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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팡질팡 부동산정책]①머리꼭대기 앉은 시장

  • 2018.09.04(화) 10:17

다주택자→똘똘한 한채, 증여, 임대 등록 빠져나가고
실수요자→집값 천정부지, 로또청약, 대출규제에 꽉 막혀

이 정도면 정부의 백전백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정부는 시장과 싸운다고 하지만 시장은 정부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는 형국이다.

이미 큰 폭으로 오른 집값이 이를 방증한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들어 8월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값은 12.42% 올랐다. 지난 한해 동안 오른 11.44%를 벌써 뛰어 넘었다. 이번 정부에서 지난해 6.19대책과 8.2대책을 신호탄으로 여러차례 굵직한 대책을 쏟아냈던 점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결과다.

 

그나마 이번 정부에서 가장 큰 성과로 인정받던 임대주택 등록 역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말마따나 일부 투자자들의 갭투자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고 있다. 정부가 대책을 내놓으면 시장에서는 또 다른 대안을 찾는 식의 상황만 되풀이되고 있다.

 

정부가 이처럼 투기수요 차단에 집착하는 사이 실수요자의 내집마련만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최근 3.3㎡당 1억원을 찍은 반포아크로리버파크.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정책 무력화

정부가 다주택자에게 퇴로를 열어주고 숨통을 트일 수 있게 해준 임대주택 등록은 갭투자의 유용한 수단이 됐다. 정부는 등록한 임대주택에 대해선 종합부동산세 합산 배제, 양도세 중과 배제, 장기보유 특별공제 등의 세제상 혜택을 주고 있다.

임대사업 등록자를 대상으로 하는 대출은 사업장 구입자금이어서 가계대출인 주택담보대출과 달리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적용도 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최고 8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고 금리 면에서도 유리하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 부장은 "투자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이를 잘 인지하고 있었고 정부가 열어 놓은 쪽으로 움직인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정부가 임대등록을 통해 신규취득이 가능하도록 열어 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고 있다.

 

임대등록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8.2대책에서 발표했듯 올해 4월부터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시점이 다가오자 시장에선 '똘똘한 한채' 열풍이 만들어졌다. 여러 채를 소유해 세금을 부담하느니 똘똘한 한채를 소유하려는 쪽으로 움직였다.

강남 재건축아파트에서 시작한 이 열풍은 새아파트로 확산하는 등 똘똘한 아파트의 값은 그야말로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가장 강력한 카드가 될 것으로 여겼던 종합부동산세 개편안은 똘똘한 한채의 몸값을 더욱 높였다.

최근 발표한 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구 추가 지정 역시 시장의 인식과는 차이가 있었다. 정부는 수요 억제를 위해 서울 일부지역을 추가 투기지역으로 지정했지만 시장에서는 이 조차 호재로 인식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은 투자등급제가 돼 버렸다"며 "투기지역은 A등급, 과열지구는 B등급처럼 인식하는 식"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한 전문가도 "정부가 생각하는 것보다 사람들은 (부동산 자산 증식에 대해)훨씬 많은 것들을 고민하고 있다"며 "투기세력이 아니라도 부동산을 자산 증대의 한 방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거주 목적으로 집을 사야 한다는 올드한 생각과 틀에 얽매이다보니 정책이 사람들의 생각을 못 따라가는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 투기잡으려다 실수요자만 잡는다 비판도

처음 설계 당시부터 치밀하고 정교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데 대한 지적도 잇따랐다. 안명숙 부장은 "임대등록은 전셋값이 오를때 만들었던 정책을 확대해서 시행한 것인데 지금은 전셋값은 안정세로 가는 반면 집을 살 사람들이 살 집이 없다는 상황이어서 정책이 미스매치되는 점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최근 연소득 7000만원 이상에 전세자금대출을 위한 전세보증을 제한한다고 발표했다가 하루만에 입장을 바꾸며 혼란을 자초했다. 실수요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무주택자를 제외한 것. 전세대출을 이용해 갭투자에 나서는 투기수요 차단에만 집착해 정작 실수요자에 미치는 영향조차 들여다보지 않은 설익은 대책을 내놨다.

 

전세대출이 아니라도 실수요자의 내집마련은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다. 지난 8.2대책에서 서울 전체를 투기과열지구로 묶고 LTV 한도를 40%로 제한하면서 이미 실수요자들이 서울에 접근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8.2대책 등 정부의 연이은 대책의 핵심은 다주택자들은 집을 팔고, 그 누구도 더는 과도한 빚을 내서 집을 사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상당수 다주택자들은 집을 팔지 않았고 임대주택 등록, 증여 등의 방법으로 빠져나갔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갭투자를 통해 좋은 집을 선점했다.

 

반면 집값은 서민은 물론 중산층 수준의 가구에서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올랐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분양하는 아파트는 대부분 '로또 청약'이 됐고 20~30대 젊은 맞벌이 부부들의 주거사다리가 사라졌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온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실수요자들에게 돌아간 셈이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지난해 6월 취임식에서 "아파트는 '돈'이 아니라 '집'"이라며 "돈을 위해 서민들과 실수요자들이 집을 갖지 못하도록 주택 시장을 어지럽히는 일이 더 이상 생겨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아파트를 집이 아닌 '돈'으로 만들고, 주택시장을 더욱 혼란하게 만든 것이 정작 누군지에 대해 자문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연구실장은 "추가대책보다는 임대등록을 비롯한 기존의 정책들이 숙성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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