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집값 하락세가 뚜렷해지면서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시작된 장기 침체기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앞으로 국내 부동산 시장이 지속해 위축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인데요.
수년간 집값이 급등한 뒤 가격 조정이 이뤄지기 시작했다는 점과 전 세계적으로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점 등은 그때와 유사한 것도 같습니다. 당시에도 한국은행이 2010년부터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고요.
반면 다른 점도 적지 않은데요. 10여 년 전에는 이명박 정부가 보금자리주택을 쏟아내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서울과 수도권 등의 주택 공급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 대표적입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이런 점을 거론하면서 아직 가격 폭락을 단정 지을 수 없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금융위기 때는 전셋값 고공행진
또 하나 눈에 띄는 다른 점이 있는데요. 바로 주택 매매가와 전세가의 흐름입니다.
통상 매매가격과 전셋값은 반대로 흐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매 수요가 줄어들면 전세로 수요가 쏠리기 때문인데요. 두 주거 형태가 서로 대체재 역할을 해왔습니다. 집값이 떨어지면 사람들이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전세를 선택했습니다.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마찬가지였는데요. 2008년 이후 집값은 지속해 하락세를 기록했습니다. 반면 전셋값은 고공행진을 했고요. KB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2011년 한 해에만 전셋값이 13% 이상 오르면서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진 바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간의 통상적인 흐름과는 달리 매매가와 전셋값이 동반 하락하고 있는데요. 요즘에는 왜 이런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걸까요?
전세대출 활성화로 금리따라 오르락내리락
전문가들은 첫 번째 이유로 역시 '금리'를 꼽습니다. 금리 인상이 가속하면서 대출 부담이 커진 영향인데요. 과거에는 전세자금대출이 활성화하지 않아 전셋값은 금리에 영향을 덜 받았습니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권에서 처음으로 최대 1억원의 전세자금대출을 시행하면서 점차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지난 정권 집값 고공행진에 전셋값 역시 높아지면서 수억원의 전세 대출을 받는 이들이 갈수록 늘었던 겁니다. 그러다가 금리가 급등하니 매매 수요는 물론 전세 수요까지 줄어든 겁니다. 대신 이 수요는 월세로 몰리고 있고요.
통상 매매가격이 떨어지는데 전셋값이 버텨주면 집값 하락을 어느 정도 완화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매매가와 전셋값의 격차가 줄면 갭투자 등 투자 수요가 유입되는 등의 영향인데요. 반면 최근에는 전셋값마저 떨어지니 집값의 하락세가 더욱 가팔라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이제는 매매나 전세 모두 금리 상관성이 커지다 보니 가격이 '동행'을 하게 되는 것"이라며 "특히 최근 들어서는 금리 부담에 더해 깡통 전세에 대한 우려로 전세의 매력도가 크게 떨어지면서 월세에 머무르며 돈을 모아 집을 사려는 이들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전세가격이 같이 빠지면서 투자 수요 유입이 되지 않는 등 가격 방어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매매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거래절벽 지속하면 결국 전월세 다 오를 것"
그렇다면 이런 현상은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지금은 높은 금리 탓에 월세를 선택하는 게 오히려 나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하지만 수요가 몰리면서 월세 가격도 올라가고 있죠. 결국 월세 가격이 일정 수준으로 올라가기 전까지는 이런 흐름이 지속하리라는 전망입니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월세가 꾸준히 상승하다 보면 대출 이자 비용과 비슷해지는 시기가 올 텐데, 이렇게 되면 다시 전세로 수요가 몰릴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결국 지금처럼 매매가 이뤄지지 않으면 주거 수요가 전·월세 등 임대 시장으로 지속해 쏠릴 수밖에 없다는 건데요. 이런 흐름이 지속하면 임대차 시장에서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월세든 전세든 수요가 과하게 쏠리면 가격이 오르게 돼 서민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에 따라 최근의 거래절벽을 해소할 만한 대책을 정부가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윤 수석연구원은 "지금 수요자들이 매매를 안 한다고 해서 수요가 없는 게 아니다"며 "내 집 마련이 필요한 사람들은 집을 살 수 있게끔 하고, 빈자리를 전월세 수요가 들어가는 등의 자연스러운 순환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