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상한제의 민간택지 확대 도입이 확정되면서 재건축·재개발 조합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그동안 각종 부동산 규제에도 '우회로'를 찾아오던 이들이지만 아직까진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는 분위기다.
다만 분양가상한제 직격탄을 피하기 위한 차선책들이 몇가지 거론되고는 있다. 주택법 시행령이 개정되는 10월초 이전에 서둘러 선분양에 나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규제를 적용받거나 당장 분담금을 더 내더라도 고급화 단지를 만들어 향후 시세차익을 노리는 등 조금이라도 손해를 덜 보기 위한 셈법 계산에 바쁘다.
분양가 상한제보다는 'HUG 규제'
가장 먼저 물망에 오른 대책은 '선분양'이다.
이번 분양가 상한제는 정비사업장에 대해서도 적용 기간을 기존 '관리처분인가'에서 '최초 입주자 모집공고일'로 강화했다. 이에 따라 관리처분인가를 받고 일반분양을 준비 중인 단지들도 분양가 상한제를 소급 적용받게 된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재건축·재개발 조합들은 HUG의 분양가 규제를 피하기 위해 후분양을 검토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하지만 후분양까지 포괄하는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 예고(10월 초)되자 울며겨자 먹기로 서둘러 선분양에 나서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HUG의 분양가 통제를 받더라도 분양가상한제 적용보다 낫다는 판단에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서울에서 정비사업을 추진 중인 381개 단지 중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단지는 66곳, 6만8406가구에 이른다. 이들 중 후분양을 검토하던 강남구 래미안 라클래시(상아2차)는 이달 24일 조합 총회를 열어 선분양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해당 조합 관계자는 "이미 HUG와의 분양가 협상을 마무리 지어놓은 상태라서 분양가 상한제 도입 전 선분양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서초구 래미안 원베일리(신반포3차), 둔촌주공, 힐스테이트세운, 브라이튼여의도, 반포우성, 흑석3 등 후분양을 논의하던 일부 재건축 단지들이 분양을 서두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은진 부동산114 팀장은 "조합들 사이에선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을 것인지 HUG의 분양가 규제를 받을 것인지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수익성을 따지고 있을 것"이라며 "사업을 늦출수록 금융비용 등의 부담이 있기 때문에 분양에 임박한 단지들 위주로 선분양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비사업엔 적용 불가, 이외 일반 공동주택만 해당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지 않는 '임대 후 분양'도 여전히 거론된다.
임대 후 분양은 일정 기간(4~8년) 임대를 한 뒤 분양전환하는 제도로, 후분양의 성격을 갖고 있지만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분양 전환 시 분양가를 자유롭게 책정할 수 있게 돼 있다.
실제로 나인원한남은 HUG가 3.3㎡(1평)당 분양가 4000만원대를 고수하자 4년 임대 후 분양으로 전환했고, 분양가는 평당 6100만원으로 책정했다.
다만 이 역시 분양가 규제에 준하는 임대료 규제 장치가 있다. 이문기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지난 12일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개선 방안을 발표하면서 "임대 후 분양도 임대보증보험에 가입해야 하는데, 고가 분양(임대)일 경우 보증이 거절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대 후 분양을 하려면 HUG의 임대보증보험에 가입해야 하는데, 이 때 HUG가 임대보증금과 보증료 등이 적절한 지 보고 가입 승인을 해준다는 의미다.
HUG 관계자는 "통상 임대 후 분양 시 임대보증금과 보증료 등은 향후 분양전환 시점의 분양가를 환산해 책정한다"며 "가격 심사기준은 HUG의 고분양가 관리지역에 적용하는 분양가 심사기준에 준용한다"고 말했다.
