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나이 벌써 48세입니다. 사람들은 저를 두고 서울 혹은 수도권의 '허파'라고 얘기합니다. 올들어 최악의 폭염을 겪으면서 콘크리트 덩어리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제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며 토닥이기도 합니다. 그냥 아무 것도 안하고 있기만 해도 된다면서 말이죠.
그런지 얼마 되지 않아 제 몸뚱아리가 또 잘려 나가게 생겼습니다. 가뜩이나 몸집이 점점 줄었는데 더욱 쪼그라들게 생겼습니다.
▲ 인덕원역 근처의 그린벨트내 농장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짐작하셨겠지만 저는 그린벨트입니다. 개발제한구역이라고도 하죠. 1971년 7월30일은 제가 태어난 날입니다. 박정희 정부 시절에 건설부는 서울 중심에서 반경 15㎞밖 2~10㎞ 지역(467㎢)을 묶었고 이 때부터 저는 그린벨트로 불리었습니다. 당시 규모는 서울 면적(605K㎡)의 77%에 달했습니다.
첫해 수도권 지역에 1557.5㎢를 지정했고 77년까지 전 국토의 5.4%인 5397.11K㎡를 지정했습니다. 서울의 8.9배에 달하는 규모라고 하니 제가 얼마나 거대했는지 대강 짐작이 되시죠.
정부는 도시의 무분별한 확산과 투기 억제를 위해 저를 만들어 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파트는 커녕 집을 새로 짓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최소한의 증개축만 허용되기 때문에 경제적인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요. 이 때문에 주변 땅값에 비해 가격이 10~30% 수준에 불과합니다.
주인님을 포함한 원주민들은 늘 '사유재산 침해'라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제 주인님도 저를 어쩌지 못하고 늘 한숨만 푹푹 내쉽니다. 서울 근교에 있는 저는 10년 넘게 포도밭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나마 나은 형편이죠. 어떤 곳은 버려진 채로 비닐하우스나 쓰레기 더미로 몸살을 앓기도 합니다.
제 주인님은 70대 할머니이십니다. 요새 포도 수확철이라 엄청 바쁘고 돈도 많이 버는 것 같지만 좋아라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제 그만 하고 싶다"며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이 땅을 놀릴 수 없어 매년 연로하신 몸으로 이렇게 농사를 짓고 계시거든요.
며칠 전엔 어떤 사진기자가 찾아 왔습니다.(저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아시겠죠?) 제 주인님은 그 사진기자가 돌아갈때 갓 딴 포도를 한 봉다리 쥐어주시며 "꼭 좀 풀어줘"라고 당부하시더라고요.
사실 이런 점들 때문에 국민의 정부 시절인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그린벨트 해제가 시작됐는데요. 국민의 정부때 해제된 그린벨트는 전체 지정면적의 24%(1292.17㎢)에 달합니다.
참여정부 때도 하남 풍산지구 등 총 16개 지구, 1040만㎡를 국민임대주택 단지로 지정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땐 이보다 더 많은 4451만6000㎡에 달하는 그린벨트가 해제됐습니다. 서민주택인 보금자리 주택을 짓기 위해서죠.
박근혜 정부때는 20㎢를 해제 했고요. 제 몸은 갈수록 작아졌습니다. 지금은 3846㎢로 가장 컸을 때( 5397.11K㎡)와 비교해면 30%나 줄어들었습니다.
요새 저를 두고 논란이 다시 커지고 있습니다. 국토부가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서울과 서울 인근 수도권의 그린벨트 일부를 해제해 아파트를 짓겠다고 하면서부터 인데요.
▲ 그린벨트 표지판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제 주인님의 한숨을 생각하면 제 몸이 점점 줄어들더라도 하루빨리 해제하는게 맞는 것 같은데요. 서울과 수도권에 최소한의 녹지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환경단체의 얘기도 틀리지 않은 듯 합니다. 제가 있어야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로 인한 열섬현상을 줄이고 열대야, 찜통더위도 덜할 수 있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아파트를 지을 게 아니라 방치돼 있는 저의 일부를 녹지공간으로 활용하고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권한을 가진 박원순 서울시장도 '미래세대를 위해 남겨둬야 한다'며 정부와 여당의 압박에 버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박 시장이 저를 보호해 준 덕에 최근 몇년간 그나마 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인데요. 이번에도 가능할 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들 치솟는 아파트 값에 살 집이 없다고 아우성이니까요. 정부의 대책이 곧 나온다고 하는데요. 이번 대책에서 제 운명은 과연 어떻게 결정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