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든 탑이 무너질 위기다. 부동산 정책 발표 때마다 오히려 집값 불안이 심화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가뜩이나 정책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인데 그동안의 공급대책 마저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에 대해 철저한 조사는 물론 3기 신도시 전지역(100만㎡ 이상 택지지구 포함)을 대상으로 LH직원들과 국토부 등 해당 업무 종사자의 투기 의혹을 전수조사 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바닥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오히려 정부 주도의 주택공급 대책의 동력이 사라졌다는 평가가 많다. 멈추지 않는 집값 상승에 지쳐 정부의 주택 공급을 기다리던 실수요자들만 허탈해졌다.
◇ 엎친 데 덮쳤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최근 2.4대책을 포함해 총 25번의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초기에는 투기 수요의 주택시장 진입을 차단하고, 다주택자들의 보유세 부담을 높이는 등 수요 억제에 초점을 맞췄다.
반복되는 대책에도 집값은 잡히지 않았다. 특히 대출 문턱이 높아지고 재건축 등의 규제로 도심 내 주택공급이 위축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서둘러 집을 사려는 수요가 늘어났다. 대책 발표 후 눈치보기 장세가 이어지다 이내 집값이 오르는 현상이 반복됐다.
이는 실수요자들의 정책 신뢰도를 낮추는 결과를 야기했다. 정부는 투기수요를 억제하고, 다주택자들의 매물 출회를 유도해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목적이었지만 실수요자들은 집값이 이내 더 오를 것이란 우려에 무리하게 대출을 해서라도 서둘러 집을 사려는 모습을 보였다.
주택 시장에서 영끌(영혼까지 끌어올린 대출) 현상이 주목받고, 전문가들이 자금여력만 된다면 서둘러 집을 사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던 이유다.
정부도 작년 하반기부터는 정책 궤도를 수정했다. 3기 신도시 뿐 아니라 도심 내 주택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8.4대책에서는 태릉골프장 등 서울 내 유휴 부지를 활용하고, 공공재개발‧재건축 등을 통해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취임 후에도 공급 확대 기조는 이어졌다. 특히 변창흠 장관은 공공주도 개발로 서울에 대규모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2.4대책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집값 안정은 요원하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월 마지막 주 아파트 매매가격 변동률은 전국 기준 0.24%, 서울과 수도권은 각각 0.07%와 0.29%를 기록했다.
경실련 분석 결과, 2017년 5월 서울 아파트 가격은 3.3㎡ 당 2138만원이었지만 올 1월 기준으로는 3803만원으로 올랐다. 30평대 아파트 가격이 6억4000여만원에서 4년 동안 5억이 올라 11억4000만원이 됐다. 백약이 무효했던 셈이다.
◇ 떨어진 신뢰, 공급 제대로 될까
이 같은 상황에서 터진 LH 직원들의 광명시흥지구 땅 투기 논란은 정책 신뢰도를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정책 추진력을 높이기 위해 2.4대책에 포함했던 신규 택지지구 지정을 20일 만에 발표하며 속도를 냈지만 LH직원들의 3기 신도시 땅투기라는 악재가 터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고 정부가 3기 신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관련 공무원들의 투기 여부를 전수조사 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무너진 신뢰는 되돌리기 힘든 상황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땅 투기 대상자에 대한 엄벌과 재발방지대책 마련, 특히 주택 공급 대책은 반드시 일정대로 추진해 신뢰 훼손이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음에도 시장 반응은 회의적이다.
2.4대책 등 최근 발표한 정부의 주택공급은 논란의 중심에 있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공이 주도로 개발해 주택을 공급하는 사업이다. 공공 주도에 대한 조합원들의 낮은 신뢰로 참여 사업장이 많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많았는데 이번 사태로 참여 사업장은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3기 신도시는 공공의 목적(주택공급 확대)을 위해 정부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토지를 수용하는 것인데 이번 사태로 정책에 대한 토지주들의 신뢰가 훼손되면서 개발사업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특히 공공 주도로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게 정부 대책의 골자인데 공공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서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고 꼬집었다.
정부의 주택공급 확대를 내 집 마련 기회로 삼으려던 무주택 실수요자들만 허탈해진 상황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무주택 실수요자들은 사전청약 등의 과정을 거쳐 4년 후면 내 집을 가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갖고 있었지만 주택 공급 계획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불안이 심해질 수 있다"며 "이는 집값 불안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어 당장 집을 사기도, 정책을 믿고 기다리기도 힘든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졌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