가령 HUG의 분양가 심사기준에 따라 서울 A아파트의 분양 가격을 책정하려면, 분양 및 준공 시점에 따라 비교 사업장(분양 1~2년, 준공 10년 등)을 정한 뒤 그 분양가가 시세의 100~105%를 넘으면 안 된다. 만약 같은 아파트를 임대 후 분양하기 위해 HUG에 임대보증보험 가입을 요청한다면, HUG가 해당 기준에 따른 분양가를 임대보증금과 임대료 등으로 환산해 심사하는 식이다.
문제는 서울시 조례(서울특별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 제40조)에 따라 서울 지역 내 재건축·재개발은 일반분양만 할 수 있다. 임대후 분양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현재로선 사업자가 택지를 사들여 진행하는 사업장만 임대 후 분양이 가능한데, 서울의 대형 사업장은 대부분 정비사업이어서 실질적으로 이를 적용할 수 있는 사업장이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방식을 택하더라도 분양 전환 시점에 분양가가 높다고 판단되면 지자체가 승인을 내주지 않는 위험 부담도 따른다.
분담금 내는 대신 명품 주택화
고급화 단지를 조성할 때 사용되는 '일대일 재건축'도 검토되고 있다.
일대일 재건축은 현재 세대수와 동일한 세대수로 재건축 하거나 극소수 물량만 분양하는 방식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일반분양이 30가구 미만일 땐 분양승인 대상에서 제외돼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일반 분양분으로 건축비를 충당하는 일반 재건축보다 상대적으로 건축비가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부담금이 크지만, 고급화 단지로 조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비 업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일대일 재건축은 일반 재건축과 달리 전용 면적 85㎡ 이하의 소형 가구 30% 이내 배치, 임대 가구 비율 유지 등의 규제에서 자유롭다. 시세 차익에서 건축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일반 재건축보다 초과 이익 환수금을 상대적으로 적게 부담할 수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용산의 '래미안 첼리투스'(옛 렉스아파트)다. 재건축 당시 조합원 1인당 분담금이 5억~6억원에 이를 정도로 높았으나 아파트의 몸값이 8억~10억에서 현재 30억원 가까이 올랐다. 이 밖에 아크로리버뷰(옛 신반포5차·작년 6월 입주), 삼성 홍실아파트(내년 6월 이주 예정) 등도 일대일 재건축을 통해 오히려 시세를 끌어올렸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대일 재건축은 일반분양분은 극소수지만 조합원에게 돌아가는 면적이 넓어지고 고급화할 수 있어 입주 때 돼서 자산가치가 상승할 수 있다"며 "아울러 일반분양분이 적어서 준공 시점에 희소성이 부각될 수 있어 정비업계 내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고 말했다.
15%까지 일반분양도 가능
기존 건물의 골조만 남겨놓은 뒤 다시 건물을 올리는 '리모델링' 방식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리모델링 사업은 준공 후 15년이 지나면 사업을 추진할 수 있어 재건축 사업연한(30년)에 비해 기간이 훨씬 짧다. 일반분양이 아예 안되는 것은 아니고 기존 가구 수 대비 15%까지 늘려 일반분양할 수 있다. 기부채납 및 임대주택 의무도 없다.
주택법 시행령 제61조 분양가상한제 적용지역의 지정기준 등을 보면 '리모델링주택은 제외한다' 조항이 있어 분양가 상한제도 빗겨간다.
현재 서울과 1기 신도시에서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단지는 39곳, 2만8221가구에 이른다. 업계에선 이번 분양가 상한제 확대 도입으로 재건축 연한을 앞둔 20년차 중후반 단지들이 리모델링으로 돌아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재 문정시영아파트, 가락쌍용1차, 목동우성2차, 자양우성1차 등이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 중이다.
두성규 선임연구위원은 "리모델링은 기존 골조 등을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평면 구성 등에 한계가 있지만, 상품 자체가 일대일 재건축과 유사하기 때문에 정비 업계에서 검토되는 방법 중 하나"라며 "리모델링 외에도 재건축·재개발 단지별로 금융 조달, 단지 규모, 기대 수익률, 조합원 간 합의 등을 이뤄 방법을 찾아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