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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무주택자의 배신감

  • 2018.03.13(화) 15:58

핀셋 대신에 '쌍끌이' 대책, 고스란히 실수요자 피해
결국 로또·금수저 분양으로…'주거 사다리' 무색

주변 지인의 얘기다. "용인에 있는 한 아파트가 6억원에 나왔길래 1000만원 가계약금을 걸었다. 다음날 집주인이 계약을 깨자며 2000만원을 돌려주더라. 며칠 후 이 집은 6억7000만원에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갔다. 지금은 같은 아파트 같은 면적인데 7억원에 매물이 나와있다."

 

연초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 3억원대의 계약금을 두배를 물어주면서까지 계약을 파기했던 일이 기사화되기도 했다. 당시엔 터무니없는 일이라고까지 생각됐던 일이 최근 몇개월새, 최근에도 강남뿐 아니라 서울 곳곳, 일부 수도권에서 비일비재하다. 결국엔 집주인이 맞았다. 실수요자만 억울하고 답답한 노릇이다.

 

"(8.2대책으로)투기수요를 거둬내서 시장이 안정되면 서민이나 실수요자의 내집마련 기회는 더 늘어날 수 있을 겁니다."

지난해 8.2대책 발표이후 당국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일부에서 제기되는 실수요자 피해 가능성에 대해선 집값이 지금처럼 오를 것을 단정짓기 때문이라며 타박(?)했다. 8.2대책으로 집값이 안정되면 대출한도가 줄어도 실수요자에겐 내집마련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논리대로라면 맞는 얘기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단언했다. "다주택자의 단기투자 유인을 억제하고 실수요 중심의 시장질서를 확고하게 만들겠습니다"라고. 무주택자, 실수요자들은 정말 믿고 싶었다.

▲ 이명근 사진기자

 

이후 반년 넘게 흘렀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 중위가격은 지난달 7억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4월 6억원을 돌파한 후 1년도 안돼 1억원이나 뛰었다. 그 사이 정부는 크고작은 대책을 무수히 내놨다.

 

최근엔 실수요자에게 저렴하게 내집마련 기회를 주는 청약제도가 로또분양, 금수저 논란을 불렀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분양보증을 하면서 당첨만 되면 곧바로 수억원의 시세차익을 볼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개포주공8단지 공무원아파트를 재건축하는 '디에이치자이 개포'는 3.3㎡당 4160만원으로 분양보증을 받았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개포동 아파트의 매매가 평균시세(9일 기준)는 3.3㎡당 7517만원이다. 강남구는 4802만원이다. 현재 시세보다 낮은 분양가다.

 

이 경우 전용면적 59㎡는 11억~12억원,  84㎡는 14억~15억원 수준의 분양가를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분양한 래미안 강남포레스트(개포시영아파트)도 같은 가격에 분양보증을 받았다. 전용 96㎡의 일반 분양가격은 15억4700만원~18억4300만원 수준이었다.

 

현재 전매제한으로 거래되지 않고 있지만 같은 면적의 조합원 분양권은 20억원 선에 매물이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다. 디에이치자이 개포의 경우 적게는 2억~3억원, 많게는 6억원까지도 시세차익이 가능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그야말로 로또지만 로또처럼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진 않는다. 8.2대책에 따라 9억원 이상 아파트엔 중도금대출이 막혔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당첨이 된다고 해도 현금이 필요하다. 분양가격이 최소 11억원이라고 하면 앞으로 계약금 1억1000만원과 중도금 6억6000만원(1억1000만원씩 여섯차례 납부) 등 총 7억7000만원의 현금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 디에이치자이 개포 조감도(사진:현대건설)


부모로부터 자산을 물려받은 '금수저'나 '현금부자'가 아닌 일반 직장인들이 대출 없이는 엄두를 내기 힘든 금액이다. 로또 논란부터 금수저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이 이런 이유다.

 

최근 로또분양으로 불린 과천 센트럴파크푸르지오써밋(대우건설) 역시 일반분양 물량중 22%에 해당하는 128가구나 미계약됐다. 이들 중 상당수는 중도금대출이 막히면서 계약을 포기했다. 이 물량은 결국 청약조건에 제약이 없는 재분양을 통해 현금부자들 차지로 돌아갔다.

 

이번 디에이치자이 개포 분양을 앞두고도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청약가점을 높이기 위해 위장전입을 한 당첨자를 걸러내겠다는 엄포 정도다.

 

토부 관계자는 "(금수저 논란은)강남 등 일부지역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라며 "오히려 서울 전체적으로 볼때  청약가점제 시행 등으로 무주택 당첨 비율이 커졌다"고 자평한다. 이런 국토부의 시각에 '주거 사다리' 혹은 '계층 사다리'를 얘기하는 것조차 의미없어 보인다.

 

현재 부동산 시장은 눈치보기에 한창이다. 얼핏 시장이 안정된 것으로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부터 대책이 효력을 발휘해 실수요자에게 기회가 오지 않겠냐는 기대를 하기엔 이미 너무 많이 올라버렸다.

 

6개월 전 정부는 정책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 시장이 정책대로 움직일 것이라는 자만으로 '핀셋 대책' 대신에 '쌍끌이'를 택했다. 이것이 결국 실수요자에겐 막막한 지금의 부동산 현실을 만들어냈다. '실수요중심의 시장질서'를 강조하던 정부의 자신감은 자취를 감췄다. 남은 것은 수개월새 급등한 가격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무주택자들의 허탈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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