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게 힘'이라는 말은 건설 현장에서 더 잘 먹힌다. 수많은 법규와 계약서 조항들을 이해하고 공사 기준 등을 정확히 알아야 그만큼 작업 속도와 품질을 올릴 수 있다. 그러려면 '잘 몰라서' 발생하는 오차와 실수를 줄여야 한다.
건설사들이 AI(인공 지능)의 힘을 빌리려 하는 이유다. 포스코이앤씨는 AI에 방대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해 이미 다방면으로 활용하고 있다. AI 기술 경쟁력인 '데이터' 확보를 통해 하자와 공사기간은 줄이고 중대사고를 예방하며 생산성을 높여간다는 방침이다.
포스코이앤씨의 AI 시스템…"좌뇌 우뇌 완성"
포스코이앤씨는 2018년 '스마트건설' 전담조직을 신설해 AI 등 스마트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포스코이앤씨엔 7명의 AI 활용 전문가가 활동 중이다. 포스코 그룹 차원에서 포스텍(POSTECH)과 연계해 육성한 인적 자원이다.
이 중 한 명인 정경문 포스코이앤씨 R&D센터 품질기술그룹 차장은 데이터 분석이 주특기다. 품질·하자 데이터 분석, 지능형 시스템 개발 및 운영을 맡고 있다. 그는 작년 '나는 처세술 대신 데이터 분석을 택했다'라는 자기 계발서를 표방한 AI·빅데이터 입문서를 출간한 부지런한 직장인 작가이기도 하다.
정 차장은 AI 기술을 개발하고 활용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데이터'라고 강조했다. 정 차장은 "AI가 건설 과정에서 여러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 결과물이 만족스러우려면 무엇보다 데이터가 중요하다"며 "회사가 쌓아온 데이터의 양과 품질이 곧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지난 3일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최근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활용한 생성형 AI 기반 건설 지식 데이터베이스(DB) 서비스 '퀄리티 AI 시스템'을 자체 개발했다. 2020년부터 적용한 '지능형 AI 시스템'에서 한발 더 나아간 시스템이다.
퀄리티 AI 시스템은 검색 한 번이면 각종 법규나 계약서, 이전 사례, 해결 방안, 전문가 연결까지 가능하다. 건설기술진흥법이나 공동주택 하자 관리와 같은 법규, 국가 표준시방서와 LH 등 전문시방서, 포스코이앤씨 표준 등 수천 건의 기준 문서를 기반으로 답변해 준다. 시방서란 설계 등에서 도면으로 나타낼 수 없는 사항을 글로 규정해둔 것을 말한다.
정 차장은 "공사 일자가 정해지면 사전에 품질 하자 통계 등의 정보를 요약해서 보내주는 시스템이 기존 지능형 AI였다면, 퀄리티 AI 시스템은 모르는 걸 물어봐도 비서처럼 알려주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한 마디로 "AI 시스템의 좌뇌와 우뇌가 완성됐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AI를 통해 신속한 데이터 활용이 가능해지면서 작업자별로 다른 경험과 노하우의 격차를 해소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평균적인 업무 숙련도가 올라감에 따라 공사의 품질도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정 차장은 "건설 공사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는 공사 종류, 적용되는 법규와 시방서, 계약에 따라 다른데 그 양이 방대하다"며 "저 또한 1만 종류 이상의 건설 법규와 계약서, 시방서를 숙지하는데 3년 이상 걸렸는데, AI로 빠르게 찾을 수 있는 기준과 법규를 학습하고 데이터를 활용해서도 부족한 경험을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령 이 시스템에 '타일 공사 부착력 테스트'를 검색하면 필요한 시험 횟수, 부착 강도를 비롯해 과거 불합격 사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프로세스 변경 이력 등이 있으면 작업자가 숙지할 수 있도록 안내해 준다.
