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후폭풍에 재건축 '돛'이 찢어질 위기다.
재건축을 중심으로 한 정비사업은 윤석열 정부가 각종 규제를 완화하며 바람몰이를 해왔지만 계엄·탄핵 정국을 맞닥뜨리며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번지고 있다. 국회 계류 중인 재건축 규제 완화 정책은 처리가 불투명해졌고 1기 신도시를 비롯한 공공·민간 정비사업도 속도를 내기 어려워졌다.
정비사업 촉진에 의지해 온 주택 공급도 차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주택공급을 점검하면서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강조하지만 그 행간에도 '불안감'이 읽힌다는 평가다.
재초환 폐지 목전인데…
1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12·3 비상계엄 이후 사실상 국회가 정상 작동을 멈춘 상황에 재건축 단지들이 사업성 타격을 우려하고 있다. 사업 추진 동력이 될 정부 지원이나 규제 완화 등이 안갯속에 빠져서다.
특히 국회에 계류돼 있는 재건축 규제 완화 법안들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이들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 사업성 확대, 사업 기간 단축 등이 어려워지면서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대표적인 법안이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 폐지법률안'이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는 재건축으로 조합원이 얻은 이익이 1인당 평균 3000만원을 넘을 경우 초과 금액의 최고 50%를 부담금으로 환수하는 제도다.
재초환은 지난 2006년 도입됐다가 금융위기 등의 영향으로 2012~2017년 잠정 유예됐다. 이후 집값 상승기인 2018년 부활했으나 2022년부터 집값 하락, 금리 인상 등과 맞물리며 조합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완화를 시도했다.
정부는 2022년 9월 재초환 부담금 면제금액을 3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부과 구간을 2000만원에서 7000만원으로 상향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야당의 반발로 부담금 면제금액은 8000만원, 부과 구간은 5000만원으로 각각 올리기로 지난해 11월 합의했다.
완화된 재초환법은 올해 3월27일부터 시행했으나 공사비 상승 등에 따라 조합원 부담이 갈수록 커진다는 지적에 여당은 6월25일 재초환 폐지법을 발의했다. 국토부도 8월 재초환 폐지를 공식화했다.
야당은 재초환 완화법이 시행된 지 9개월밖에 안 된 상황에서 법을 폐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달초 국토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여야가 정비사업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지며 법안 통과 기대감이 높아졌다. 하지만 12·3 비상 계엄으로 다시 법안 통과가 불투명해졌다.
'재건축·재개발사업 촉진에 관한 특례법'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은 정비사업 초기에 수립하는 기본계획과 정비계획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게 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인허가 절차를 단축하고 공공지원을 강화해 사업 속도를 높이려는 취지다.
이 특례법은 현재 추진 중인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에도 적용된다. 법안 통과가 늦어지면 시장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기업형 장기임대 관련 법안과 공시가격 현실화 대책 폐지, 개발부담금 한시 감면 등에 대한 개정 법안도 국회에 묶여 있다.
1기신도시 정비 시작부터 '뒤숭숭'
혼란스러운 정국에 공공·민간 정비사업 환경도 더 척박해졌다. 계엄 사태 이후 국토부 장관 등 내각 사퇴 가능성이 나오며 건설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1기 신도시 재정비나 공공주택 공급 등이 움츠러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기 신도시의 경우 지난달 27일 선도지구를 발표, 신도시 조성 33년 만에 재정비 첫발을 뗐다.
국토부는 1기 신도시 정비 선도지구 단지에 대해 '2027년 첫 착공, 2030년 첫 입주' 목표를 세운 바 있다. 발표 당시에도 일정이 빠듯하다는 평이 잇달아 나온 가운데 계엄·탄핵 정국까지 더해지면서 목표 달성이 더 아득해졌다.
국토부는 이달 중 1기 신도시 재정비에 따른 이주 계획 및 광역교통대책을 발표하기로 했다. 당초 이달 중순 발표가 예상됐으나 갑작스러운 정국 혼란에 발표 시기 등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주택 공급 여건이 나빠지면서 공공주택 공급 속도가 떨어질 거란 걱정도 번진다. 윤석열 정부는 공공주택 및 정비사업을 통한 공급 확대를 통해 임기 내 주택 270만가구를 공급하기로 했다.
특히 정부는 시장 불안을 야기한 '공급절벽론'에 대응해 지난달에도 서울 서초구 그린벨트 해제 등을 통해 수도권에 5만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내년 상반기엔 수도권에 3만가구의 신규 택지를 추가 지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반적인 추진 일정이 다소 밀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민간에서도 각종 불확실성 탓에 사업 추진을 망설일 가능성이 크다. 본격적으로 탄핵 정국에 접어들면서 불확실성이 이어지면 '공급 위축' 우려는 더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정부는 올해 54만 가구(인허가 기준)를 공급하기로 했으나, 1~10월 누적 인허가 물량은 24만4777가구로 아직도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다. 통상 연말에 인허가 물량이 쏟아져 나오는 점을 고려해도 목표를 채울 수 있을진 미지수다.
주택공급 위축? '그래도 간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일수록 재건축 사업 추진 시 고민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옥석가리기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신축아파트가 워낙 강세라 재건축 추진 수요는 여전히 높겠지만, 사업 초기 단지는 재초환 폐지법 계류 등 불확실성에 따라 진행하다가 고꾸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추진 자체를 재검토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특히 1기 신도시 등 사업 초기 단계의 단지나 공공주택은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추진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며 "사업이 아예 안 되진 않겠지만 속도가 늦춰지는 사업장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토부는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차질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연일 강조하고 있다. 정부는 10일 김범석 기획재정부 제1차관과 진현환 국토교통부 제1차관 공동 주재로 기재부·국토부·금융위·금감원이 참석한 '제10차 부동산 시장 및 공급상황 점검 TF(태스크포스)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김범석 차관은 8·8 주택공급 확대방안 후속 조치를 지속 추진하고, 내년 공공주택 물량도 역대 최대 수준(25만2000가구)로 공급하는 등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정책 과제를 차질 없이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진현환 차관은 지난달 발표한 수도권 신규 택지(5만가구), 1기 신도시 선도지구(3만6000가구) 등을 비롯해 연말 뉴빌리지 선도사업(30여곳) 지정을 통해 주택공급 기반을 확보하고 국민 주거 안정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내년 6월 재건축 패스트트랙, 온라인 총회 개최 등의 내용이 담긴 '도시정비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정비사업 현장에서 신속히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현장 설명회를 개최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올해 공공주택 14만가구 인허가 목표를 위해 지자체 정비사업 등 추가 인허가 물량을 확보하고, 착공을 조기화한다는 계획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