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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Story]건설업계, 유리알 회계로는 장사 못한다

  • 2015.12.02(수) 14:52

금융당국 "회계 투명화 위해 엄격 기준 필요"
건설업계 "업계 특수성 고려 현실화 해야"

"건설사들의 어닝 쇼크, 분식회계 의혹, 4대강 비자금 혐의... 이런 게 다 어디서 나오는지 아십니까? 회계감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데서 비롯된 겁니다. 오죽하면 재벌들이 돈 안 되는 건설사를 들고 있는 이유가 비자금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얘기가 나오겠습니까. 이 참에 건설업계도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해야죠."
(수주산업 회계선진화 TF 한 회계사)

 

"회계 선진화, 저희도 필요성은 충분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홀딱 벗고 알몸으로 전쟁 같은 해외수주 현장에 뛰어들라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과거 논란이 일었던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국내서도 아니고 해외 업체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영업비밀을 모두 공개하라면 어떻게 하잔 겁니까?"
(대형 건설사 A사 회계담당 부장)

 

25개 대형 건설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정부의 '수주산업 회계투명성 제고방안'에 집단 반발하며 국회와 금융당국에 탄원서를 제출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주택업체인 부영주택 호반건설 서희건설과 제일모직(합병),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중인 경남기업을 제외하면 30대 건설사가 모두 참여한 겁니다.

 

건설업계는 지난 8월 광복 70주년 특별 대사면으로 담합 처분에 따른 관급공사 입찰참가제한 등 제재에서 겨우 벗어나며 몸을 한껏 낮추고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2000억원을 출연해 사회공헌재단을 세우고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 등 정부 시책 사업에도 팔을 걷어붙이던 터였습니다.

 

그러던 건설사들이 정부의 이번 회계제도 개편안에 대해서는 '연판장(連判狀)'까지 돌리면서 반발하고 있는 겁니다. 비우호적인 여론을 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건설업계가 이렇게까지 들고 일어난 이유는 뭘까요?

 

 

◇ 1조5000억원과 2500억원의 차이?

 

금융당국이 '수주산업 회계투명성 제고방안(수주회계개선안)'을 내놓은 배경에는 2013년 말 불거진 대우건설의 분식회계 혐의 논란이 있습니다. 이 회사가 1조5000억원의 손실을 과소계상하는 방식으로 분식회계를 하려했다고 내부자가 제보하면서 불거진 사건입니다. 

 

금감원은 회계 적정성을 검증하겠다며 감리에 착수했고, 대우건설과 당시 외부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은 줄곧 건설회계 특수성을 설명하며 항변했습니다. 결국 1년 9개월여에 걸친 조사와 감리 끝에 금감원은 혐의 금액의 30%인 5000억원 가량에 대해 분식이 있었다고 봤고, 증권선물위원회 감리위원회는 다시 이 중 2500억원에 대해서만 분식이 있었다고 확정했습니다.

 

당시 대우건설은 제보 문건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내부 자료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문건에 있는 추정 손실은 2013년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가정한 것일 뿐이라는 거죠.

 

이를 지켜 봐왔던 다른 건설사들이 '남의 일'이 아니라고 여긴 것도 이 부분입니다. 똑같은 잣대를 우리 회사에 가져다 대면 우리 역시 분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다는 판단이 선 겁니다.

 

당국이 판단한 분식 규모도 애초 감리 시작 때 혐의를 뒀던 금액의 15% 수준까지 줄었는데요. 이를 두고도 건설업계에서는 "금융당국조차 손실 반영 기준이 왔다갔다 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 연판장 들고 나선 건설업계

 

하지만 대우건설의 회계부정 의혹뿐 아니라 GS건설, 삼성엔지니어링, 대림산업 등이 급격한 실적악화로 홍역을 치르면서 시장에서는 건설사 회계장부를 제대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는데요.

 

이에 더해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업계에서도 분식 논란이 벌어지자 아예 수주산업 전반에 대한 회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금융당국 차원의 논의가 본격화 됐습니다. 그 결과물이 '수주산업 회계투명성 제고방안'입니다.

 

개편안의 요지는 회계 기준을 보수적으로 해석하거나 업계 관행에 따라 임의적으로 판단해 분식 의혹을 키우지 않도록 하고, 충분한 정보 제공을 통해 투자자를 보호하고 신뢰성을 키우자는 것입니다.

