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입자들이 갈 곳을 잃을 처지다. 당장 집을 사기에는 가격이 너무 많이 올랐고 대출 문턱이 높아져 자금마련도 쉽지 않다.
3기 신도시와 도심공공복합개발 등 2~3년 후 입주할 수 있는 주택을 대량 공급하겠다는 정부 말을 믿으며 버티려 해도 당장 살 수 있는 전셋집이 없다는 게 문제다. 전세시장에 공급되는 기축 주택은 물론 신규 입주물량도 적다. 지난해 발표한 11.14대책(전세대책) 물량도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서 선택지를 넓히지 못했다.
심화되는 전세난에 정부가 추가 대책을 고심하고 있지만 지금 상황에선 뾰족한 해결책 마련이 쉽지 않다. 오히려 반전세 전환이 가속화돼 세입자들의 부담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만 커진다.
정부 공급 전셋집도 부족
전세시장 불안은 수급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는 까닭이다. 임대차3법 시행 이후 기존 세입자들의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으로 임대차 시장에 공급되는 신규 전셋집이 급격하게 줄었다.
이로 인해 갱신청구권을 사용한 세입자는 주거권을 확보한 반면 신규 계약을 해야 하는 세입자는 전세보증금이 급격히 오르는 가격 이원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또 전셋집을 공급하는 주요 공급원인 신규 입주물량이 많지 않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 신규 입주물량은 가구로 2만9656가구(부동산114 추산)로 작년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단지인데다 전매제한과 실거주 요건(양도세 면제 위한 2년거주, 주택담보대출시 직접거주) 등 규제 강화로 수분양자들의 실입주 비율이 높아지면서 전세로 나오는 물량이 크게 줄었다는 분석이다.
이같은 전세 부족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해말 단기 공공임대와 매입약정 공공임대 등 전세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마저도 계획대로 공급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송언석 의원실(국민의힘)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국 전세형 공공임대 공실 활용 물량은 1만7967가구로 목표치(3만9000가구) 46%, 서울에서 3~4인 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전용면적 60~85㎡ 규모 공공전세도 265가구 공급에 그쳐 목표치의 26% 수준에 그쳤다.
반전세 가속화에 세입자 불안 확대
이처럼 전셋집 수급부족 현상이 심화되면서 전세난은 갈수록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올 가을부터 내년 봄까지 전세난이 정점에 달할 수 있다"며 "집값 상승세 영향으로 전세가격도 오르고 있고 입주물량이 올해 뿐 아니라 내년에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이어 "공급이 부족한 가운데 서울시가 재개발을 시작으로 정비사업 활성화에 속도를 내면 멸실주택도 늘어나 주택 부족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같은 우려에 정부도 추가적인 전세대책 마련에 고심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계획했던 공공전세 등 전세공급 물량을 확대하는 것 뿐 아니라 가격 안정을 위한 표준임대료 제도 도입 등이 거론되고 있다.
전세 갱신계약(갱신청구권 사용)과 신규계약간 가격 차이가 커 신규계약시 표준임대료를 적용해 과도한 가격 상승을 막기 위한 조치다. 표준임대료는 각 지자체가 주변 시세와 물가 등을 고려해 적정 수준으로 산정해 계약시 가격 기준으로 삼는다.
하지만 이 경우 이미 가속화되고 있는 반전세 전환 추세에 불을 붙일 수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들어 임대차 거래중 준전세(전세보증금이 월세의 240개월치 초과) 비중은 16~20%로 작년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전셋집이 부족한 상황에서 세금부담이 늘어난 다주택자들이 반전세를 통해 세입자에게 이를 전가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며 "수급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표준임대료 도입 등 신규계약시 가격 상승을 제한하는 제도가 도입되면 반전세 가속화 뿐 아니라 새로운 편법 거래가 나타나는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종완 원장도 "공급이 부족한 가운데 표준임대료 역시 규제를 통해 가격 상승을 막겠다는 것이라 근본 해법은 되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