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현대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하는 등 사업에 속도를 내던 '신반포2차아파트' 재건축 사업에 제동이 걸렸어요. 신반포2차는 '아크로리버파크', '래미안원베일리' 등의 반포 초고가 단지에서 길 하나(반포대로)만 건너면 있는 대단지죠. 세라믹 외관으로 장식한 지상 최고 49층 12개동, 2056가구의 '디에이치 르블랑'으로의 변모를 예정해 두고 있죠.
문제는 종전 사업 절차 중 하나가 '없었던 일'이 된 거예요. 이 조합은 '상가 자산가치 산정비율'을 완화해 상가조합원이 아파트 분양권을 받을 수 있도록 합의했는데요. 이를 법원이 무효화 하는 판결을 내놨기 때문이죠.
상가 소유주의 조합설립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합의였던 만큼 향후 사업지연 우려가 나와요. 특히 이번 법원 판결은 신반포2차뿐 아니라 비슷한 시기 조합을 설립한 단지들을 비롯해 앞으로 조합 설립을 해야 할 분당·일산·평촌·중동·산본 등 1기 신도시 재건축 등 단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요.
일각에서는 최근 정부의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기조에 역행하는 판결이라는 지적도 나와요. 공사비 상승 등으로 사업성이 낮아져 가뜩이나 진행이 어려워진 재건축·재개발 사업 추진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애초에 상가 소유주에게 너무 유리했고, 이게 오히려 사업성을 떨어뜨린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있어요.
상가 낀 단지…조합 설립부터 삐걱?
2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달 19일 신반포2차 일부 조합원이 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총회결의 무효 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어요.
조합은 앞서 지난 2020년 9월 상가재건축협의회 '최소분양 단위 규모 추산액 비율을 0.1'로 명시하고, 정관에 상가 독립정산제 등을 포함하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했어요. 쉽게 말해 상가 조합원이 신축 주택을 받을 수 있도록 기준을 완화해 준 것이죠. 주택 분양권이라는 '당근'을 주면서 상가 조합원들로부터 설립 동의를 받은 거죠.
같은 해 10월 조합창립총회에서 조합원 71.5%가 해당 합의서를 승인 결의했어요. 이후 조합은 2022년 2월 정기총회에서 이 합의서 내용을 정관에 반영하는 정관변경 안건을 통과시켰고요. 당시 조합원 54.7% 동의로 가결됐다고 해요.
그런데 이번 판결이 이런 조합의 합의 내용을 뒤집은 거죠. 재판부는 "해당 쟁점 가결에는 도시정비법 시행령 제63조 제2항 단서에 따라 조합원 '전원 동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어요.
시행령이 상가 소유주에게 무분별하게 주택을 공급하는 것을 방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만큼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예요. 앞서 지난 8월에도 비슷한 판례(방배6구역)가 나왔어요.
재건축에 포함되는 상가는 본래 재건축 후 주택이 아닌 상가로 공급하는 것이 원칙이에요. 상가 조합원이 주택을 분양받기 위해서는 상가의 권리가액이 신규아파트 최소 평형 분양가에 '산정비율'을 곱한 값보다 커야 해요. 재개발의 경우는 대지면적이 90㎡ 이상인 대형상가일 경우도 포함되고요.
상가는 재건축·재개발 후 상가로 지급하는 것이 원칙. 단, 아래 해당할 경우 1주택 공급
* 상가 권리가액 > 최소 분양단위 규모 추산액(신규아파트 최소평형 분양가) x '산정비율' [재건축, 재개발]
* 대지면적이 90㎡ 이상인 경우(서울특별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 [재개발]
쟁점은 상가의 자산가치를 상대적으로 결정짓는 '산정비율'인데요. 산정비율은 통상 1을 적용해요. 즉 상가 권리가액(감정평가)이 분양가보다 커야 주택을 받을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상당수 조합이 이를 낮춰요. 상가 조합원의 동의를 확보하기 위해서죠. 신반포2차는 이 비율을 0.1로 합의해 정관에 반영하기로 했어요.
예를 들어 상가 가치가 3억원, 아파트 최소평형 분양가가 10억원일 경우 산정비율을 1로 하면 분양가가 더 커 상가는 아파트를 분양받지 못하죠. 반면 산정비율을 0.1로 하면 보유 상가 권리가액이 1억원만 넘어도 상가 조합원이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게 돼요.
신반포2차만 그랬을까요? 강남 대표적 재건축 단지인 '은마아파트'도 조합설립에 앞서 상가 산정비율을 0.1로 산정하는데 합의했어요. 이외에도 상가를 낀 단지들이 대부분 산정비율을 1보다 낮춰 조합을 설립했죠. 역시 총회 무효 판결을 받은 방배6구역은 산정비율이 0.2였어요.
향후 비슷한 소송들이 이어질 수 있어요. 상가 조합원 입장에서는 판결 결과에 대응하기 위해 '조합설립 무효소송'을 진행할 수도 있고요. 분쟁을 없애기 위해 조합에서 예정된 상가 물량을 줄이거나 없애는 등 설계변경을 추진해 상가 조합원이 아파트를 받는 방안을 마련할 수도 있어요. 문제는 어떤 선택을 하든 재건축사업을 늦추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거죠.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이번 판례는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푼다는 정부의 정책에 역행하는 결과"라며 "사업 속도가 더뎌질 수밖에 없고 가뜩이나 불확실성이 커진 건설업계 상황에서 공사비 상승 등 부담을 키울 것"이라고 말했어요.
신반포2차 조합 관계자는 "(무효 판결에) 항소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재판 진행 과정과 관계없이 통합심의, 사업시행인가 등 재건축사업 단계는 차질 없이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어요. 이어 "이후 대책에 대해 상가 조합원 소송 진행이나, 법적 분쟁으로 번지지 않도록 합의하는 방안 등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어요.
조합 설립 이전 단계의 단지들도 큰 영향을 받을 수 있어요. 압구정3·4구역이나 분당, 평촌 등 재건축을 본격 추진하는 1기 신도시도 마찬가지죠. 특히 1기 신도시 재건축 선도지구에 선정된 분당 양지마을은 상가 지분 관련 문제가 이미 불거져 있어 향후 분란 여지가 큰 것으로 예상돼요.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변호사는 "조합원 전체 동의는 사실상 어려워서 상가 조합원의 조합설립 동의를 받기 어려워질 수 있고, 결국 조합 설립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며 "재건축사업은 사적 자치 원칙이 주로 적용되는 정비사업인 만큼, (조합원들이) 서로 피해 보지 않는 범위에서 총회 의결을 통해 결정할 수 있도록 현실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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