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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가 내리는 대신 '옵션 꼼수'…소비자들은?

  • 2019.09.06(금) 09:19

분양가 낮추는 대신 마이너스옵션 추세…'결국 조삼모사' 지적
조합 '옵션 주관' 땐 시공사와 다른 업체 선정…"품질저하" 우려도

#서울의 한 재건축 아파트 분양을 노리던 A씨는 입주자모집공고를 보고 낙담했다.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돼 가격 부담을 덜었다고 생각했는데, 무상으로 제공되는 기본 옵션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A씨는 수천만원에 달하는 유상옵션 부담에 청약을 망설이고 있다. 

#수도권 한 재건축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B씨는 시스템 에어컨 등 일부 옵션은 시공사가 아닌 조합이 직접 발주한다는 사실을 옵션계약 체결을 앞두고 뒤늦게 알았다. 입주자모집공고 란에 한줄 들어가 있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시공사가 아닌 조합이 주관한 옵션의 품질은 괜찮은지 혹은 문제가 생기면 하자 보수는 제대로 이뤄지는 지 걱정은 되지만 계약을 체결한 상황이어서 별다른 방법은 없었다. 

오는 10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확대 적용되면 이 같은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정비사업 조합들이 상한제로 인해 손해 본 금액을 수분양자와의 옵션 계약을 통해 보전하려는 '꼼수 분양'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 경우 수분양자 입장에선 분양가가 내려가지만 수천만원의 옵션비를 추가로 내야하기 때문에 결국엔 '조삼모사'로 작용하게 될 것이란 우려다.

마이너스 옵션 분양을 검토 중인 개포주공1단지./채신화 기자

◇ 최대한 빼자…'마이너스 옵션' 추세

개포주공1단지 재건축, 이촌현대 리모델링 조합 등 서울 주요 정비사업 조합들이 분양가 상한제에 맞춰 '마이너스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 

마이너스 옵션은 시공사가 골조, 외부 미장, 마감공사 등 최소한의 공사만 하고 나머지는 유상옵션으로 돌리는 방식이다.

입주자의 취향대로 실내를 꾸밀 수 있게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제도지만, 최근엔 분양가를 낮추기 위한 꼼수로 거론되고 있다. 기본 옵션을 최대한 빼고 유상 옵션 품목을 늘려 수수료 마진을 챙길 수 있어서다. 

'공동주택 분양가격의 산정 등에 관한 규칙' 제2장3조에 따르면 별도의 유상옵션으로 제공할 수 있는 품목으로는 ▲발코니 확장 ▲시스템 에어컨 ▲붙박이 가전제품(쿡탑, 냉장고 등) ▲붙박이 가구(옷장, 수납장 등) 등이 있다.

그동안은 발코니 확장을 하면 붙박이 가구 등은 무상으로 제공해주거나, 고급 자재만 유상으로 선택하게 하는 식이어서 옵션 부담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의 분양가 규제가 심해질수록 무상으로 제공되던 옵션이 유상으로 바뀌거나, 품목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분양한 송파 시그니처 롯데캐슬의 경우 발코니확장, 원목마루, 붙박이장, 수납장 등 유상옵션 항목이 16개에 달한다. 전용면적 84㎡C타입에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다 합치면 7000만원을 넘어선다.

일부 옵션을 '조합 주관'으로 시행하는 방법도 활용되고 있다. 시공사가 아닌 조합이 발주한 업체에 시공을 맡기는 방법으로, 일반분양 수분양자들이 옵션 계약을 체결하면 그 수수료 마진을 시공사 대신 조합이 가져갈 수 있다.

최근엔 송파 시그니처 롯데캐슬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규제로 조합의 기대만큼 분양가 책정을 못하게 되자 이 방식을 이용한 것으로 업계는 해석하고 있다.

분양 관계자는 "당초 조합이 원하는 분양가는 3.3㎡(1평)당 3000만원이었으나 HUG의 규제로 2600만원까지 떨어지자, 마진을 남기기 위해 현관 중문과 시스템에어컨은 조합 주관으로 계약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수분양자 입장에선 번거로운 방식이다.

통상 분양 계약이 끝나면 옵션 계약을 진행하는데, 선택한 옵션이 시공사와 조합으로 나뉠 경우 계약서를 각각 작성해야 한다. 계약 날짜와 장소가 제각각이라면 계약을 위해 두 번 움직여야 하는 셈이다. 

입주 후 시공 하자를 발견했을 때도 복잡해진다. 시공사와 조합 발주 업체 두 곳의 옵션품목을 모두 선택했다면 하자 보수도 각각 신청해야 하는 등 번거로울 수밖에 없다.

◇ 싼 게 비지떡 될까…수분양자 우려

시장에선 분양가 상한제가 도입되면 이런 식의 '꼼수' 분양이 성행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 분양 관계자는 "분양가 상한제가 도입되면 조합들이 분양가는 최대한 낮춰놓고 유상옵션을 늘리는 식으로 마진을 남길 것"이라며 "지금보다 유상옵션 품목이 더 많아지고 공급 가격이 더 비싸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마이너스 옵션은 분양가 상한제의 유일한 우회로"라며 "아직 국내에서 이슈가 없었던 부분인데다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기 때문에 조합에선 옵션을 통해서라도 손해를 보전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수도권 재건축 조합들 사이에선 '누드 분양' 얘기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발코니 확장, 시스템 에어컨 등 뿐만 아니라 벽지, 문짝 등의 기본 옵션까지도 없애고 유상 옵션으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명섭 국토부 주택정책과장은 "현행 법령에 따르면 기본선택품목은 법적으로 분양가격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분양가 외 단독으로 옵션 비용을 받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공동주택 분양가격의 산정 등에 관한 규칙을 보면 ▲문 ▲바닥 ▲벽지 ▲천장 ▲욕실(양변기, 세면기 등) ▲주방가구 ▲조명기구 등 7개 항목은 기본선택품목으로 분류돼 있다.

하지만 옵션 품목 확대가 일반화되면 상황이 바뀔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은형 연구원은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발코니 확장이 불법이었는데, 사설업체를 통해 너도나도 시공을 하자 합법으로 바뀌었고 현재는 대표적인 유상 옵션 품목으로 자리잡았다"며 "옵션 품목이 늘어나는게 자연스러워지면 돈을 받지 않았던 품목까지 옵션으로 바뀌게 되고 극단적으로는 중국처럼 골조 등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모두 옵션으로 진행하게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이렇게 되면 손해는 수분양자에게로 전가된다. 옵션이 늘어날수록 분양가 외 추가 비용이 늘어나는 데다, 마진을 남기기 위해 시공 품질을 떨어트리는 등의 문제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합 주관 옵션의 경우에도 시공사보다 시공능력평가 등이 떨어지는 업체에 발주할 가능성이 커 상대적으로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장은 "마이너스 옵션 등 분양가를 낮추기 위한 꼼수 여지는 무궁무진하다"며 "이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막으려면 기본형 건축비 항목을 공개해 수분양자가 직접 아파트 설계와 품질에 합당한 가격을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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