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경기, 집값, 총선.
최근 금융정책을 발목 잡는 대표적인 이슈 세 가지다.
금융당국에서 추진하는 주요 정책이 이들 이슈에 번번이 발목 잡히면서 결국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인다. 가계부채 대책에 대한 후속 가이드라인도 그렇고, 건설·조선사 등에 적용되는 수주산업 회계 투명성 제고 방안도 마찬가지다.
◇ 가계 빚 1200조, 칼 빼지도 못했는데…
은행연합회는 지난 7월 정부에서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방안의 세부 가이드라인을 마련, 지난달 24일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부처 간 이견으로 여전히 발표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복수의 금융당국 관계자들은 "부처 간 조율 중에 있다"고만 언급할 뿐이다.
정부는 내년 초부터 주택담보대출 심사를 강화하고 분할상환을 유도하는 내용의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시행하기로 하고,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한 은행권이 '여신심사 강화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가이드라인은 주택담보대출의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60%를 넘으면 분할상환하도록 하고, 변동금리 상품에 스트레스 금리를 적용해 스트레스 DTI 80%를 넘지 않는 한도에서 대출을 해주는 내용 등이 담겼다. 총부채 원리금 상환비율(DSR)이란 개념을 도입, 이 비율이 80%를 넘으면 사후관리를 강화하는 방안도 포함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등은 자칫 부동산경기가 꺾일 것을 우려하면서 제동을 걸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3일 정례기자간담회에서 부처 간 이견을 부인하면서도 "여러 가지 논의가 있지만, 내년부터 시행시기를 잡아서 하겠다"고 강조했다.
가계부채 관리방안은 내년 1월 시행할 예정이었지만,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임 위원장은 시행시기를 못박지는 않았다. 일각에서는 각 사안에 따라서 일부는 시행시기를 늦추는 식으로 차등화할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임 위원장은 또 "국민이 불편할 만한 것엔 예외조항을 둘 것"이라며 "집단대출, 구체적 상환 계획이 수립된 경우, 자금수요 목적이 단기이거나 생활자금인 경우 등 예외를 둬 경직적으로 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도 언급했다. 따라서 이런 예외조항을 확대하는 식으로 완화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 1년간 부동산 경기 살리기에 치중하는 사이 가계부채는 110조 원이나 늘어났다. 한국은행에서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 3분기 말 가계부채는 1166조 원에 이른다. 가계부채 증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집단대출에 대해선 자체 모니터링만 강조할 뿐 손도 못 대는 형편이어서 우려감도 커지고 있다.
◇ 수주산업 회계 투명성 제고 방안도 뒷걸음 불가피
지난 10월 말 금융당국에서 발표한 수주산업 회계 투명성 제고 방안 역시 발표한 지 한 달여 만에 뒷걸음칠 판이다. 건설업계가 국회 정무위원회와 금융당국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주사업 회계투명성 제고방안은 대우건설 분식회계 논란을 비롯해 건설, 조선사 등 수주산업의 급격한 실적악화와 분식논란이 끊이지 않으면서 이들 산업의 회계와 공시 기준을 강화한 것이다. 사업장별 사업진행률, 미청구공사 등 중요 정보를 공개하고, 총예정원가 변동분도 인프라, 건축, 플랜트, 선박 등 부문별로 공시해야 한다.
건설업계는 이처럼 강화된 기준을 적용하면 수주경쟁력 등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검토를 시작하진 않았지만, 국회에서도 부담을 느끼고 있어 일부 손을 봐야 할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건설업계는 강화된 기준으로 하면 사업장별로 원가가 드러난다고 걱정하지만 회계사들이 검토해본 결과 꼭 그렇지는 않다"면서 정치논리로 흐르는 점을 우려했다.
내년 4월 총선 등을 고려하면 이들 업계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고, 결국에 금융당국이 한발 물러나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애초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했지만, 시행시기 등 일부 완화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외에도 금융당국이 강조했던 기업 구조조정도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동안 조선, 건설, 해운, 철강 등 산업별 근본적인 처방과 구조조정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에 이어 조만간 STX조선도 구조조정 대신 금융지원 쪽으로 결론 날 가능성이 커지면서 산업별 구조조정 역시 힘을 잃어가는 분위기다. 금융위원회도 이달 중 4대 업종에 대한 업황전망 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이지만 이 역시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