그는 "시스템에도 표기해 놨지만 작업자가 '챗 GPT도 실수할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인지하게 한다"며 "세부 기준은 출처의 자료를 검토해 보고 전문가와 상의도 할 수 있게끔 유도해 AI와 사람이 일종의 '협업'을 할 수 있게끔 해서 작업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AI로 위험 걷어내…"품질·안전 높아져"
포스코이앤씨는 AI가 하자나 공사 기간을 줄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차장은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성능에 대한 합격 여부 판정을 할 수 있다"며 "불합격 및 재시공 문제에 대한 조치 방안 등을 참고해 유사 반복되는 품질 하자를 개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건설업은 다양한 공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 복합 전문 공사라 하나의 공사라도 늦어지면 병목 현상이 발생해 전체 공사 기간을 좌우할 수 있다"며 "공사별 AI 적용 사례가 늘어나면 중장기적으로는 공사 기간 단축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건설업 전반에서 우려가 끊이지 않는 '안전' 문제도 AI를 통해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드론을 활용해 고소(高所) 작업을 진행하면서 안전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이앤씨 역시 드론을 활용한 AI 균열관리 솔루션 '포스 비전'(POS-VISION)을 통해 위험을 줄여내며 아파트 외벽 품질을 관리하고 있다.
정 차장은 "구조 검토 등 필수 확인 단계에서도 AI 알림 등으로 누락과 지연으로 인한 붕괴와 같은 중대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며 "AI와 인간의 협력을 통해서 무재해 및 중대재해 제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해 10대 건설사 중 유일하게 '중대재해 제로(0)'를 달성하고, 올해도 '무재해 및 중대재해 제로'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데이터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는 "'Garbage In Garbage Out'(가비지 인 가비지 아웃·입력 데이터가 좋지 않으면 출력 데이터도 좋지 않다는 뜻)이라는 말처럼 AI가 참조할 수 있는 입력 데이터가 많고 정확할수록 AI의 답변 품질이 향상된다"며 '퀄리티 AI 시스템'의 지식 DB 확대 계획을 밝혔다.
정 차장은 "내년 초까지 LH(한국토지주택공사), 국가철도공단, 서울특별시, 한국농어촌공사, 한국수자원공사(K-water) 등의 모든 전문시방서로 데이터를 확대할 계획"이라며 "중장기적으로 설계 도서까지 인식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포스코이앤씨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감리자, 발주자, 시공사 등이 모두 활용할 수 있는 통합 품질 플랫폼으로 발전시킬 계획도 가지고 있다. 건설 공사 이해관계자들과 AI 시스템을 공유하는 것이다.
공사현장 넘어 시장 분석, 자재구매에도 AI
아직 건설업에선 AI 기술이 '걸음마 단계'다. '중후장대' 산업인 만큼 투자 비용이 큰 탓이다. 다만 활용 범위가 넓고 영향력이 큰 산업인 만큼 다양한 AI 기술 개발을 이어가겠다는 게 포스코이앤씨의 계획이다.
포스코이앤씨는 퀄리티 AI 시스템 외에도 AI를 활용한 부동산 시장 분석 시스템, 시황성자재 가격예측 시스템, 공동주택 철근소요량 예측 모델, 공동주택 리스크 조기탐지 모니터링 시스템, 지능형 CCTV 안전가시설 설치 모니터링 시스템, 드론 활용 AI 균열관리 솔루션 등을 개발했다.
정 차장은 "건설업은 모든 산업과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중후장대 국가 기간산업'이기 때문에 건설업을 구성하는 다양한 산업과 요소 기술들의 발달은 비단 건설업에만 영향이 국한되지 않는다"고 짚었다.
이어 "가령 사물 인터넷과 월패드 에너지 관리부터 건물 에너지 저장 시스템 기술들이 스마트 빌딩에 쓰이게 되고, 스마트 빌딩 기술이 모여 스마트 시티가 되는 것처럼 건설업의 요소요소에서 AI 기술은 산업을 넘어선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향후 AI가 건설 장비, 자동화 로봇과 연결되어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 분야에 투입되면서 인간을 위험과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건설의 속도나 품질도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