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두 정비사업'
최근 1기 신도시를 보면 이런 표현이 떠오릅니다. 이 지역 아파트 단지들은 입주 시기와 용적률, 건폐율 등이 엇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정비사업 방식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작년까진 리모델링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재건축에 더 많은 관심을 보입니다.
특히 새 정부의 '규제 완화' 발표가 거듭되면서 리모델링의 입지가 흔들릴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는데요. 하지만 이미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단지들이 움직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입니다. 두 사업의 법적 기반이 다른 탓에 재건축으로 돌아서면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죠.
규제 완화 움직임에 재건축 부상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에 나란히 위치한 강선마을14단지 두산아파트와 문촌마을16단지 뉴삼익아파트는 비슷한 속도로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현재 리모델링 조합 인가를 신청한 상태고, 시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단지와 마주 보는 강선마을7단지 삼환·유원 아파트가 재건축을 추진하면서 긴장감이 돌고 있습니다. 이 아파트의 소유주 일부가 재건축 추진을 위한 모임을 만들고, 주민들의 의견을 받기 시작한 건데요.
이제 막 출발한 단계고 실제 주민들이 얼마나 호응할지는 모르지만, 일산에서 처음으로 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가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분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2월부터 49개 아파트 단지가 모여 '분당재건축연합'을 결성하고 지자체 차원의 재건축 사업 지원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6일에는 지역 국회의원들과 주민들이 모여 '재건축 결의대회'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1기 신도시에서 재건축이 급물살을 타게 된 건 대통령 선거의 영향이 큽니다. 주요 후보들이 저마다 안전진단 완화 등 '재건축 활성화' 공약을 내놓았는데요. 재건축 연한(30년)에 다다른 1기 신도시에는 특별히 용적률까지 상향시켜주겠다며 주민들의 기대감을 키웠습니다.
이에 주민들 사이에서 각종 규제가 완화된다면 굳이 리모델링을 고수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1기 신도시 특별법'을 제안했던 윤석열 후보의 당선은 이런 생각에 쐐기를 박았고요.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리모델링은 비용도 적지 않게 들고, 주택 물량의 순증 규모도 제한적"이라며 "재건축사업 추진이 원활한 곳에서는 리모델링을 택할 요인이 적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리모델링…"재건축 전환도 쉽지 않아"
그럼에도 리모델링의 인기는 굳건합니다. 한국리모델링협회에 따르면 3월 기준 전국에서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는 단지는 총 119곳으로 추정됩니다. 지난 1월(95곳)보다 24곳 늘었습니다.
이동훈 한국리모델링협회 정책법규위원장은 "재건축 활성화 정책에 따라 리모델링 수요가 재건축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지만, 실제 전환한 사례는 없다"며 "비교적 빠른 사업 기간과 친환경성 등 리모델링 사업의 장점이 뚜렷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1기 신도시는 애초 리모델링을 먼저 고려했는데요. 기존 용적률이 높은 탓에 재건축을 해도 가구 수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1기 신도시는 평균 용적률이 169~226%입니다. 통상 용적률이 200%가 넘어가면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봅니다.
특히 분당이 적극적이었습니다. 분당의 '한솔마을 5단지'가 작년 3월 1기 신도시 최초로 사업계획 승인을 받았습니다. 이어 '무지개마을 4단지'도 4월 사업계획을 승인받았고, '매화마을 1단지'와 '느티마을 3·4단지'는 승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 리모델링 단지들이 역대 최고 분양가를 갱신하며 성공적으로 일반 분양을 마친 상황도 희망적입니다. '잠실 더샵 루벤'(송파 성지아파트)과 '송파더플래티넘'(오금 아남아파트)은 각각 3.3㎡당 분양가가 각각 6500만원, 5200만원에 이릅니다. 이런 가격에도 경쟁률은 252대 1, 2797대 1로 높았습니다.
재건축으로 전환하기 어려운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리모델링과 재건축이 각기 다른 법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인데요. 재건축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리모델링은 주택법을 따릅니다. 이 때문에 리모델링을 수년간 추진했어도 재건축으로 선회하려면 동의서 징구부터 모든 과정을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다만 재건축과 마찬가지로 '용적률'은 여전히 과제입니다. 리모델링 단지들은 최대 용적률을 적용해야 그나마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자체는 지구단위계획을 고려해야 한다며 미온적인 입장인데요. 아직 정부 차원의 규제 완화 정책이 없다 보니 섣불리 지침 개정에 나서기도 어려운 것으로 보입니다.
고양시 관계자는 "리모델링 조합설립 인가는 용적률 등의 문제로 현재 보류 중"이라며 "다만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과 주민들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지구단위계획을 내년까지 정비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