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그 사건'이 발생한 이후로 전세를 찾는 손님은 거의 없어요. 반전세나 월세는 가끔 찾지만, 그것도 집주인이 (이전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줄 수 있을 때나 가능한 얘기고요." 서울 강서구 화곡동 화곡역 인근 A 중개업소 대표
전국에서 갭투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된 서울 강서구 화곡동 화곡역 인근 공인중개사무소를 지난 24일 찾았다. 이날 만난 화곡동 인근 중개업소 대표들은 대체로 말을 아꼈다. 최근 잇따른 전세사기 사건으로 침울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화곡동 인근 빌라촌이 지난해 10월 사망한 '빌라왕 사건' 피해 지역으로 언급되면서 전세 매물을 찾는 손님들이 크게 줄었다며 손을 내저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최근 3년(2020년~2022년 8월) 동안 주택자금조달계획서에 따르면 전세가율(주택 매매 가격 대비 임대보증금 비중)이 80%를 넘는 갭투자 거래는 모두 12만1553건이 체결됐다. 그 중 시·군·구별로 보면 서울 강서구가 같은 기간 5910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이 때문에 제2, 제3의 빌라왕 사태 혹은 깡통전세가 심화할 수 있는 지역으로도 꼽힌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화곡역 인근 B 중개업소 대표는 "올해 들어 전세 계약은 단 한건도 중개하지 못했다"면서 "빌라왕 사건이 발생한 이후 보증금이 조금만 높아도 손님들이 꺼린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강서구 다세대·연립주택 월별 전세 거래량은 지난해 3월 767건에서 올해 3월 517건으로 30% 이상 줄었다. 빌라왕 사건 발생 직후인 지난 1월 전세 거래량은 390건에 그쳤다.
전세 매물도 크게 줄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4월25일 기준)에 따르면 서울 강서구 화곡동 전세 매물은 지난 3개월 사이 530건에서 300건으로 43.4%가량 줄었다.
앞으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주택이 크게 줄 것으로 예상되면서 집주인이 새 세입자를 찾지 못하는 '악순환'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공시가격이 낮아지고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가입 기준도 높아지면서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화곡역 인근 C 중개업소 대표는 "이달 말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발표되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매물이 대폭 줄어들 텐데 걱정"이라며 "이 시국에 보험 가입도 안 되면 누가 전세 살고 싶어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최근 전세를 찾는 손님도 극히 드물지만, 곧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발표되면 전세보증 문턱이 더 높아지면서 깡통전세가 심화할 것"이라며 "또 한번 '폭풍'이 몰아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우장산역 인근 D 중개업소 대표도 "예전에는 10명 중 2~3명만 전세보증보험을 요구했다면 요즘은 8~9명이 전세보증보험에 대해 묻는다"며 "보증보험 가입이 안 되는 물건은 아예 손님에게 소개조차 못한다"고 말했다.
전세를 찾는 손님들은 HUG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을 일 순위 조건으로 꼽는다. 정부는 최근 전세사기 방지 대책으로 HUG 전세보증보험 가입 기준을 전세가율 100%에서 90%로 낮췄다. 가령 주택가격 1억원이라면 전셋값이 9000만원 이하여야 한다는 의미다. 주택가격 산정 기준도 공시가격의 150%에서 140%로 낮추면서 공시가격의 126%(140*90)까지만 보험 가입이 가능해졌다.
정부는 '2023년 공동주택 공시가격(안)'을 이달 말 결정 공시한다. 앞서 공시가격(안) 발표 당시 서울 공시가격이 평균 17.3% 하락하면서 전세보증보험 가능 범위가 크게 줄어들었다.▶관련기사: [집잇슈]공시가격 인하?…빌라는 웁니다(3월23일)
화곡역 인근 C중개업소 대표도 "이달 말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최종 결정고시가 나면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물건이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우리 업소에서는 우선 전세 중개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