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택, 국내에서는 아직 그 개념이 생소하고 어렵습니다.
사회주택은 새로운 민관협력 방식의 임대주택입니다. 공공임대주택과 민간임대주택의 중간 정도로 사회적 기업, 비영리 법인 등 사회적 경제주체에 의해 공급되며 저렴한 임대료, 안정적 거주기간의 보장, 공동체 활성화 등 사회적 가치 추구를 특징으로 하는 임대주택이죠.
아직 우리나라에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네덜란드는 100년이 넘는 사회주택의 역사를 가진 나라입니다.
그 시작점은 19세기 말입니다. 네덜란드는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도시로 인구 집중이 심화됐고, 도시로 모여든 노동자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대주택을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엔 자산가 층(부르주아지)에서 사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양질의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주택조합을 설립해 노동자용 주택을 짓기 시작했고, 20세기 초에 들어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의 주택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정부의 보조를 받아 많은 사회주택 협회가 탄생했습니다.
이후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주택조합들은 정부 재정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주택 사업을 운영할 정도의 역량을 갖추게 됐죠.
재밌는 사실은 당시 네덜란드 사회주택협회들은 단순히 주택을 '짓는' 것에만 목적을 두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사회주택 건축가인 미셸 드 클레르크(Michel de Klerk)를 필두로 '모든 집에 벽난로를!' 이라는 구호와 함께 가난한 사람에게도 예술이 필요하다는 신념으로 건축의 기능뿐 아니라 미적 기능을 강조하며 건물 외관에 많은 공을 들였죠.
이렇게 대부분의 주택이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어떤 주택이 사회주택인지 민간 주택인지 외관으로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연스럽게 '좋지 않은 집에 산다'는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낙인효과(Stigma effect)는 줄고, 분양과 임대용 주택을 함께 조성해 사회·경제적 배경이 다른 주민들이 어울려 사는 것을 뜻하는 '소셜믹스'가 가능해진 배경입니다.
그렇다면 네덜란드 사회주택협회들은 어떻게 정부의 지원 없이 이렇게 질 좋은 주택을 지속적으로 공급해올 수 있었을까요?
네덜란드에서 5만 6000가구에 달하는 사회주택을 공급하는 사회주택협회 아이겐하르드 빔 더 바르 커뮤니케이션 대표는 안정적인 주택 공급 비결로 세 가지를 꼽습니다.
첫 번째는 5만 6000가구에서 나오는 임대료 수익을 가지고 투자 재원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임대 규모가 크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수익을 가지고 주택 투자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회주택협회 간에 보증을 통해 대출을 해주는 사회주택보증 기금(WSW)제도도 큰 역할을 합니다. 한 협회가 도산할 경우 다른 협회가 그 부채를 갚도록 서로 보증을 해주기 때문에 상환 보장이 되고, 이것이 사회주택협회들이 최대한 낮은 이자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은 먼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20, 30년 뒤 재정 상황을 예측하고, 장기적인 재정 계획을 세워서 효율적인 운영을 하는 것이 그 비결이라고 설명했습니다.
30%가 넘는 높은 사회주택 보급률을 유지해올 수 있던 까닭은 바로 사회 전체의 적극적인 주거 공급 의지와 안정적인 자금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회주택을 통해 주거 안정을 유지하는 네덜란드에 비해 이웃나라 독일은 사회주택 보급률은 낮지만 안정적인 민간 임대 시장을 유지해오고 있다고 하는데요.
독일은 민간임대 비중이 50.4%에 달하며 심지어 자가주택(45.4%) 비중보다 높은 특징을 가집니다. 즉 자기 집에 사는 사람보다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이 더 많다는 얘기죠.
이는 임차인들의 주거안정 수준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수치이기도 합니다. 장기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임차제도 덕분에 이 같은 민간임대 체제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이죠.
강력한 임차인 보호 제도로 인해 집주인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없고 계약을 해지하려면 합당한 이유를 제시해야 합니다. 이는 집주인이 집을 팔거나 혹은 해당 집에 집주인이 들어가 사는 경우 등으로 극히 제한돼 있습니다.
또한 집을 팔 때도 집주인은 세입자에게 새로운 주거지를 찾을 수 있는 넉넉한 기간을 줘야 하고, 오래 거주하면 할수록 사전 고지 기간은 더 길어집니다.
또 하나, 임대차 계약 해지를 통보받은 임차인에게는 든든한 뒷배경도 있습니다. 임차인 보호를 위한 시민 단체가 있기 때문에 임차인이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 임차인 협회에서 지원을 해줍니다. 법적으로 1차적인 보호를 받는 동시에 임차인 협회를 통해서 이중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이죠.
반대로 임대인을 위한 혜택은 없을까요?
독일 뮌헨 공대 토지관리학과 월터 데브리스 교수에게 임대인을 위한 혜택은 없냐고 묻자 그는 "집주인들은 임대료를 받으면서 이미 경제적인 이익을 취하고 있는데 어떤 인센티브가 더 필요한 것이냐"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임대인의 입장에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 뮌헨 근교에서 임대업을 하고 있는 마틴 브렌델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인터뷰에서 브렌델씨는 '임대인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임대료를 받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물론 임차인보다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부분이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나에게는 안정적인 임대 수익이 더 중요하다"라며 "당장의 이득보다는 안정적이고 좋은(Nice) 임대인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4년 전 임대업을 시작한 이래로 임대료를 올리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2년의 임대차 계약이 끝날 때마다 임대료를 올려 받는 한국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대목이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네덜란드의 사회주택, 독일의 임차인 보호 제도가 우리나라 청년들에게 꼭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높은 사회주택 보급률을 통해 네덜란드의 청년은 취업 준비를 하면서도 당장 다음 달 월세에 허덕이지 않아도 됩니다. 혼자 살아도 방 2개, 거실, 발코니가 딸린 공간에서 안락한 주거 환경을 누릴 수 있죠.
강력한 임차인 보호 제도 아래에서는 정당한 사유 없는 집주인의 갑질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집주인에게 쫓겨날까 무서워 아무 말 하지 못하는 상황이나 갑자기 올라버린 임대료에 어쩔 수 없이 방을 비워야 하는 극단적 상황에 처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나라 청년 주거 빈곤 해결의 씨앗이 바로 이 제도들에 있지 않을까요.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