은 부담이 적지 않은 자리다. 당장 부채 감축이라는 눈앞의 현안이 있다. 박 시장은 13조5789억원에 달했던 공사 부채(2011년 10월말, 비유동부채 기준)를 올 연말까지 7조원으로 줄인다는 공약을 내놨었다. 부채는 올 4월 10조3345억원까지 줄었지만 여전히 약 3조원을 더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현대건설 출신 이종수 전 사장도 부채 때문에 '자의반 타의반' 물러난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 전 사장은 취임 9개월만인 작년 2월에도 박 시장과 부채감축 계획에 이견을 보이면서 사의를 표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교수 출신 이론가인 변 내정자가 SH공사의 사장으로 적임자인가를 두고는 말이 적지 않다. 그가 주거복지 및 도시재생 등 큰 그림에 대해서는 박 시장과 철학을 함께 하고 있지만 부채를 줄여야하는 경영자로서 역할을 잘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수 개월간 수장 공백으로 흐트러진 SH공사 내부 조직을 추스리는 것 역시 신임 사장의 숙제로 꼽힌다. 한 서울시 관계자는 "SH공사 사장은 주택정책에 대한 식견과 함께 행정가, 경영자로서의 능력이 종합적으로 요구되는 자리"라며 "내정 과정에서 종합적 평가를 거쳤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