 

▲ 회계상 미청구공사 발생 개요. 장기간 건설계약에 대해 발주처의 지급여력 부족으로 청구하지 못한 경우나 원가투입량이 실제 공사진척률보다 높아 사실상 청구할 수 없는 경우에 발생한 외상매출채권이 '미청구공사'다. 자산으로 인식하는 미청구공사에서 대금 회수를 못하게 되면 장부상 이익이 대규모 손실로 전환된다.(자료: 금융감독위)

 

맞는 말입니다. 건설업계도 큰 틀에서 취지는 공감하고 있습니다. 한 프로젝트를 마칠 때까지 2~4년 이상 걸리는 데다 변수가 많아 손실을 예측하기도 어렵긴 하지만, 또 매번 그 손실을 장부에 남길 경우 신용이나 영업에 마이너스가 될 수 있지만, 그 필요성은 인정한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설업계가 탄원서까지 내며 반발하고 있는 것은 회계 기준이 너무 엄격하고, 도입이 지나치게 이르다는 이유에섭니다. 업계의 요구는 4가지입니다.

 

①사업 중요정보를 주요 사업장별이 아닌 부문별로 공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것 ②주요 사업장 예정원가 재평가 보고를 분기가 아닌 연간 단위로 할 수 있게 하는 것 ③핵심감사제(KAM, Key Audit Matters) 도입 시기를 전산업 적용시점으로 연기하는 것 ④새 기준 적용 시점에 1년 유예를 줄 것 등입니다.

 

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총 매출액의 5% 이상인 각 사업장의 진행률, 미청구공사, 충당금, 공사손익 변동분 등을 공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외비'에 속하는 사업장별 정보를 공개하면 발주처나 경쟁사 앞에 알몸으로 서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얘깁니다.

 

사업을 따내야 할 을(乙) 입장에서 갑(甲)인 발주처에 사업원가가 공개돼 사업이익을 충분히 확보할 수 없게 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건설사들은 주장합니다.

 

또 일본, 중국, 인도 등 경쟁국 건설사들이 우리나라 건설사들의 공사원가를 세밀하게 추정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치열한 수주경쟁에서 밀릴 우려도 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사업장별로 중요 정보를 공시하도록 하기 보다는 플랜트·토목·건축 등 사업부문별로 정보를 공개토록 하는 게 적절하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금융위는 "사업장의 진행율은 지금도 간단히 산출되는 정보인 데다 미청구공사나 충당금 정보는 '총예정원가' 등 핵심적 정보를 추정하기 어렵다"며 "개편안 시행은 전혀 무리가 없다"고 일축하고 있습니다.

 

▲ 수주산업 회계 투명성 제고 개편안 중 사업장별 중요정보 공개 예시(자료: 금융감독위)

 

◇ "시간 좀 달라" vs "이제와서 딴소리"

 

아직 성숙하지 않은 '핵심감사제(KAM)를 건설업계가 시범 케이스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도 부담이라고 합니다. 핵심감사제란 회계감사 수행 과정에서 회사나 감사인에게 가장 유의한 주의를 요구하는 사안에 대해 중점 감사해 이를 상세히 기술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건설업계는 이 제도가 회계 인프라가 잘 갖춰진 유럽연합(EU)에서도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할 예정일 정도로 앞서나간 제도여서 우리나라에서 먼저 도입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제도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EU 등의 해외 운영사례를 충분히 모니터링하고 도입해도 늦지 않다는 겁니다.

 

특히 건설·조선 등 수주산업에만 먼저 도입하게 되면 타 업종과 형평성 문제로 자금조달 등의 측면에서 부작용이 발생할 것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주산업에만 우선 도입할 게 아니라 선진국 사례를 검토한 뒤 전체산업 도입시 함께 적용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입니다.

 

▲ 건설업계의 사업장별 중요 정보 공개시 원가추정 가능성 예시(자료: 25개 건설사 탄원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자마자 결과물을 내놓으란 것도 부담이 크다고 합니다. 새 회계 기준에 맞춰 회사 내부절차·시스템 등을 정비하려면 최소 1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적어도 2017년부터 시행하는 경과규정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입장은 강경합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개편안을 만들면서 업계 최고재무책임자(CFO) 등과 5차례나 간담회를 가졌고, 최근 2차례 회의를 통해 이미 완성된 방안까지 설명했다"며 "이제와서 개편안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몽니를 부리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건설업계는 하소연합니다. 강경완 대한건설협회 시장개척실장은 "금융 당국이 회계질서를 바로잡으려 한다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건설업계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회계투명성 제고와 건설업계의 생존를 대전제로 두고 접점을 모색해 달라"고 촉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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