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엇갈린 평가들이 나온다. 주택담보대출의 분할상환을 유도하고, 대출 심사를 깐깐하게 하자는 내용의 이번 가계부채 대책에 대한 평가가 그렇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도 어제(23일) 오찬 기자간담회에서 "(가계부채 대책에 대한 평가가) 좀 나뉘는 것 같다"며 "생각보다 세게 나왔다는 얘기도 있고, 약하다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가계부채 문제와 부동산 경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다소 애매모호한 대책이 나왔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투기적인 수요와 실수요라는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어쨌든 가계부채 대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LTV(담보인정비율)·DTI(부채상환비율)를 건드리지 않아 단기적인 효과를 거두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 가계부채의 속도를 조절하는 효과에 대한 기대감은 생겼다.
게다가 내년부터 도입되는 '스트레스 금리'는 더욱 주목할만 하다. 정부가 앞으로 상황에 따라선 가계부채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열쇠를 쥐게 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조심스레 나온다.
◇ 너무 세다 vs 느슨하다
정부가 가계부채 대책의 상징과도 같은 LTV·DTI에 변화를 줬다면 방향은 명확했을 터. 이는 시장에 가계대출을 조이겠다는 분명한 시그널을 주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부동산 경기에 찬물을 끼얹게 되는 조치다. 정부는 예상대로 이것을 건드리지 않았다. 하지만 가계부채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했고 그런 고민 속에서 나온 차선책이기에 평가는 엇갈릴 수밖에 없다.
LTV·DTI가 단기간에 확실한 효과를 볼 수 있는 매크로 정책이라면 이번 정책은 장기간에 걸쳐 천천히 효과가 나오는 대책이다. 폭도 크지 않을 수 있다. 진웅섭 원장도 "방향과 속도를 어떻게 가져가느냐의 문제"라며 "이 시기에 나올 수 있는 정책의 조합이 이 정도다 해서 나온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정반대로 엇갈리는 평가에 "당황스럽다"면서도 "분할상환과 대출심사 강화 등의 질적인 변화를 핵심내용으로 하다 보니 당장에 효과를 평가하는 게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 대책의 핵심은 상환능력이 있는 거주 목적의 실수요자에게 대출을 해주고, 상환능력이 없는데 집값 상승을 노린 투기목적의 수요는 줄여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이번 대책은 어느 정도 상환능력이 있는 실수요자들에겐 사실상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러니 느슨한 대책으로 평가된다. 반대로 차익을 노리는 투기 목적의 수요자들에겐 엄청난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센 정책'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 손병두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이 지난 21일 금융위 기자실에서 가계부채 종합 관리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 '스트레스 금리'로 당국 운신 폭 넓혔다?
게다가 정부가 내년부터 도입하기로 한 '스트레스 금리'와 '스트레스 DTI'는 센 정책과 느슨한 정책을 가늠하게 될 중요한 단서가 될 수도 있다. 스트레스 금리는 최근 3~5년간의 금리 변동폭을 토대로 앞으로의 금리 인상 리스크를 반영한 지표이고, 이런 스트레스 금리를 반영해 산출한 DTI가 스트레스 DTI가 된다.
영국은 현재 3%포인트를 적용해 대출자의 상환능력이 있는지를 테스트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국내 SC은행도 스트레스 금리 2%포인트를 반영해 스트레스 DTI를 80%로 관리하고 있다.
이를 적용하면 결과적으로 대출 한도는 줄어든다. 변동금리 3.5%에 1억 원을 빌린다고 하자. 이 때 연간 이자상환액은 350만 원이지만 스트레스 금리 2%포인트를 더하면 550만 원으로 늘어난다. 실제 이 이자를 적용받는 것은 아니다. 다만 DTI(연간 원리금 상환액/연소득) 산정 때 이를 적용하게 되면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늘어나고, 현행 DTI 60% 규제를 맞추려면 결국 대출한도를 줄여야 한다. 연봉 3000만 원에서 5000만 원 정도를 기준으로 하면 보통 1000만 원 정도 한도가 줄어들게 된다.
정부는 이를 통해 금리 노출 위험을 줄이고, 은행의 대출 심사기법을 선진화하겠다는 취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DTI 자체의 변경 없이 스트레스 DTI를 통해 대출 한도를 줄이는 효과를 얻게 된다.
게다가 금융당국은 앞으로 이 스트레스 금리를 최근 3~5년 간의 금리 변동폭과 주요국 은행 사례 등을 고려해 '은행권 TF'에서 논의해 결정할 예정이다. 2%가 될 수도 있고, 1% 혹은 3%도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정하는 과정에서, 물론 시장 상황과 괴리된 터무니 없는 금리를 뽑아내진 않겠지만 때에 따라선 정부가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여지를 만든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변동금리 대출에 국한돼 있기는 하지만 스트레스 금리 수준에 따라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미시적으로나마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총 대출한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카드인 만큼 정부가 어떤 카드를 빼드느냐에 따라선 생각보다 '센 대책'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