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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밀어준 정부, 리모델링 갈등 부추겼다"

  • 2024.11.27(수) 10:49

26일 리모델링 융합학회 연례 세미나
채상욱 "1기신도시법 이후 재건축 위주 정책"
"필로티 혼란 해결 위해 국토부 고시 개정해야"

정비사업 추진 대상 노후 아파트가 500만가구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 방식으로 재건축과 리모델링을 둘러싼 주민 갈등도 커지고 있다. 사업성이 부족해 재건축이 아닌 리모델링이 적합한 단지임에도 재건축을 추진하자는 요구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리모델링 관련 학계 및 전문가들은 갈등의 배경에 정부 정책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선거 당시 공약에서 '리모델링 특별법' 등 리모델링 제도 개선을 약속했지만 돌연 재건축 중심으로 선회하면서 리모델링 사업이 동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필로티 규제와 관련해서도 정부의 일관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리모델링융합학회(KRC)는 지난 26일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KRC 연례 세미나-노후 아파트 500만 시대의 리모델링'을 개최했다. /사진=KRC

"리모델링 투자했는데…정부 눈치만"

한국리모델링융합학회(KRC)는 지난 26일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KRC 연례 세미나-노후 아파트 500만 시대의 리모델링'을 개최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20년 이상 지난 노후 아파트는 약 563만 가구로 전체 아파트(1263만 가구)의 46.9%를 차지했다.

유튜브 '채부심'을 운영하는 채상욱 커넥티드그라운드 대표는 "2022년 대통령 공약에서 재건축·리모델링이 동등한 수준으로 발표됐다"며 "하지만 지난해 노후계획도시 특별법(1기신도시법) 발의·입법부터 정부 부동산 정책의 무게중심이 재건축으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이어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의 목표 대상군(1991~1995년 준공)에 대한 재건축 중심 접근은 향후 주택시장에 상당한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주택의 생애주기와 수명을 고려해 정비사업의 레벨에 따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채상욱 커넥티드그라운드 대표는 "주택의 생애주기와 수명을 고려해 정비사업의 레벨에 따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료=채상욱 대표

윤준도 지디이앤씨 대표 역시 "3년 전만 해도 주민들이 재건축파, 리모델링파로 나뉘어 다투는 모습은 없었다"며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에서 용적률 상한을 건드리며 갈등이 발생했다. 주민들에게 '버티면 재건축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라고 봤다.

윤 대표는 "재건축 용적률을 완화한다 해도 모든 단지에 적용되는 게 아니다. 사업 초기 면밀한 사업성 검토가 필요하다"며 "정부는 '재건축과 리모델링 모두 옳은 방법이지만 현장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주민이 선택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모델링에 대한 정부 기조가 변화하자 건설사도 난감해졌다. 이원식 포스코이앤씨 리모델링영업실장은 "2022년 대선 때 리모델링 규제 완화를 약속함에 따라 대형 건설사들은 사내 전담 조직을 꾸리고 기술개발 투자, 협력회사 육성 등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했다"며 "하지만 정부가 재건축·재개발에 올인하기로 선회하면서 리모델링 시장이 급격히 위축됐다"고 토로했다.

이 실장은 "리모델링 추진단지가 시공사 선정에 나서는 발주 규모는 2022년 정점(11조5000억원)의 절반도 안 될 것으로 보인다"며 "리모델링에 투자했던 건설사들도 정부 눈치만 보는 상황이다. 정부 정책의 지속성, 신뢰성이 회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가 '재건축 밀어주기'에 나서면서 재건축과 리모델링을 저울질하던 단지들은 재건축을 선호하기에 이르렀다. 세미나에 참석한 한 주민은 "전용 84㎡ 집값이 재건축하면 30억원, 리모델링하면 20억원이 된다는데 리모델링이 메리트가 있냐"고 질의하기도 했다.

이 실장은 "재건축하면 집값이 크게 오르고 리모델링하면 덜 오른다는 의견엔 동의하지 않는다"며 "집값은 세대 평면보다 전체 단지의 규모나 입지, 교육환경 등 여건에 좌우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이 단지 간 통합 재건축을 전제로 용적률을 추가해 주는 것처럼 리모델링도 단지간 통합리모델링을 추진할 수 있도록 주택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수직증축 리모델링 제도의 도입과 변화 추이 /자료=이상현 단국대 건축공학과 교수

"필로티 안전하다…사업 혼란 그만"

리모델링 업계의 화두인 '필로티' 규제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1층을 비우는 필로티는 원래 수직증축 규정이 적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필로티 구조는 수직증축형 리모델링에 포함한다'는 법령해석이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국토교통부는 유권해석 이전 조합설립 인가를 받은 단지에 대해 지자체별로 안전 확인 절차를 시행할 것을 권고했다.

이상현 단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필로티화하는 1층도 다른 층과 동일한 구조형식을 가지고 있어 모든 층에서 힘을 분할하고 있다"며 "건물의 하중 변화가 매우 미미해 '구조적으로 문제없이 증축할 수 있는 수준'이다. 현대 기술을 통해 증축 전보다 훨씬 구조적으로 안전한 건물로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동훈 무한건축 대표는 "필로티 문제는 법 개정 없이 국토부 고시 개정만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며 "다수의 구조전문가가 1개층 증축은 문제없다고 주장하는 만큼, 정부가 안전에 대한 막연한 부담감을 버리고 고시 내용을 조정해 시장 혼란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신호 수지한국아파트 리모델링조합장은 "갑자기 필로티를 수직증축으로 간주해 안전진단을 2번 받도록 하면서 사업적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며 "명확한 기준 없이 법령해석에 따라 실무진 선에서 행정 처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때문에 리모델링 추진 단지에서 무작정 반대하는 세력이 나타나고 있다"며 "정부가 정책의 일관성을 갖춰 주민 갈등을 조장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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