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이 최상급 주택단지에만 이름을 달겠다며 개발한 새 프리미엄 주택 브랜드 '디에이치(THE H)'가 고분양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강남 재건축 수주를 확대하려면 기존 '힐스테이트' 브랜드로는 역부족이라며 고급화·차별화 차원에서 도입한 것인데 첫 적용 사례부터 강남 고분양가의 주범으로 찍힌 것이다. 야심차게 내놓은 새 브랜드가 오히려 건설사 이미지만 깎아먹는다는 핀잔까지 나올 정도다.
5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오는 8일 견본주택 개관 예정인 서울 강남 개포주공3단지 재건축인 '디에치이 아너힐즈'는 일반분양분 전체가 지난 1일 시작된 중도금대출 보증 규제를 받는 최초 단지가 될 전망이다.
이 아파트 일반분양분은 전용면적 76~130㎡ 총 70가구로, 분양가격은 모두 지난 1일부터 적용되는 중도금 대출보증 제한선인 9억원을 훌쩍 넘는다. 가장 작은 전용 76㎡도 13억원 안팎, 최고가는 27억원선(전용 130㎡ 테라스형)으로 예상된다.
이 단지는 현대건설이 강남권 재건축 사업 수주를 위해 작년 말 내놓은 고급 아파트 브랜드 '디에이치(THE H)'를 달고 처음으로 분양시장에 선보이는 아파트다. 현대건설은 당시 분양가 '3.3㎡당 3500만원 이상 고가 아파트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새 브랜드라고 '디에이치'를 소개했다.
하지만 '디에이치 아너힐즈'가 올들어 강남 재건축 분양가 인상 열풍을 이끌면서 상품의 차별성보다 고분양가만 유독 부각되고 있다.
▲ '디에이치' 브랜드 설명 프레젠테이션(자료: 현대건설) |
개포지구 내에서 지난 3월과 6월 먼저 분양한 2개 단지(래미안 블레스티지, 래미안 루체하임)도 이 아파트(디에이치 아너힐즈)의 고분양가 책정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에 당초보다 가격을 높여잡고도 분양을 쉽게 마칠 수 있었다는 건 업계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2개의 래미안 단지 분양가격은 3.3㎡당 평균 3700만원대였는데 뒤이어 나올 디에이치 아너힐즈가 3.3㎡당 평균 4500만원대에 분양될 것이란 소식이 전해지며 높은 경쟁률로 청약을 마치고 계약도 조기에 완료됐다.
인근 두 단지보다 3.3㎡당 분양가가 700만원가량 높은 디에이치는 주택당국에게도 표적이 됐다. 이 단지의 고가 분양을 견제하기 위해 국토교통부가 중도금대출 보증 규제를 유예기간 없이 곧바로 시행했다는 뒷말도 나온다.
그 와중에 개포주공3단지 재건축조합과 시공사인 현대건설은 지난달 30일 기습적으로 강남구청에 3.3㎡당 평균 4445만원으로 분양승인을 신청했다. 애초 예정보다 3~4일 앞당겨 신청서를 접수한 것이다. 7월부터 시작된 중도금대출 보증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결국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분양보증을 받지 못한 상태여서 '서류 미비'로 승인은 반려됐다. 일반분양 물량이 많지 않아 분양 부담이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관측돼 왔기 때문에 이 단지의 기습적인 분양승인 신청은 분양업계에서도 뜻밖이라는 반응을 불렀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고급 브랜드의 차별화된 상품성을 강조하던 것과 어울리지 않게 뒤에서 '꼼수'를 부리려던 시도가 불발된 것"이라며 "'노이즈 마케팅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지난달 말 분양가를 소폭 조정한 것을 불편하게 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디에이치 아너힐즈는 고분양가 논란에 대한 부담을 벗으려 주택형별 최고 3.3㎡당 가격을 당초 계획했던 5166만원에서 앞자리 숫자를 바꿔 4995만원으로 낮추기도 했다.
하지만 평균가격은 3.3㎡당 12만7000원, 직전 계획대비 0.28% 낮추는 데 그쳐 "분양가를 인하하는 시늉만 한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후 최근 며칠 사이 강남 재건축 시장이 빠르게 위축되자 이 역시 "디에이치가 너무 급하게 시장을 달궜기 때문"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공교롭게도 이 브랜드를 내걸고 첫 수주한 재건축 사업에서도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다. 작년 6월 현대건설은 '디에이치'를 앞세워 서울 서초구 반포동 삼호가든3차 시공권을 따냈다. 하지만 이후 시공사 선정총회 비용지출 등의 의혹이 제기됐고 결국 지난달 조합장 등 조합 임원 3명이 해임됐다.
이처럼 새 브랜드로 벌이는 일련의 주택사업에서 부정적인 일들이 터져나오자 현대건설 내부에서도 불편한 기색이 비쳐진다. 공격적 사업 기조가 자칫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익명을 요구한 이 회사 관계자는 "최근 1~2년 주택사업 비중이 늘어나면서 수주나 분양에서 종전과는 달리 다소 무리한 모습이 뒷말을 낳는 경우가 있었다"며 "주택사업을 지켜보기가 아슬아슬하다는 목소리가 내부에서도 심심찮게 나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