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방위적인 주택 공급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수요 억제를 위한 고강도 규제에도 집값이 잡히지 않고 무주택자들의 원성이 커지자 공급 확대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도심 주택 공급 방안으로 리모델링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공급 확대 기조에도 정부가 정비사업(재건축‧재개발 등) 규제를 완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리모델링은 주변 집값 자극 등의 우려가 상대적으로 적고 도심 노후 단지를 새 아파트로 바꾸면서 일부 신규 공급도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 리모델링 관심 단지 늘어난다
한국리모델링협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리모델링 추진 아파트 단지는 54곳(4만551가구)으로 전년보다 17개 단지(1만6616가구) 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서울에서는 개포 우성9차 아파트를 비롯해 이촌동 현대아파트, 둔촌 현대 1‧2‧3차와 송파 성지, 목동 우성2차 등이 리모델링을 위한 조합을 설립하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14년 리모델링 활성화를 위한 관련법 개정(수직증축 허용, 일반분양 15%로 확대 등)으로 붐이 일었던 리모델링은 실제 사업 추진에 속도가 나지 않고 조합들이 사업 세부 시행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으며 침체기를 겪었다.
그러다 재건축에 대한 규제가 지속적으로 강화되자 노후 단지들이 리모델링으로 눈을 돌리면서 지난해부터 실제 사업을 추진하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리모델링은 재건축에 비해 규제 장벽이 낮고 사업 시행 요건도 까다롭지 않다. 재건축의 경우 준공 후 30년이 넘어야 하고, 안전진단에서 D등급 이하를 받아야 한다. 2018년부터 정부가 안전진단을 강화해 연한을 넘겨도 안전진단을 통과하는 게 쉽지 않다.
반면 리모델링은 준공 후 15년만 넘으면 사업 추진이 가능하고, 재건축에 비해 사업절차도 단순하다는 게 장점이다.
이동훈 한국리모델링협회 정책법규위원장(무한건축 대표)은 "재건축 안전진단은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짓기 때문에 철거 필요성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리모델링은 재사용이 가능한지를 중점적으로 보기 때문에 안전진단 문턱이 낮다"며 "준공 후 15년이면 사업이 가능해 전면 재보수(리모델링)로 새 아파트를 얻는 게 낫다는 노후 단지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 재건축 대안? 수직증축이 관건
재건축이 쉽지 않은 노후 단지 주민들 뿐 아니라 부동산 업계에서도 리모델링 활성화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정부가 서울 등 수도권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공급 확대에 주력하고 있지만 재건축 등 정비사업 규제를 완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부동산업계에선 3기 신도시를 비롯해 서울 내 신규 택지 개발을 통한 주택 공급 뿐 아니라 도심 주요 지역에 새 아파트 공급을 위해선 재건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부 입장에선 재건축 규제가 완화될 경우 대상 단지 뿐 아니라 주변 일대 집값이 큰 폭으로 오를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리모델링은 재건축에 비해 공급되는 신규 주택(일반분양) 숫자는 적지만 주변 집값을 자극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또 재건축에 비해 속도감 있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어 단기 주택공급 방안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동훈 정책법규위원장은 "리모델링은 신규 택지를 마련하는 것도 아니고 법적 근거도 마련돼 있어 세부절차만 보완하면 단기간에 시장에서 원하는 새 아파트 공급이 가능하다"며 "특히 기존 주민들의 재입주율이 높다는 점에서 사업 추진 시 손바뀜 현상이 자주 일어나 투기 수단이 되는 재건축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재건축 규제를 바로 풀기 어렵다면 리모델링 활성화를 통한 단기 주택 공급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에서도 획기적인 주택 공급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만큼 리모델링 효과를 높이기 위한 건축규제 완화 등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관건은 '수직증축'이다. 법적으로 수직증축이 3개층(기존 가구수 대비 최대 15%증축)까지 가능하지만 안전을 이유로 실제 수직증축 허가가 난 곳은 송파 성지아파트 한 곳 뿐이다. 이 단지는 지반이 단단해 층수를 높여도 안전상 문제가 없는 반면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대다수 단지들은 상대적으로 지반이 약해 증축 시 추가공사가 필요한데, 이 부분에 대한 정리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서울 노후 단지들은 대부분 고밀 개발로 용적률이 높아 수평 증축이나 동 추가 등은 어렵고 수직증축을 통해서만 가구 수를 늘릴 수 있다"며 "수직증축 안전성 논의가 오랜 시간 지체돼 사업 진척이 어려운데, 합리적 수준에서 제도를 정비하고 성공적인 리모델링 사업 단지가 나온다면 주택 공급도 더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